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걷어내는 자연스러움

있는 그대로의 미학을 노출하는 브랜드 3선

겹겹이 걷어내는 자연스러움
이미지 출처 : 베이스레인지(Baserange) 25 SS시즌 룩북, 베이스레인지 공식 홈페이지

메가 트렌드’가 사라진 요즘, 브랜드가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어떻게든 노출되어야 합니다. 다수의 소비자를 포섭하기 위한 자극적인 이미지와 마케팅이 넘쳐나는 이유입니다. SNS 광고를 보다 보면 마치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번화가를 걷는 것 같습니다. 전단지가 흩날리고, “놀다 가세요!”라는 호객꾼의 목소리가 울리는, 소란스러운 골목말이예요.

하지만 노출은 단순히 가시적인 표면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라, 본질과 진실에 닿으려는 노력일 수 있습니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사물의 본질은 그것이 드러남으로써 비로소 존재한다”고 말했죠. 자신의 태도에 솔직한 사람을 볼 때 “멋지다”고 느끼는 반면, 때로는 “저렇게까지?”라는 반응도 생깁니다. 극단적인 평가가 나온다는 점에서 ‘본질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움’은 가장 효과적인 노출일지도 모릅니다.

본래의 소재를 그대로 살려내거나, 제품이 완성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거나,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브랜드들을 소개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 멋질지, 과할지는 결국 보는 이의 몫이겠죠.


시간을 드러내는 물성

프라마(FRAMA)

이미지 출처 : 코펜하겐에 위치한 프라마(FRAMA) 스튜디오, 프라마 공식 핀터레스트 채널

덴마크의 디자인 스튜디오 프라마(FRAMA)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합니다. 원목, 대리석, 알루미늄 같은 소재를 최대한 가공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질감과 형태를 그대로 노출하는 제품을 만들죠. 재료의 질감을 드러낸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수용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프라마의 대표적인 가구 컬렉션 ‘리벳(Rivet)’ 시리즈는 알루미늄 판을 리벳으로 고정하는 전통적인 공법을 활용해 금속 고유의 날카로운 질감을 드러냅니다. 용접이 아닌 리벳으로 결합하는 방식은 인위적인 공정을 최소화하며, 마감되지 않은 금속 표면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운 흔적과 파티나(patina)를 형성합니다. 사용하며 변화하고 노화되는 과정을 숨기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러움을 미덕으로 삼는 것이죠.

이미지 출처 : 프라마(PRAMA)의 리벳 컬렉션, 프라마 공식 핀터레스트 채널

이처럼 소재의 가공을 최소화한 제작 방식은 대량 생산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프라마의 브랜드 정신은 ‘느림의 미학’과 연결됩니다. 앞서 언급한 리벳 파츠는 필요에 따라 새로 제작되며, 시간을 들여 완성한 절제된 제품은 다시 시간에 절여져 사용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합니다.

이미지 출처 : 19세기 약국을 리노베이션한 프라마(FRAMA) 스튜디오, 프라마 공식 핀터레스트 채널

이러한 태도는 프라마의 공간에도 스며 있습니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프라마 스튜디오는 19세기 약국을 리노베이션해, 아포테카리 디자인(apothecary design) 스타일로 재해석한 공간입니다. 원목 서랍, 당시의 벽과 스테인드글라스가 그대로 보존된 공간에 스킨케어 제품과 패브릭, 가구를 배치해 시간과 재료, 감각이 교차하는 브랜드의 철학을 전시합니다.

*아포테카리 디자인 : 중세 유럽 약방의 디자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 양식.   

만드는 것으로 말하다

노마티디(MOMA t.d)

이미지 출처 : 노마티디(MOMA t.d.) 25 SS시즌 룩북, 노마티디 공식 홈페이지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마티디(NOMA t.d.)는 노구치 마사코(Masako Noguchi)와 사사키 다쿠마(Takuma Sasaki)가 설립한 패션 레이블입니다. 이들은 손으로 직접 그린 패턴과 전통 염색, 수공예 텍스타일을 통해 슬로우 패션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전통 공예에서 영감을 받은 실크스크린, 자수, 손염색 기법을 활용해 소재의 변주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그 과정을 고스란히 제품에 담아내죠.

