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기르는 정원이 만들어내는 관계

서울, 도쿄, 브리즈번에서 가꾸는 공유정원

함께 기르는 정원이 만들어내는 관계

‘가족’의 의미를 어디까지라고 생각하나요? 가족의 가(家)는 집 안의 돼지 시(豕)를 의미하는데요. 한 집에서 돼지를 함께 키우는 혈연 관계를 나타낸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가족은 ‘함께 살아가며 무언가를 함께 기르는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처럼 식물을 함께 기르며 가족의 의미를 갖게 된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을 함께 기르면서 공동의 책임과 정서적 교류가 이뤄지는 ‘공유정원’ 입니다. 이름 그대로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정원인데요. 이러한 의미는 식물을 함께 기르는 것을 넘어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같은 토양에서 흙을 만지며 계절의 변화를 나누고, 씨앗이 자라는 과정을 함께 기다리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공유하게 되니까요. 서울, 일본의 도쿄, 호주 브리즈번에서 돌봄의 감각을 회복시키고 함께 기르는 공유정원 세 곳을 소개합니다.


서울가드닝클럽 공유정원

도시에서 정원을 꿈꾼다는 것이 어떻게 현실에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요? 서울가드닝클럽 공유정원은 이러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도심에서 갖기 어려운 개인의 정원, 자연과의 접촉을 고민하면서요. 도시인들을 위해 도심의 유휴 공간을 활용해 공유정원을 조성하고, 누구나 정원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한강, 성수동, 연남동 등 특정 장소를 중심으로 모여 직접 정원을 돌보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커뮤니티 가드닝 프로그램입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가드닝클럽

서울가드닝클럽 공유정원은 계절별로 다양한 가드닝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봄과 가을에는 3개월 동안 정원을 분양받아 직접 식물을 기르는 ‘공유정원 멤버십’이 진행되기도 했는데요. 직접 정원을 설계하고 심는 ‘나만의 정원 만들기’부터 루프탑 정원에서 식재료를 심고 키우는 ‘아웃도어 가드닝’, 수확물을 함께 나누는 네트워킹 파티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집에서 혼자 정원이나 식물을 기르는 것과 달리 참여자들 사이 소통과 협업이 이뤄지는 경험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함께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꾸며,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감과 배려하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제 서울가드닝클럽 공유정원은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그린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유정원 연희파크먼트점에서 다양한 F&B 브랜드와 함께 운영되는데요. 연희동 주민에게는 생활 속 작은 공원이 되어주고, 브랜드에게는 음료에 넣을 신선한 재료를 제공합니다. 또한 방문객들에게는 자연에서 머무를 장소가 되죠. 서울가드닝클럽은 이런 공유 정원을 통해 서로의 이익을 공유하고 함께 살아가는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서울가드닝클럽

서울가드닝클럽 홈페이지


도쿄 이케선 공유정원

일본의 대도시들은 개인의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이로 인해 이웃 간의 교류도 작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공유정원은 자연과 유대감은 물론, 사람들 간의 유대감을 회복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식물을 재배할 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와의 유대감을 키우고 지속가능성에 대해 배우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 <Thisbigcity> Eleonora Taramanni

도쿄의 ‘이케선파크(IKE SUNPARK)’는 개인 텃밭처럼 각자 구역을 나눠 기르는 ‘나만의 공간’이 아닌, 공동의 정원으로서 모두가 함께 가꾸고 수확을 나누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고, 허브가 꽃을 피우는 과정을 공유하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공간으로 운영됩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대될 수 있는데요.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주민들이 직접 정원을 디자인하는 방법을 배우고,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에 대한 교육을 받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함께 정원을 설계하고 가꾸는 과정에서 서로의 연결 지점을 찾게 됩니다. 또한 부모와 자녀가 함께 정원을 가꾸고 음식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도쿄 이케선파크 공유정원은 도시인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제안하고, 정원을 매개로 모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전달합니다. 자연과의 연결감, 생태 다양성의 중요성, 사람들과 나누는 공감 등이에요. 함께 정원을 가꾸는 경험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실현하게 해줍니다.

이미지 출처 : 이케선파크 홈페이지

이케선파크 홈페이지


브리즈번 커뮤니티 가든

호주의 대도시 중 하나인 브리즈번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다채로운 문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입니다. 또한 원래 거주민이었던 원시 부족의 가치관을 물려받아 자연과 환경을 존중하는 정책을 지키고 있는데요. 시에서 30개 이상의 커뮤니티 가든을 운영할 만큼 자연을 가꾸고 공동체적인 활동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커뮤니티 가든에서 함께 먹거리를 재배하며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가 됩니다. 때론 이 공간에서 식용 작물, 꽃,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며 때론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 Brisbane City Council

브리즈번 커뮤니티 가든은 지역의 카페, 학교, 주말시장 등과 협력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운영합니다. 다른 지역이나 국가의 공유정원과 달랐던 점은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이 따로 개최되고 있다는 점인데요. 몸을 움직이는 활동부터 원예 워크숍, 퇴비 농장 워크숍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여기 참여하는 주민들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고, 사회 커뮤니티에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살아가는 지역에서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전통적인 가족의 역할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브리즈번 시에서는 시니어를 위한 공유정원 프로그램, 워크숍 등을 제공한다. (이미지 출처 : Brisbane City Council)

브리즈번 커뮤니티 가든


서울, 도쿄, 브리즈번까지 서로 다른 문화와 도시 환경 속에서 운영되지만 공유정원이 가진 가치는 같습니다. 바로 정원을 함께 기르면서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실현한다는 점입니다. 공유정원에서 식물을 심고 가꾸는 일 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사람들 간의 신뢰와 공감,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됩니다.

공유정원에서 식물을 함께 기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함께 자라나게 하고 성장시키는 경험을 함께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혈연이나 혼인 등으로 얽힌 가족은 아니지만, 함께 정원을 일구며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에서 가족 같은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족’의 의미를 더 넓고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와 도시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렸던 공동체의 감각, 그리고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고민하게 됩니다. 어쩌면 가족은 함께 기르고 돌보는 손길에서도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