작품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장소와 환경에 의존하는 예술

작품은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Unsplash

미술관에서 영상 작품을 볼 때, 문득 궁금해진 적이 있습니다. 전원이 꺼지고 검은색 빈 화면이 나오면, 그것도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디지털 작품뿐만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가 놓인 전시장을 걸을 때도 궁금해집니다. 같은 작품도 다른 지역이나 나라에서 전시할 때면 작가와 큐레이터가 직접 찾아가 진열에 공을 들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규칙을 다 망가뜨리고 뒤섞어 버린다 해도 그대로 같은 작품인 걸까요?

어쩌면 작품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완전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작품이 액자 안에, 정돈된 공간 안에 완벽하게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일시적 상태에 불과한 게 아닐까요? 작품은 완성되기까지 장소와 환경, 설치에 의존합니다. 작업이 완료된 후엔 유지와 관리가 중요해집니다. 알고 보면 다양한 조건에 기대어 우리 앞에 나타난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공간과 배치에 의존하는 예술

론뮤익, "In Bed", 2005, 혼합재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Gautier Deblonde ⓒ Ron Mueck. 이미지 출처: MMCA

지난해 개막 후 90일 만에 무려 50만 명이 방문한 전시가 있습니다. 바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론 뮤익(Ron Mueck)의 대규모 개인전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인물과 거대한 규모는 압도적이었습니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면서, 동시에 인간의 정신과 신체, 삶에 대한 깊은 생각까지 이어지는 전시였습니다.

 

론 뮤익, "매스", 2016~2017,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 Ron Mueck ⓒ MMCA ⓒ Fondation Cartier. Photo by Kiyong Nam.

론 뮤익 전시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잊지 못할 광경이 있습니다. 미술관의 높은 천장까지 100개의 거대한 두개골 형상이 끝없이 쌓여 있는 작품 <매스(Mass)>입니다. 다양한 작품이 배치된 큰 전시장을 지나서, 독립된 공간에 두개골만 가득한 모습이 충격적이었죠.

 

"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다.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_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

 

론 뮤익, "매스", 2017, la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2023 Photo © Michel Slomka / MYOP / Lumento

두개골 각각의 모양과 서로 겹치고 부딪히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나아가 미술관 공간과의 조화도 바라보았습니다. 인상 깊은 모습에 다른 전시에서는 <매스>를 어떻게 배치했는지 찾아보니, 사뭇 다른 광경이었습니다. 서울 전시에서 작은 공간에 두개골을 높다랗게 쌓아 올렸다면, 파리에서는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두개골을 곳곳에 배치해 관람객이 그 사이를 걸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빛이 가득 들어오는 그곳에서 두개골 사이를 걸으면 전혀 다른 인상과 느낌을 받았을 거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론 뮤익은 전시가 열릴 때마다 장소를 살펴보고 이에 맞춰 작품을 배치했습니다. 그렇다면 서울의 두개골과 파리의 두개골은 똑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두개골 자체는 서로 같아 보이지만, 다른 장소와 환경에서 작품은 각각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처럼 작품은 관객을 만나기까지 제작과 설치 과정에서 여러 조건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품은 작가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다양한 매체와 도구를 활용해 창작하는 과정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작품이 실제로 존재하게 되는 전시장의 배경과 맥락이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유지 관리에 의존하는 예술

론 뮤익의 <매스>는 작품이 만들어지고 전시장에 배치되기까지의 선택과 결정이 중요했습니다. 관객과 만나는 공간과 장소의 특성이 작품에 이야기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럼 작품이 전시장에 자리를 잡고 전시가 시작되면 그때야말로 작품이 완전해지는 걸까요?

 

마크 퀸, "자아", 2006, blood (artist's), liquid silicone, stainless steel, glass, perspex and refrigeration equipment, © Marc Quinn. Photo: Marc Quinn studio. Courtesy: Marc Quinn studio

영국의 현대미술 작가 마크 퀸(Marc Quinn)은 작품이 전시장에 놓인 후에도, 유지 관리가 없다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보여줍니다. 마크 퀸은 자신의 두상을 본뜬 작품 <자아(Self)>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충격적인 인상의 이 작품은 작가가 직접 자신의 피를 5개월간 뽑아 만들었습니다. 머리를 본뜬 주조에 4.5L에 이르는 피를 넣고 냉동해 전시했습니다. 보통 자화상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작품과 실제 대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만, <자아>는 작가의 피가 담겨있어 생명과 죽음, 더 극한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죠.

