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균형을 맞추는 여름 책 3권

상반기와 하반기 사이, 나만의 속도를 찾는 여름

한 해의 균형을 맞추는 여름 책 3권
이미지 출처: Unsplash

여름은 1년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중간의 계절입니다. 상반기의 마지막인 6월, 하반기를 시작하는 7월이 모두 겹쳐 있죠. 1년이라는 시소의 중간에 휘청거리며 서서 양쪽의 균형을 잡아주는 시기라고 느껴지는데요. 상반기에 너무 자신을 몰아쳤다면 하반기는 느긋하게 보낼 마음가짐을, 상반기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아쉬웠다면 하반기에는 운동화 끈을 묶고 좀 더 달려볼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여름입니다. 나만의 속도를 조절하며, 한 해의 균형을 맞추는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여름 책 3권을 소개합니다.


여름의 단어들과 지난 반 년을 돌아보기
『여름어 사전』 

이미지 출처: 아침달 출판사

『여름어 사전』은 여름과 어울리는 단어 157개를 골라 사전적 정의가 아닌,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길어 올린 자신만의 정의를 붙여 풀어낸 감각적인 책입니다. 아침달 편집부, 아침달에서 시집을 출간한 시인들, 아침달 출판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함께 작업을 했습니다. '생맥주', '얼음', '장마', '능소화'처럼 보자마자 여름이라는 계절이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도 있고, '버터동굴', '언덕', '문신', '소설', '꽃다짐'처럼 처음에는 의아하지만 정의한 이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 조각의 여름 풍경이 떠오르게 되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사전의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자신의 여름과 연관된 단어 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에세이에 가깝습니다. 한 사람의 여름이 어떤 풍경으로 구성되어 있는지를 살짝 엿볼 수도 있죠. 이렇게 자신만의 정의를 덧붙이려면,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을 천천히 되짚어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때문에 이 책은 지난 반 년을 통과해 비로소 마주하게 된 여름이라는 시기가 독자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잠시 멈춤의 시간인 여름, 157개의 여름어들을 만지작거리며 나에게 이 여름이라는 시기가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세요. 참고 견디는 여름을 보낼 이에게도, 생기 넘치게 누리는 여름을 보낼 이에게도 저만의 속도를 찾게 할 시간이 되어줄 겁니다.

진짜
뜻: [부사]꾸밈이나 거짓이 없이 참으로
여름에는 입버릇처럼 말하게 된다. 진짜 더워, 진짜 짜증나. 진짜라는 부사는 강조할 때 주로 쓰게 되는데, 여름에 유독 진짜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을 보니 무언가를 확실하게 실감하는 날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왜 좋아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나 여름이 생동하고 있어 좋다고 이야기해왔다. 가만히 있거나 멈춰 서 있는 것이 없고, 죄다 자기 궤도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만 같다. 여름의 운동성. 그 자욱한 사실들이 꼭 살아 있는 순간의 생동감처럼 다가왔다. 진짜? 응. 진짜! _아침달 편집부,『여름어 사전』

나만의 속도로 끝까지 완주해내는 여름
『첫 여름, 완주』 

이미지 출처: 무제

『첫 여름, 완주』는 박정민 배우가 운영하는 출판사 무제의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소설로 출간되었습니다. 시각 장애인을 위한 오디오 북으로 기획되었기에, 일반 소설과는 조금 다르게 대본집과 같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어요. 실감 나는 대사와 풍경 묘사 덕분에 읽고 나면 청량한 여름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주인공 열매는 우울증의 신체화로 인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성우로 일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친한 언니 수미가 돈을 갚지 않고 사라져 궁지에 몰리게 되자, 돈을 돌려받기 위해 수미가 살던 동네 '완주'로 향하게 되는데요. 힘든 마음을 안고 찾은 동네 완주에서, 열매는 매점과 장의사를 함께 운영하는 수미 엄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있지만 서로를 돌보며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완주의 다양한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서, 열매는 점차 미움과 불안에서 벗어나 그 해 여름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게 됩니다.

