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역사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세계를 재구성하는 사회학적 글쓰기
아니 에르노는 잘 알려진 그의 여러 작품에서 계급과 습속, 삶의 양상과 욕망을 탐구합니다. 자신과 주변인의 실제 삶을 치밀하게 다듬어진 문체로 허구 없이 쓰는 그의 작업은 사회학적 성격을 강하게 띱니다. 이런 글쓰기 방법론은 갈리마르 총서로 편입된 선집의 제목이 되기도 합니다. “삶을 쓰다Ecrire la vie.” 그의 작품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삶 또한 이 방법론에 의해 고스란히 기술되고, 텍스트로 옮겨진 삶의 면면은 역사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시간을 한 세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경험하는지 가늠하게 합니다.
사회나 역사 같은 말에서 우리는 내가 그 안에 있다고, 다르게 말하면 내가 그것을 살아내고 있다고 느끼기 어렵습니다. 담론이나 기록이 구성되고 전달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선별이 일어나고, 우리가 경험하는 많은 것이 누락되거나, 혹은 변형되어 채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회나 역사라고 통용되는 것에서 눈을 돌려 어머니나 아버지, 다른 가족이나 친척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 보면 몇 줄의 문장, 몇 분의 영상에 담기지 않은 일들, 그 또한 역사인 사실과 사회문제 들이 드러납니다.
최근 개인적인 것과 개념적인 것, 이론적인 것과 자서전적인 것, 창조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을 학제적이고 페미니스트적인 역사들과 조응하는 방식으로 통합하는1) ‘자기이론’적 작업들이 적극적으로 시도, 소개되면서 경험과 감정, 문화에 주목하는 사회학적 글쓰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중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말해지지 않는 역사를 다시 쓰고 누락된 목소리를 듣게 하는 세 권의 책을 함께 살펴봅니다. 익숙해서 무심하게 지나치는 내 가족의 삶이 어쩌면 다르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여성 노인이 배제되는 사회
디디에 에리봉,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은 『랭스로 되돌아가다』에 이어 한국에 두 번째로 번역된 디디에 에리봉의 책입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배경에 대해 사회 구조적으로 탐구한 그는 이 책에서 어머니의 삶을 술회하면서 노년의 취약한 주체와 돌봄의 문제에 대해 성찰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들고 병들며 자율성을 잃어갔고, 그의 가족들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한 대안으로 요양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요양원은 어머니의 편안한 노후가 아니라 어머니의 역할이 축소되었음을 보여주는 장이 되죠.
사실 이는 에리봉의 어머니만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노동계급 여성이 전형적으로 경험하는 공통의 문제입니다. 노인, 특히 여성 노인은 사회에서 쉽게 배제되고, 경제적, 지적 자본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계급적인 낙인 효과가 중첩됩니다. 그 결과로 노동계급 노인들에 관한 담론은 공론장에서 논의되지 않습니다. 에리봉은 여기에 천착해, 소외되는 이들을 위한 ‘대변인’의 자리를 모색합니다. 지식인 계급으로 이동한 그 자신과의 너무나 다르지만 가족이기에 공통점 또한 많은 어머니를 이해하려 애쓰면서, 그는 어머니에 관한 일종의 사회학적 전기를 시도합니다. 어머니의 삶을 되짚어보는 일은 서민 여성 일반의 문제를 공론장으로 포섭하는 작업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개인의 전기가 사회적 소수자와의 관계 맺음으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지워진 양공주의 트라우마
그레이스 M. 조, 『유령 연구』

유령의 말을 어떻게 언어화할 수 있을까요? 무속의 큰 인기를 생각하면 신들림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답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유령이 그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삭제된 존재, 비밀에 부쳐진 존재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를 것입니다. 『유령 연구』는 2023년 번역 출간된 그레이스 M. 조의 회고록 『전쟁 같은 맛』보다 먼저 쓰였지만 3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번역된 책으로, 지워진 존재인 양공주의 역사를 복원하려고 시도합니다.