 

마크 퀸, 이미지 출처: Dior

피를 수년에 걸쳐 뽑아야 했기 때문에 작품을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자아>를 완성해 전시했을 때, 청소 직원이 전시장을 마감하면서 실수로 냉동 장비의 전원을 끄는 사고가 일어납니다. <자아>는 대량의 피로 만든 만큼 냉동 상태에서만 보존될 수 있었고, 전원이 꺼진 뒤 작품은 손상되고 맙니다.

 이처럼 어떤 작품들은 완성된 후에도 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민감한 경우엔 생존하기 위해 사후 관리가 필요합니다. 전시 공간의 조명과 온도, 습도 등 외부 환경을 세심하게 조절해야 하는 것이죠. 마크 퀸의 작품처럼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조건 값이 매우 특수하고 세부적이라면 관리하고 보존하는 인력과 교육 또한 중요합니다. 이렇듯 작품을 둘러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양한 조건들이 밀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디지털 환경에 의존하는 예술

지금까지 작품 외부의 환경으로 기능하는 전시 공간을 살펴보았습니다. 작품이 물리적인 장소에 위치하는 모습을 그려본 것이죠. 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더 많은 작품은 실제 공간이 아닌 디지털 환경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전원을 끄거나 서버를 닫으면 작품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손을 뻗어도 만질 수 없는 디지털 작품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백남준, "다다익선", 1988, 재료 영상 설치; 4채널 영상, 컬러, 사운드; 모니터 1,003대, 철 구조물, 이미지 출처: MMCA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대표적입니다. 〈다다익선〉은 1,003대의 모니터로 만들어진 영상 설치 작품입니다. 작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개천절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후, 10월 3일이라는 날짜를 모니터 수로 표현했습니다. 작품은 과거 TV 디스플레이였던 브라운관(CRT)을 사용합니다. 모니터 속 영상에는 한국과 해외 명소가 색과 화면이 빠르게 전환되며 등장합니다.

백남준, 이미지 출처: 임영균, 이길이구갤러리

 이처럼 <다다익선>은 상징적이고 뜻깊은 작품이지만 디지털 기기의 한계로 문제가 발생하고 맙니다. 2018년 CRT 모니터가 노후해 화재 위험이 커지면서 작품 상영을 중단합니다. 작품을 소장한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작품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복원할 수 있을지 1년에 걸친 논의를 시작합니다. CRT를 유지하거나 작품이 생을 마감하게 두자는 의견도 있었고, 새로운 기술인 LED를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기존 CRT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중고품을 사용해 최대한 작품을 수리하고, 보존이 어려운 부분은 외형을 유지하면서 LCD로 교체합니다. 이는 작가의 생전 의견과 다르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영상이 재생되는 화면인 CRT를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판단한 것입니다.

 이렇듯 디지털 기기는 수명이 정해져 있어 언젠가 전원이 꺼지고 영상은 중단됩니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계속해서 더 좋은 성능의 신제품이 출시되고, 수명을 다한 작품에 대한 논의는 더욱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디지털 작품을 복원해야 할 때 기존의 장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우선일까요? 혹은 최신 기술로 대체해도 괜찮을까요? 작동 방식이 동일하면 같은 작품이 되는 걸까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 앞에, 디지털 작품에서 매체와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작품에 담긴 이미지와 생각만큼 작품을 구현하는 디지털 환경의 조건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예술 작품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술관에서 마주한 작품의 결과물만 보고 작품의 전부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죠. 작품이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기까지의 조건과 과정, 완성된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관리가 모두 작품을 만드는 요소입니다. 이렇듯 과거부터 현재, 미래까지의 시간 전체가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질문을 생각해 봅니다. 관람객이 없는 상태에서도 작품은 여전히 작품일까요? 이 질문은 다시 한번 작품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저마다의 답을 찾아가 보길 바랍니다.

  • PUBLIC ART, Artist 마크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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