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어떻게 우리를 정의하는가

훈데르트바서의 살아있는 건축 3선

공간은 어떻게 우리를 정의하는가
ⓒatlasboots.com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과거의 공간이 외부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생존의 역할에 충실했다면, 현대의 공간은 인간의 편의를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습니다. 공간의 용도는 무엇인지, 인간이 어떻게 가장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지, 그리고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설계 방식은 무엇인지에 집중하며 건축은 발전해 온것이지요.

하지만 건축을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숨을 쉬는 살아있는 유기체로 바라본 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건축가이자 예술가, 철학가이자 환경운동가로도 불리는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Friedensreich Hundertwasser, 1928-2000)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성장한 그는,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획일적인 기능주의 건축과 규격화된 사회 시스템에 강한 반감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연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직선과 장식이 배제된 건축, 그리고 반복적인 표준화가 인간을 결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훈데르트바서에게 건축이란 효율성의 산물이 아니라, 풍부한 감정과 경험을 생성하는 장(場)이어야 했습니다.

우리가 머무는 공간은 단순히 점유하는 장소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공간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내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을 통해 공간이 개인을 넘어 타인, 그리고 내가 발을 딛고 있는 도시와 자연과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우리 모두의 삶을 형성해 가는지 고민해 보려 합니다. 그의 철학이 깊게 깃든 대표적인 건축물 세 곳을 소개하며, 공간과 우리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개인의 정체성이 투영된 집, 훈데르트바서 하우스 (오스트리아,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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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색채와 비정형적인 구조를 가진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를 처음 마주하면, 마치 장난감 블록을 쌓아 올린 듯하거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속 생동감 넘치는 집을 떠올리게 됩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이 건물은 훈데르트바서의 대표작이자, 그의 핵심 철학인 '제3의 피부’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공간입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인간이 세 개의 피부를 가진다고 보았습니다. 첫 번째 피부는 우리의 생물학적 ‘몸’이며, 두 번째 피부는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옷’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세 번째 피부는 바로 우리가 숨 쉬고 머무는 공간인 ‘집’입니다. 그는 집을 단순한 건축물 이상으로, 인간 신체의 연장이자 일부라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개념이 바로 ‘창문의 권리(Window Right)’입니다. 거주자는 실내뿐만 아니라, 외부로 드러나는 자신의 창문 주변을 자유롭게 꾸미고 바꿀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규격화되어 공급되는 상품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거주자의 개성이 발현되는 표현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선언입니다. 물론 타인과 공존하는 공동주택이기에, 그 자유의 영역은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 선으로 정의되었습니다.

강렬한 원색의 외관, 비대칭적인 창문, 그리고 물결치는 듯한 곡선의 벽면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전형적인 아파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수많은 세대가 모여 살고 있지만, 그 누구도 똑같지 않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듯 하지요.

획일화된 도심 속에서 훈데르트바서 하우스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나의 어떤 모습을 닮아 있는지, 그 외벽 너머에 존재하는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지 말입니다. 이 건물을 통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의 개성이 어떻게 존중받으며 피어날 수 있는지, 그리고 타인과 나는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를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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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공생하는 건축,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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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제3의 피부(집)’ 개념은 건물이라는 물리적 경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훈데르트바서의 철학은 제4의 피부인 ‘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마지막 제5의 피부인 ‘지구와 자연’으로 확장되며 비로소 완성됩니다. 환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에게 자연은 건축을 위해 고려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건축물 그 자체가 스스로 숨 쉬는 생태계가 되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친환경 건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건물이 곧 토양이 되고 숲이 되는 하나의 유기적 생태 환경을 꿈꾼 것입니다.

이러한 자연 건축 철학이 가장 잘 구현된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의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Rogner Bad Blumau)입니다. 온천 리조트이자 호텔 복합단지인 이곳에는 그의 상징인 부드러운 곡선과 비대칭적 미학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이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인공적인 건물과 자연 사이의 경계가 무의미하다는 점입니다. 건물의 옥상 전체는 푸른 녹지로 덮여 있어, 풀과 나무가 곧 건물의 지붕이 됩니다. 단순히 꾸며진 옥상 정원 수준을 넘어, 건물 위에 실제 숲이 조성된 셈입니다. 또한, 대지를 깎아 건물을 세우는 대신 지형의 굴곡을 그대로 따라 건물을 설계하여 건축이 땅의 일부가 되도록 했습니다.