초록 - 윤마치 (『첫 여름, 완주』OST) (출처: 무제 유튜브 채널)

오디오 북으로 먼저 기획이 된 책인 만큼, 오디오 북으로 듣는 독서를 경험해 보시는 것도 좋겠어요. 쟁쟁한 배우진이 녹음에 참여했고, 뮤지션 구름과 윤마치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퀄리티 높은 오디오 북을 만들었어요. 더운 열기가 조금 남아있는 여름 밤, 산책하며 오디오 북을 듣다 보면 완주의 어느 동네를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실 거예요. 지친 상반기를 보내고 있었던 분들께는 주인공 열매와 함께 올 여름 그리고 올 한 해를 완주할 힘을 주는 이야기가 되어줄 것이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상반기를 보내셨던 분들께는 여름에 대한 생동감 넘치고 싱그러운 묘사를 통해 여름을 더 잘 누릴 수 있게 하는 힘을 주는 이야기가 되어줄 거예요.

글쎄요, 뒤에 생각하면 드라마틱하지만 본인들과 가족들 슬픔을 생각하면 세상에는 드라마틱한 사고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고는 사고죠. 레너드 스키너드의 「심플 맨」으로 문을 닫겠습니다. 오늘 완평군에서 사연 보내 주신 청취자분, 이런 말 무력하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힘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_김금희,『첫 여름, 완주』

여름 언덕을 오른 뒤, 다음으로 나아갈 힘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이미지 출처: 창비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은 안희연 작가의 시집입니다. 초록빛의 표지에서부터 바람이 불어오는 여름 언덕을 떠오르게 하죠. 하지만 청량한 표지와 달리, 시인이 말하는 여름은 마냥 싱그럽고 찬란한 여름은 아닙니다. 오히려 참고 견디며, 힘겹게 오르는 언덕의 이미지를 지닌 여름이죠. 많은 식물들은 여름의 뙤약볕, 장마, 태풍을 견뎌낸 뒤 탐스러운 열매를 맺습니다. 이처럼 여름은 우리에게 수많은 고통과 힘듦의 순간들을 주곤 하지만, 그 시기를 견뎌낸 이후에는 항상 달콤한 보상 혹은 어떠한 깨달음을 통한 성장이 함께 동반되곤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시집에서는 숨이 턱까지 차고, 이마에 땀이 주륵 흐르는 고통을 견디며 여름 언덕을 오르는 과정 그리고 그렇게 힘겹게 오른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시인은 여름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상징되는 힘들고 흔들리는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이 기댈 구석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집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오히려 여름을 좋아하는 분보다는 여름을 견디는 계절로 느끼시는 분께 추천을 드리고 싶어요. 이 책이 여름을 더 잘 누리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줄 거예요.

아이의 손을 잡고 언덕을 오르는 상상을 한다. 여름 언덕을 오르면 선선한 바람이 불고 머리칼이 흩날린단다. 이 언덕엔 마음을 기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지만 그래도 우린 충분히 흔들릴 수 있지. 많은 말들이 떠올랐다 가라앉는 동안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억겁의 시간이 흐른 것도 같다. 울지 않았는데도 언덕을 내려왔을 땐 충분히 운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이 시집이 당신에게도 그런 언덕이 되어주기를. 나는 평생 이런 노래밖에는 부르지 못할 것이고, 이제 나는 그것이 조금도 슬프지 않다.
_안희연,『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어떤 여름을 보내고 계신가요? 이미 상반기에 전속력으로 달려 지친 채 더위에 항복하셨나요? 겨울잠 자며 비축해둔 에너지를 비로소 꺼내 쓸 여름이 왔다며 기뻐하고 계신요? 여름은 그 어떤 계절보다도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는 계절입니다. 찬란하고 밝게 빛나는 여름부터 축축하고 지친 여름까지, 다채롭게 바뀌는 여름을 정신없이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여름은 갑자기 사라지고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올 테지요.

하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한 해의 중간에서 떡하니 꽤 큰 시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여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한 해의 인상을 좌지우지한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다행히 여름은 무더위와 장마 같은 시련을 주며 우리를 잠시 쉬어 가게 만들어요. 우리는 그동안 1년의 반절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돌아보고, 남은 1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비축할 수 있는 휴식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제 여름의 가장 절정인 7월이 다가왔습니다. 여름 언덕의 가장 꼭대기 같은 시간에 잠시 멈춰, 올 한 해를 재점검하고 나의 속도를 찾는 여름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