이 책은 양공주였던 어머니를 이해하고 한인 디아스포라 2세대에서 폭넓게 관찰되는 트라우마를 설명하려는 작업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한국전쟁과 기지촌에 관한 역사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유사한 궤적을 가진 이들의 역사적 경험을 추적하는 복합적인 글쓰기의 시도입니다. 저자는 트라우마가 은폐되어 해소되지 않으면 유령이 만들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유령이 된 존재가 시공간을 가로질러 배회하며 퍼뜨리는 목소리를 듣고 말하기 위해, 책은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픽션을 섞은 삽화, 구술사, 인터뷰, 여러 매체에서 재현된 텍스트와 저자의 꿈, 경험을 다층적으로 혼합한 형태를 취합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잊힌 전쟁인 한국전쟁의 맥락과 그것이 유발한 폭력들이, 과거가 함구되고 삭제되면서 만들어지는 광범위한 트라우마에 누가 붙들리는지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역사란 본디 선별된 단일한 서사보다 겹겹이 쌓이고 뒤엉킨 층들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 속에서 진실을 탐색하면서, 『유령 연구』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비밀을 규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성이 식민화되고 도구화되고 살해되는 세계를,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감각하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사라지는 노동의 세계
이라영, 『쇳돌』

‘쇳돌’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쇠붙이의 성분이 들어 있는 돌’로 정의됩니다. 그리고 이 책, 『쇳돌』에서 이 말은 동시에 ‘국내 유일의 자철 광산인 양양광업소 폐광 후 서울/서울 부근으로 이동한 광산노동자들의 모임’으로도 설명됩니다. 저자 이라영은 광산노동자 집안의 딸로, 그의 가족은 모두 광업을 통과해 살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양양광업소의 마지막 민주 노조 위원장이었죠. 『쇳돌』은 가족의 노동이동사와 더불어 한국사회에서 광산의 변화와 노동의 삶이 경험한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광산노동이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광산들은 90년대 이후로 위축되었고, 지금도 존재하는 광산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수도권 중심 사회에는 들리지 않습니다. 『쇳돌』은 이라영의 가족의 삶을 입구로 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는 긴 갱도를 펼쳐 보입니다. 식민지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는 격변의 역사와 함께 쓰인 가족사는 광산노동자들의 주변인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민주화로 인한 산업 환경의 변화, 사라지거나 이동하며 재구성되는 노동자들이 삶을 증언합니다. 실제로 세계를 지탱하는 노동에 대한 감각이 어느 때보다 희미한 현재, 이 책은 기억과 자료로 일부만 남고 사라지는 산업과 삶을 재현하고 대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는 광업을 넘어 사회가 듣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 변방의 무수한 삶과 역사를 읽자는 제안이며 요청이기도 합니다.
“일상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말을 기억하시나요? 다소 진부해진 것 같지만, 여성과 소수자의 삶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던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하며, 나와 내 주변이 경험하는 역사를 설명하는 말로는 언제나 가장 첨예한 말입니다. 우리가 있었던 장소와 경험한 일들, 마주한 힘과 삼킨 말들이 곧 우리가 지나온(歷) 기록(史)이니까요. 그러므로 역사란 매끄럽게 가공된 철강이나 보석이 아니라, 파헤쳐진 암석 지대, 두서없이 쌓인 돌무더기와 같은 것에 가깝습니다.
거칠고 구멍 뚫린 가족의 역사는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것을 바로 우리가 구성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중심부의 역사와 주변부의 역사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담론화하고 기억하는 권력의 작용이 있을 뿐이죠. ‘역사의 한 장면’ 바깥에 있지만 실제로 세상을 계속 움직이는 삶들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지워진 역사를 복원하고 기존에 알던 세계를 재구성할 때, 우리는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더 듣고 보이지 않던 어두운 것을 더 볼 수 있습니다. 마침 도착한 이 글쓰기의 실천들은 우리를 그 복원의 자리로 가까이 데려가줍니다.
1) 로런 포니에, 자기이론, 마티, 2025, p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