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계란 한 판
어서와 3학년은 처음이지? 나이듦의 미학에 대하여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장난처럼 “30살 되면 죽을 거야”라는 철없는 말을 한 번쯤 해본 적 있나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30이라는 나이는 삶의 끝처럼 공포스러운 나이로 느껴졌습니다. 요즘까지도 그런 소리를 하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을 보면 서른은 굉장히 우리 사회에서 유난히 특별하게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나이면서도, 정작 어른들은 “아직 어리니까 뭐든 해봐”라며 조금은 무책임한 말만 던질 뿐, 어떻게 나이를 “잘” 먹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진작에 계란 한 판을 채운 조금의 어른으로서, 그리고 같은 30대를 보내고 있는 동료로서 조언이자 독학의 마음으로 현실과 낭만이 공존하는 30대의 라이프를 보여주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꿈과 현실의 경계선에서 <틱, 틱… 붐!>

브로드웨이 대표작 <렌트>의 작곡가 조너선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영화입니다. 그는 20대 내내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지만, 큰 성취 없이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으로 근무하며 30살 생일을 맞이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작곡을 멈추지 않았고, 결국 희대의 명작을 탄생시킵니다. 항상 열심히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방향이 맞는지 확신은 없고, 그렇다고 크게 이룬 것도 없는 것 같은 그 애매한 중고 신입 같은 딜레마는 20대 중후반의 우리 모습과 많이도 닮아있습니다.

연기를 전공했으나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하여 광고 회사에 취직한 친구 마이클이 인상 깊습니다. 여전히 헤매고 버텨내는 조너선에게 안정적인 일을 제안하면서도, 그의 꿈을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한차례 꿈을 접고 현실과 타협했지만, 여전히 업계에 남아 빛나는 자부심으로 무장한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움과 걱정되는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유독 이 인물에게 깊은 감정이입이 되었죠. 마이클처럼 꿈을 좇는 친구들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었던가 스스로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너선은 뮤지컬 <렌트>의 오프닝 바로 전 날, 35세의 나이로 심혈관계 질환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바쁘게 청춘을 불태운 천재 예술가의 요절이 30대부터는 꿈을 향한 질주만큼이나 건강 관리도 외면할 수 없다는 씁쓸한 교훈처럼 남습니다.
한 번쯤 우리 모두 꿈꿔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어린 시절 필자의 로망이자, 30대 라이프를 대표하는 영화도 있습니다. “뉴욕”, “에디터”, “패션”. 누구나 한 번쯤 꿈꿔봤을 각종 로망을 가득 담은 그 작품이죠. 실제로 작중 인물의 나이는 이제 갓 대학을 졸업한 20대 중후반 정도라고 하지만, 막연히 30 쯤 되면 영화 속 인물처럼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습니다. 어리숙하면서도 프로페셔널하게 크고 작은 이슈를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은 그 시절이나 지금이나 워너비니까요.

특히 앤디가 편집장 미란다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며 핸드폰을 던지고 떠나는 장면은 영화를 볼 때마다 감상이 달라집니다. 처음에는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는 상사를 떠나는 것이 당연했고, 어느 때엔 “그래도 어렵게 들어간 직장 1-2년만 버티면 엄청난 스펙인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어느 순간엔 “그래, 아직 젊을 때 빠르게 손절하는 것도 맞지”라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뭐든 진득하게 조금 더 해봐야지, 역시 젊음은 어림으로 낭비되는구나” 하는 복합적인 감상이 터져 나오는 장면이라, 몇 년을 봐도 지겹지 않습니다. 곧 있으면 20년의 세월을 건너 속편도 개봉할 예정이라고 하니, 또 어떤 감상을 남길지 기대가 됩니다.
산다는 건 죽어가는 것 같아, AJR - The DJ is Crying for Help
혼란스러운 30대의 삶을 그대로 담은 곡도 있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본인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으나, 막상 사회에 나와보니 스스로가 별것 아니었다고 깨달은 감정을 DJ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망한 것 같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고, 당장 일을 시작할 수 있을 만큼 간절하지만, 세상은 나에게 인생을 허비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은 나름 각자의 삶을 잘 꾸려가는 것 같은데, 나는 여전히 17살에 멈춰있는 듯합니다. 세상은 이제 20대 때만큼 나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애원해 보지만,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세상이 내 것만 같았던 시절이 다시 한번 시작되길 울며 기다릴 뿐이죠.
딸기향 해열제, 체리필터 - Happy Day
스스로 ‘20살에 요절할 천재’라고 착각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나요? 그러면서도 20살이면 너무 이르다, 30살까지 살아도 요절 아니냐며 철없이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거칠 것 없이 찬란하게 빛나며 꿈을 좇던 시절을 지나, 현실과 타협한다는 핑계로 하나둘 포기하며 살아가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 이 곡은 아픈 손가락처럼 슬픈 노래로 다가왔죠. 현실은 삼류 영화보다 더하고 간단하지도 않으며 딸기향 해열제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은 계속되고,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며 설레는 방법을 찾으며 살아가는 어른이 되어갑니다.
공자는 30살을 ‘이립(而立)’이라 했습니다. 마음이 도덕 위에 확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죠. 그 시절과 삶의 속도가 다른 요즘 시대에 서른이라고 인생관이 확립될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다 소화하던 20대는 지났고, 찌개를 젓가락으로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 정도는 알 것 같은 요즘입니다.
완벽히 어른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되려 상상도 못 했던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에도 괜히 욕심을 부리며 매 순간 스스로 한계에 맞닥뜨리기도 합니다. 여전히 20대 시절만큼 거센 물결을 타고 싶은데, 이제는 쉽사리 감정이 휘몰아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잔요동이 남았습니다. 잔잔하게 일렁이는 물결 위에서야 비로소 마음의 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흔들리지만, 어느 정도 생의 나침반을 읽을 줄 알게 되었고, 키를 잡는 법을 터득하고 있으니까요. 가라앉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닿게 될, 우리 모두의 이립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