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을 울부짖는 30대 아저씨 밴드
진심을 불태워라, 초록불꽃소년단!
여러분에게 ‘청춘’은 어떤 색깔인가요? 보통 청춘이라 하면 20대의 싱그러운 에너지나 풋풋한 연애, 혹은 파란 하늘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기, 조금 다른 청춘을 노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청춘펑크를 내뱉는 30대 아빠들. 데뷔 10주년을 맞아 젊은 세대에게 뜨거운 지지를 받는 밴드, 초록불꽃소년단을 소개합니다.
초록빛 불꽃, 그 점화의 순간

초록불꽃소년단은 학창 시절 시끄러운 음악에 심취해 펑크 밴드를 동경했던 두 소년, 조기철 님과 양정현 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두 사람은 함께 공연장을 누비며 밴드의 꿈을 키웠죠.
재미있는 사실은, 밴드명이 처음부터 ‘초록불꽃소년단’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결성 당시의 이름은 ’철남 138호’. 다소 투박했던 이 이름이 바뀐 건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조기철 님이 휴가 중 들른 ‘살롱 바다비’에서 우연히 동명의 책을 발견하고 그 제목에 강렬하게 꽂혀 밴드명을 바꾸게 되었다고 해요. 정작 멤버들은 아직 그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의 음악이 품은 ‘초록빛 청춘’의 색채에 이보다 더 완벽한 이름은 없었을 것 같네요.
소리지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2015년 EP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걸] 로 데뷔한 그들은, 2017년 정규 1집 [GREENROOM] 을 발매하며 자신들만의 색깔을 세상에 알립니다. [GREENROOM] 은 다소 거칠고 투박할지언정, 중학생 소년 같은 순수함을 꾹꾹 눌러 담은 앨범입니다. 이 앨범을 기점으로 초록불꽃소년단만의 독특한 청춘관이 확립되었죠.
그들이 정의하는 청춘은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정신’에 있습니다. 가슴 뜨거워지는 추억뿐만 아니라, 마주하기 싫은 추악한 기억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청춘을 아름답게만 포장하지 않고 날것 그대로 직시하는 태도. 이 정신은 지난 10년간 그들을 지탱해 온 힘입니다.
‘은행나무소년들’, ‘동정’, ‘아돈워너다이’ 같은 트랙을 들어보시면 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단번에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픔을 그저 ‘아름다운 한 페이지’로 미화하지 않고, 절규하듯 쏟아내는 그들의 화법은 수많은 리스너의 공감을 이끌어냈습니다.
3장의 정규 앨범 중 가장 날카롭고 위험하지만, 똑바로 마주하겠다는 그들의 정신이 가장 선명하게 각인된 앨범이기에 필자는 여전히 이 앨범을 가장 아낍니다.
어른이 된 중학생
5년의 공백을 깨고 2022년 발매된 정규 2집 [GREENBRIDGE] 는 청년이 된 소년의 성장을 그렸습니다. 성숙해진 만큼 깊어진 우울과 희망, 환희와 분노, 그리고 사랑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담아냈죠.
이때 수록된 ‘자살소년’은 필자가 고등학교 때 초불소를 처음 접하게 해준 곡이기도 합니다. 뻔한 사랑 타령이나 술기운을 빌린 이별 노래만 듣던 저에게, 이토록 직설적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노래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치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세상 한복판에서, 홀로 가면을 벗고 고함을 치는 사람을 마주한 느낌이랄까요.
화려한 기교나 새로운 사운드는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땀범벅이 되어 소리 지르고, 관객과 뒤엉켜 슬램을 하는 그들의 모습은 ‘진심’이라는 단어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 투박한 진심이야말로 초록불꽃소년단의 가장 강력한 매력입니다.
청춘을 보내주며, 추락이 아닌 도약

올해로 데뷔 10주년. 20대에 기타를 잡았던 청년들은 이제 아이를 키우는 30대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발매된 정규 3집 [GREENROOF]. 그들은 여전히, 또다시 새로운 청춘을 노래합니다.
이번 앨범은 삶에 대한 고뇌와 후회, 그리고 청춘에 대한 애증을 담아 지난 청춘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청춘을 맞이하겠다는 다짐의 송가입니다. 앨범의 백미를 장식하는 세 곡을 소개해 드릴게요
1) 진심
“진심을 불태워보련다! 이 순간, 이 기억 지나가겠지!”
진심이었지만 서롭고 찌질했던 청춘을 보내주면서, 이를 태워 앞으로 찾아올 모든 청춘에서도 진심을 불태우며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곡입니다.
2) 살아갈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내가 아닌 것쯤 잘 알아”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외부에서 찾지 않고,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 보며 나아가겠다는 초록불꽃소년단의 단단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3) 술잔을 들고서 노래를 부르자
이 곡은 ‘자살소년’의 모태가 된 곡입니다.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한 소절씩 가사를 붙여 부르던 노래가 ‘자살소년’으로 발전했었죠. 자칫 추억 속에 묻힐 뻔했던 원곡을 동료 뮤지션과 함께 되살려, 이번 앨범에 그 의미를 더했습니다.
마음에 드셨다면 홍대에서 진행한 릴리즈쇼 영상을 한번 시청해 보시는걸 권해드립니다. 라이브에서 매력이 배가되는 밴드에요!
저마다의 청춘
좋은 음악의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꺼내어 보이는 솔직함만큼, 듣는 이의 마음을 확실하게 움직이는 방법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기술은 발전하고 생활은 윤택해졌다지만, 청춘들이 겪는 마음의 빈곤은 반만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는 게 참 팍팍한 요즘, 우리 모두가 초록불꽃소년단처럼 자신의 아픔을 똑바로 마주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심을 쏟아내어 저마다의 ‘진짜 청춘’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