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외 출입 금지"

관계의 온기를 훔치고 싶은 우리에게

"관계자 외 출입 금지"
출처 : gail albert halaban

우리 조금 솔직해져 볼까요? 우리는 오늘도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끝까지 넘겨봤을지도 모릅니다. 직접 대화해보지도 않았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새벽 두 시에 말이죠.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서 있는 커플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유독 느려지며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매일 지나치던 길, 딱히 궁금할 것도 없던 골목 앞 어느 날 갑자기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이 붙을 때, 우리는 한참을 그 앞을 기웃거리고 서성입니다.

우리는 자주 타인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훔쳐보고 있는 것인데요. 예술가들도 꽤나 오래전부터 이 시선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관계를 갈망하더라도, 삶의 대부분을 철저한 “관계자 외”인 채로 살아가며, 속하지 않은 세계를 훔쳐보는 시선을 캔버스 위에, 오래된 나무문 뒤에, 850km짜리 미행 일지 속에 박제해 왔죠. 우리는 대체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요?

가려진 커튼 틈 사이로 : 에드워드 호퍼 <Night Windows> (1928)

출처 : The Guardian

밤이 깊은 도심, 맞은편 건물의 창문에는 불이 환히 켜져 있습니다. 바깥의 시선 따위는 전혀 의식하는 듯, 속옷 차림의 여성이 방안을 바삐 오가고 있죠. 호퍼는 관람객을 건너편 어딘가 어둠 속에 세워두고,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어쩌면 조금은 불편할 상황인데, 불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도리어 저 여성은 왜 이렇게 바쁠지 궁금증까지 드는데요. 이런 호기심에 시선을 거두기가 쉽지 않습니다.

호퍼의 그림 앞에서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여기 있으면 안 된다는 느낌, 그런데도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느낌. 이 긴장이 작품을 살아 있게 만들죠. 호퍼는 단순히 훔쳐보기에 집중하지 않습니다. 저 환한 창문 안쪽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와 어둠 속에 숨어있는 관람자가 머무는 반대편을 대비하며, 그 경계에서 우리를 오래도록 서성이게 합니다.

목격자이자 방관자이자 공범 : 마르셀 뒤샹 〈Étant donnés〉 (1946–66)

출처 : artsy

겉으로 보기에는 단지 낡은 나무문입니다. 이 작품의 본질은 문에 뚫린 작은 두 구멍을 통해 볼 수 있는데요. 미술관을 찾은 관람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 구멍에 눈을 갖다 댑니다. 마치 창호지에 손가락을 찔러 넣어 방안을 엿보던 그 오래된 감각처럼 말이죠. 구멍 너머엔 허물어진 벽돌담이 보이고 그 벽돌담 사이 안쪽으로 얼굴 없는 나체의 여성이 가스등을 손에 쥔 채 누워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 비현실적이지만, 멀리에서 계속 흐르고 있는 폭포가 현실임을 알려주고 있죠.

출처 : artsy

뒤샹은 관람자를 공범으로 만듭니다. 구멍에 눈을 댄 순간 관람객은 이미 그 안에 들어가게 되죠. 관람객이 작품을 보는 것인지, 작품이 그렇게 훔쳐보는 관람객을 보는 것인지 경계가 흐릿해집니다. 불쾌하지만 그 전에 먼저 알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저 여성은 왜 저렇게 누워 있는 걸까? 가스등은 무엇을 밝히고 있는 걸까? 되려 의문점이 피어오릅니다. 훔쳐보기는 이미 탐구가 되어버린 것이죠.

어디까지 따라가는 거예요 : 소피 칼 〈Suite Vénitienne〉 (1980)

출처 : Buffalo AKG Art Museum

프랑스 파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 남성이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소피 칼은 그보다 먼저 베네치아로 떠납니다. 변장을 하고 그를 기다렸다가, 장장 2주간 그를 미행하며 사진을 찍고 동선을 기록합니다. 850km. 그녀가 낯선 남성의 뒤를 쫓아 다른 나라로 건너간 거리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기록은 책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술인지, 스토킹인지, 지독한 집착인지, 낯선 이를 향한 순정인지 소피 칼은 답하지 않습니다.

출처 : Buffalo AKG Art Museum

850km가 과하게 멀게 느껴지면서도 뭔가 낯설지 않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도 한 번쯤 경험해 봤기 때문이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의 SNS를 처음 게시물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염탐한 경험을 말이죠. 이게 관심인지 집착인지 스스로 헷갈리던 그 기분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집니다. SNS가 없던 시절 소피 칼은 850km를 몸소 이동해 염탐했다면, 지금은 방 안 침대에 누워 지구 반대편의 사람까지 염탐할 수 있으니까요.

프라이버시 보호필름의 필요성 : 제프 머멜스타인 〈#nyc〉 (2018–2020)

출처 : collector daily

사람이 빽빽한 출퇴근길 지하철. 도파민이 바닥 난 건지 핸드폰 속 화면은 더 이상 흥미롭지 않습니다. 그때 앞 사람의 핸드폰 화면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어떤 SNS에서도 볼 수 없었던 날 것의 사적인 대화들이 미치도록 흥미롭습니다. 하지만 이내 앞사람도 시선을 느낀 건지 화면을 살짝 비틉니다. 머쓱하게 딴청을 피우며 생각하죠. ‘이러니 다들 프라이버시 보호 필름을 사지.’

출처 : collector daily


제프 머멜스타인은 이 노골적인 현대판 훔쳐보기를 정확히 카메라 안에 담습니다. 지하철 안, 카페 안, 공원의 벤치 위 등 저마다 핸드폰 화면 속에 갇힌 사람들을 그 화면을 힐끗 훔쳐보는 시선을 포착한 것인데요. 우리는 전부 동시에 훔쳐보고, 훔쳐 보입니다. 기술이 바뀌어도 시선의 방향은 바뀌지 않았죠. 창문에서 열쇠 구멍으로, 열쇠 구멍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로.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의 세계를 엿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꽤나 성실하게 타인의 관계를 밖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문틈 사이로, 지구 반대편으로, 화면 너머로.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타인의 세계를 훔쳐보는 것은 그만큼 관계에 굶주려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직접 들어가면 상처받을까 봐 선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면서 관계의 온기를 최소한으로 느끼고 싶으니 말이에요. 훔쳐보기는 어쩌면 가장 조심스러운 방식의 연결 시도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그냥 훔쳐보는 게 재미있을 수도 있고요.

출처 : wikimedia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죠. 마네의 <올랭피아>입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지만, 공개되었을 당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죠. 바로 작품 속 주인공 “올랭피아”의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이전 여성의 누드화 속 주인공들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리고 있었기에 누드화를 보면서도 당당하게 “감상”할 수 있었는데, 올랭피아-심지어 직업여성-는 관람객을 똑똑히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죠. “어머 당신, 누드화를 보고 있네?” 그녀의 메세지가 담긴 시선이 꽤나 관람객의 불쾌감을 자아냈던 것입니다.

앞서 살펴본 작가들은 그 누구도 그 시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 앞에서 서성이는 우리에게 사실 꽤나 인간적인 일이라고 예술가들은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19세기의 올랭피아는 당당한 시선으로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21세기의 당신, 무엇을 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