노마티디의 패브릭은 표백하지 않은 천과 손염색 원단 등 ‘완성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해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색감과 무늬를 보여줍니다. 색의 농담이 일정하지 않고, 무질서한 제작 과정에서 생기는 결과까지 받아들임으로써 우연성과 다양성의 미학을 표현합니다.

이미지 출처 : 노마티디(NIMA t.d.)의 아트북『NOMA t.d. Book 1』, 이미지 출처 : Printed Matter, Inc.

이러한 자연스러움은 이들의 첫 아트북 『NOMA t.d. Book 1』에서도 드러납니다. ‘Keep it real’을 주제로,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죠. 공동 설립자 노구치 마사코는 책 출간을 기념한 전시에서 표백하지 않은 천에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패턴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노마티디(NOMA t.d.)와 노스페이스 퍼플라벨(Northface Purple Label) 협업 콜렉션, 나나미카(NANAMICA) 공식 홈페이지

노마티디는 창작의 순간과 그 축적된 시간을 브랜드의 일부로 여깁니다. 의류를 넘어 전시, 출판, 협업 프로젝트 등으로 브랜드 문법을 확장해가며, ‘만드는 행위’ 자체가 브랜드의 언어임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을 긍정하다

베이스레인지(Baserange)

이미지 출처 : 베이스레인지(Baserange) 25 SS시즌 남성 언더웨어 컬렉션, 베이스레인지 공식 홈페이지

꾸밈없는 아름다움은 사람의 몸과 태도에도 적용됩니다. 가꾸어진 미보다는 인간 본연의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거나, 금기시되던 ‘노출’마저 아름다움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브랜드들이 있습니다. 프랑스와 덴마크를 기반으로 한 언더웨어 브랜드 베이스레인지(Baserange)가 그 대표적인 예죠.

베이스레인지는 언더와이어가 없는 속옷, 비대칭적 실루엣, 포토샵 보정 없는 룩북을 통해 인간 본연의 신체를 자연스럽게 드러냅니다. 주름, 체형, 표정은 감추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진짜 아름다움으로 여겨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리터칭 없는 룩북은 이들이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신체미와 가치관을 여과 없이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 베이스레인지(Baserange) 25 SS시즌 룩북, 베이스레인지 공식 홈페이지

브랜드는 초기부터 모든 광고 이미지에 ‘포토샵 보정 금지’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셀룰라이트, 주름 등 신체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기존 란제리 광고와 차별화된 바디 포지티브(body-positive) 메시지를 전달해왔죠. 자연광을 활용한 이미지 속 모델은 절대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며, 날것의 아름다움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이미지 출처 : 베이스레인지(Baserange) 25 SS시즌 룩북, 베이스레인지 공식 홈페이지

또한, 매체 노출을 줄이고 셀럽 마케팅을 지양하는 방식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아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견고하게 추구하고 있습니다. 베이스레인지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태도를 통해 노출의 가치를 다시 쓰고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인간을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로 정의했습니다. 인간은 선택과 실천을 통해 정체성을 구성하며, 이는 곧 꾸밈 없이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려는 시도와도 닮아 있습니다.

브랜드의 노출 역시 본질을 드러내는 실천입니다. 존재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구성되고 증명되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브랜드에게 이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자연스러움은 인공적인 가치를 덧붙이지 않고, 본래의 결을 존중하고 드러낼 때 비로소 실현됩니다. 하지만 자연스러움을 드러내는 것과 타인을 설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브랜드의 노출은 단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 그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증명해야 하기에, ‘겹겹이 걷어내는’ 태도는 더욱 철저하고 진지하게 준비되어야만 가능한 실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