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을 때

다섯 편의 독립영화가 보여주는 불완전하고도 다양한 성장의 얼굴들

나만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성적표의 김민영>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지금의 한국 사회를 움직여온 가장 강력한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성장’일 것입니다. 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던 나라가 경제적 성장을 통해 지금의 발전을 이뤄냈고,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열망은 개인의 삶에도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일, 우정, 사랑 어느 것 하나도 ‘성장해야 한다’는 믿음이 너무도 당연한 전제가 된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흔히 그리는 성장의 모습은 늘 직선적 상승 곡선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성장의 과정은 늘 예측 불가능합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관계의 균열 속에서, 혹은 타인을 지켜내야 하는 순간에 우리는 전혀 다른 형태의 성장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성장은 때로는 고통스럽고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다시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합니다.

이번 아티클에서는 다섯 편의 독립영화를 통해 성장의 다양한 얼굴을 살펴봅니다. 어린아이의 질문에서부터 성인이 마주한 선택, 관계 속의 균열과 화해, 타인을 지켜내는 결단, 그리고 영화를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까지 — 이 작품들은 우리 각자가 거울처럼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장면들을 보여줍니다.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동춘은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집에서는 숙제로 하루를 꽉 채우며 살아갑니다. 놀 시간도, 스스로 질문할 시간도 없는 채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듯 여겨지죠. 그러던 중 체험학습에 나갔다가 말을 하는 막걸리를 발견하면서 그의 삶은 작은 균열을 맞습니다. 막걸리의 소리를 들으며, 늘 품고만 있던 ‘왜 배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현실로 튀어나오고, 동춘은 이전에 배운 모스부호를 통해 그 힌트를 해석하려 합니다. 지루하고 관성적인 일상은 이 사소한 발견으로부터 낯설고 특별한 의미를 얻기 시작합니다.

<막걸리가 알려줄 거야>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이 영화 속 성장은 거창한 목표를 이루는 사건이 아니라, 아이의 시선으로 던져지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어른들이 제시하는 ‘당연한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무언의 압박이지만, 동춘은 막걸리와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자기만의 답을 찾기 시작합니다. 성장의 첫걸음은 바로 ‘왜’라는 질문을 놓치지 않는 것임을 영화는 일깨웁니다. 사소한 일탈이야말로 내면의 목소리를 깨우고, 잊혀진 호기심을 회복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죠.


십개월의 미래

<십개월의 미래>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미래는 프로그래머로서 늘 논리와 계획에 따라 살아왔습니다. 삶의 매 순간을 완벽하게 설계하며 자기 세계를 통제한다고 믿었지만, 원치 않은 임신은 그의 삶을 단숨에 흔듭니다. 태명 ‘카오스’처럼 예측할 수 없는 선택지 앞에서 미래는 아이를 낳을 것인지, 커리어를 이어갈 것인지, 남자친구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두고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혼돈 속에서, 그는 삶의 새로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직면하게 됩니다.

<십개월의 미래>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이 영화는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고통이나 사회적 시선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삶의 주도권을 지킬 수 있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미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매몰되거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논리와 감정을 오가며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합니다. 미래의 성장은 아이를 낳을지 말지라는 단순한 결정을 넘어,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성적표의 김민영

<성적표의 김민영>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고등학교 시절 단짝이었던 민영과 정희는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지만, 이미 서로의 기억과 감정은 어긋나 있습니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있던 학창시절의 동질감은 사라지고, 각자 다른 삶을 견디며 살아가는 시간이 그 사이를 갈라놓았죠.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시절 인연’처럼, 관계는 노력만으로 이어지지 않고 그때의 상황과 시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영화는 이 불편하고 미묘한 틈을 세밀하게 포착하며, 관계의 변화를 통해 성장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냅니다.

<성적표의 김민영>스틸컷, 이미지 출처: 키노 라이츠

이 어색한 균열은 때로는 불편하지만,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계기가 됩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더라도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온 만큼, 두 사람의 속도와 리듬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하죠. <성적표의 김민영>은 화해나 타협을 통해 관계를 되돌리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차이를 견디는 힘에 주목합니다. 성장은 그 틈을 메우려 애쓰기보다,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도 일어납니다.


여름이 유괴하기

<여름이 유괴하기>포스터, 이미지 출처: 왓챠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가출을 반복하던 소이는 어느 날 학대받는 어린아이 여름이를 만나게 됩니다. 매일 밤 멍든 얼굴로 밖에 나와 있는 여름이를 보며, 결국 소이는 ‘유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합니다. 이는 분명 법과 도덕의 기준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지만, 소이에게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내려는 결단이기도 합니다. 학대 속에서 하루하루 버텨내던 소이는 여름이를 데리고 도망치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책임의 무게를 짊어지게 되죠.

<여름이 유괴하기>스틸컷, 이미지 출처: 왓챠

영화는 사회의 가장자리에 내몰린 이들이 겪는 불안한 현실을 담담히 보여줍니다. 소이는 여름이와 함께하며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찾아갑니다. 범죄이니 ‘좋은 유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소이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지켜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겠죠. 성장의 또 다른 얼굴은 바로 ‘책임’이며, 때로는 불완전하고 위험한 선택 속에서도 그것을 배워나갈 수 있음을 영화는 말합니다. 소이가 여름이와 함께 하게 되며 ‘책임’의 의미와 무게를 배운다면, 또 여름이가 열심히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있는 성장이 아닐까요?


너와 극장에서 – 극장에서 한 생각

<극장에서 한 생각>스틸컷, 이미지 출처: 서울 독립 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영화 <극장 살인사건>이 끝나고 불이 켜진 상영관, 관객과 정가영 감독이 마주 앉아 나누는 GV의 순간에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지만, 어딘가 상투적이고 겉도는 대화는 현실의 간극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관객은 작품을 억지로 해석하려 애쓰고, 감독은 당황스럽기도 한 질문을 받아내며 묘한 어색함이 흐르죠. 정가영 감독은 이 장면을 통해 ‘영화는 이해해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감상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23회 부산 국제 영화제(BIFF) 굿즈, 이미지 출처: 익스트림 무비

한국의 교육 시스템 속에서 길러진 ‘이해 강박’은 영화를 보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관객의 모습 속에서 우리 자신을 비추며, 영화란 정답을 찾는 시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합니다. 작품을 이해하기보다, 그 순간의 감정을 경험하고 각자의 해석을 열어두는 것이 성숙한 관람 태도라는 점을 일깨우죠. 성장의 한 과정은 결국 ‘강박을 벗어나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이 아티클 또한 정답이 아니며 에디터인 제가 작성한 엉터리 분석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죠.


독립영화는 단순히 상업영화로 가기 전의 단계가 아니라, 창작자의 가치관과 시선을 가장 직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이번에 살펴본 다섯 편의 영화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성장의 순간을 보여줍니다. 질문하는 아이, 선택의 기로에 선 청년, 관계 속의 균열, 책임을 배우는 선택, 그리고 감상의 태도 변화까지. 성장은 특정한 시점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고 변화시키는 과정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는 ‘성장’을 무한한 발전이나 숫자로 환산된 성과로만 이해해 왔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성장은 자기 착취적 노력이 아니라, 때로는 느리더라도 스스로를 더 잘 알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삶이 언제나 기복 없이 만족스러울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언젠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품는 것 —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진정한 성장의 의미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