이곳은 휴양을 위한 리조트이지만, 훈데르트바서가 의도한 본질은 근본적인 성찰에 닿아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 머무는 내내 자신의 위치를 끊임없이 감각하게 됩니다. 의도적으로 기울어진 바닥을 걷고, 시시각각 변하는 시야와 공간의 색채, 형태가 건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곳에서 인간은 공간의 주인이 아닙니다. 자연, 건축물과 함께 생태계를 구성하는 동등한 존재일 뿐입니다. 로그너 바트 블루마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 거대한 지구라는 유기체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내가 딛고 선 이 땅과 자연, 건축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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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 자연이 연결되는 그의 마지막 실험, 그린 시타델 (독일, 막데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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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데르트바서가 평생을 바쳐 꿈꿔온 인간, 사회, 자연의 유기적인 연결과 공존. 그 철학의 정점이자 마지막 대형 프로젝트인 '그린 시타델(Green Citadel)'은 독일 마그데부르크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의 건축적 이상이 도시적 규모로 구현된 유작입니다.

막데부르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후, 기능주의에 획일적인 건축물들로 채워지며 개성을 잃어버린 회색빛 도시였습니다. 훈데르트바서가 평생을 비판해 마지않았던 전형적인 현대 도시의 모습이었죠. 그는 이 무미건조한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어 하는 시민들과 지자체의 요청에 응답하여, 도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이 프로젝트에 착수했습니다.

이 거대한 건축물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외관입니다. 도시의 우울한 공기를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치환하고자 선택한 색채입니다. 그린 시타델은 단순한 건물을 넘어 주거와 호텔, 상점, 그리고 시민을 위한 광장이 어우러진 하나의 작은 도시로서 기능합니다.

훈데르트바서는 이 안에서 사람들이 단순히 효율적인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도시를 탐험하듯 공간을 마주하게 설계했습니다. 상점은 단순한 소비의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고 관계를 맺는 경험의 장이 됩니다. 또한, 도시라는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자연을 건물 내부로 깊숙이 끌어들였습니다. 옥상과 발코니, 창가마다 나무와 풀을 심어 건물 전체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호흡하게 한 것입니다.

그린 시타델 안에서 인간은 규격화된 부품이 아닌, 각자의 개성을 지닌 고유한 존재로 머뭅니다. 이웃과 교류하고 외부인과 마주하며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합니다. 나아가 자연의 일부로서 계절의 변화를 가까이서 가꾸고 경험합니다. 이 공간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사회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린 시타델은 그 해답을 자연과 인간, 그리고 이웃이 맺는 따스한 관계 속에서 찾으라 말하고 있습니다.


독일에 거주하던 시절, 한국에 있던 동생이 유럽 여행을 위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을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을 홀로 여행하고 돌아온 동생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어디냐고 물었죠. 동생은 주저 없이 '오스트리아 빈'을 꼽았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훈데르트바서의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너무나 경이로워, 나중에 빈에서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필자는 과거 빈을 여행하면서도 훈데르트바서의 존재나 그의 건축물을 알지 못했기에, 동생의 찬사를 들으며 못내 아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여행길에 우연히 독일 마그데부르크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었기에 그저 하룻밤 묵으며 식사 한 끼 해결하고 떠날 예정이었던 조용한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하러 나선 시내 중심가에서, 지극히 독일스럽지 않은 거대하고 이질적인 건축물을 마주했습니다.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외벽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곡선과 정형화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비대칭적이고 불규칙했습니다. 그 순간, 몇 년 전 동생이 들려주었던 훈데르트바서의 이야기가 스치듯 떠올랐습니다. 확인해 보니 그곳은 과연 그의 마지막 숨결이 깃든 유작, 그린 시타델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웃고 뛰노는 아이들을 보고, 서로 대화하는 어른들을 보며 여행자인 내가 그들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떠날 때 본능적으로 멋진 공간을 찾습니다. 우리가 그곳에서 얻는 위로는 단순히 화려한 인테리어 때문만이 아닙니다. 건물이 어떤 자연 속에 놓여 있는지, 그 공간의 동선이 나를 어디로 이끄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는지를 체감할 때 우리는 진정한 치유를 경험합니다. 때로 어떤 공간은 우리를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하며, 나아가 우리가 누구인지를 묻기도 합니다.

공간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고, 그 안에서 나와 타인, 도시와 자연이 조화롭게 연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훈데르트바서가 남긴 구불구불한 곡선의 길 위에서, 여러분은 지금 어떤 공간에 머물며 스스로를 정의하고 계시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