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확보
신종민

공간 확보
신종민

험상궂은 사내는 종종 상냥함을 마주했다. 원하지 않던 일의 진행에서, 버릇없는 일상에서. 그럴 때마다 그는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근처에 있는 건 조금도 가치가 없다는 투로, 혹은 그럴 수밖에 없는 다분한 가능성으로. 공백으로 얼룩진 새벽에 달아난 잠과 쉬이 벗어날 수 있는 감옥을 오로지 살갗으로 감각한다. 그것은 건조한 때와 부르튼 시설을 모두 경험하였다. 두꺼운 이불이 덮어쓴 책임은 한때 견고했던 성벽의 위상을 숙고하게 하는데, 흠집은 대체로 긴 꼬리의 대상과 어울린다. 거부 의사는 앞선 관계로부터 비롯된 것. 아무 탈 없이 걷던 거리가 시제를 구부리고 물음과는 독립된 대답을 요구하는 듯하다. 석연치 않은 상황이 불어남과 동시에 서로 부대껴 필요 이상은 소멸한다.
한나절 동안 넘치도록 볕 쬔 땅에 제 손을 포갤 때, 알아도 모른 척하던 습관은 불면에 들었다. 그것은 인식할 때마다 성질이 달라지는 멍에 같은 외형으로 공중을 차지하곤 했다.

특정한 종류의 무지를 양껏 충족하며 그간 듣지 못한 대답이라도 된 양 무명을 감쌌다. 굳이 재지 않아도 사물의 길고 짧음을 안다. 보편에 속한 눈대중, 눈이 멀 것 같은 외톨이의 사유.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그 아무에게 아무렇지 않게 건넨 심정의 뒷모습을 보고 싶어라.
단조로운 감상의 말투는 입체적이었다. 호기 가득한 예상의 치우침은 기교 가득한 기침과 때늦은 뉘우침의 발로인지도 모른다. 시시덕거릴 시간 따위, 그럴 공간 따위 나에겐 허락되지 않은 행동과 같고 그럼에도 그 둘을 꿈꾸는 낯은 삯보다 앞선 노동을 앞세워 도통 쓰러지지 않는 밤을 물리쳤다. 그것은 물리적으로밖에 파악할 수 없는 실체의 시절과 같았다고 생각하는 저녁은 밤과 얼마나 닮았을지.
“쓴웃음의 한복판에 가닿은 건 비단 나뿐이 아니요. 그때 나는 의심할 여지없는 존재의 뒷발을 보았다오.”
가장자리만 언 못 인근에 연기를 가둔 상자를 놓았다.

숫자 앞에 숨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명분을 만들었고, 이에 심취한 생활은 섬을 모았다. 대양에 띄엄띄엄 위치한 마침표의 행렬은 중간에 끊지 않으면 제가 영원인 줄 아는 착각에 빠져 우수의 총량을 덜어낸다. 자루가 넘치도록 담았던 평소는 어느 화를 불러일으키려나 보다. 금방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게 준비하였다. 생각의 정리가 필요한 시점은 이때만큼은 길을 잃고, 온갖 세상의 면면을 부유하며 천진한 얼굴로 시치미를 뗀다.
어렵사리 종잡은 종적에 까닭 없이 서로를 깎아내린 무리가 섞여 들었다. 인사의 경중을 논하는 사이가 간헐적으로 주변에 일어 그것을 흠모하기도 하였다. ‘잠깐, 이건 어찌 보면 억수의 도돌이표일 수도 있겠다.’ 반복기호의 쓰임은 취향의 형성에 지대한 공을 했다는 기록이 울려 퍼진다. 고동이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오후는 얼마나 많은 그림자를 목격해야만 할까.

귀갓길이 하나둘 모여들어 종말의 색채를 띤 호수를 던졌다. 그것은 대충 흘겨봐도 네 자릿수 이상. 반갑게 누군가를 맞이하는 사람을 머릿속에 빚어내고 황급히 이를 잿빛에 가두었다. 장담할 수 없는 시설에 옮겨붙은 울음이 늘어났다. 통곡은 묵음. 소리는 표정으로서 드러난다. 눈을 감으면 그 존재를 알 수 없다. 한 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빚진 손짓은 지금 누구의 머리칼을 빗질하는가.
숭숭 뚫린 구멍으로 기다림을 주는 사람과 그것을 받는 사람이 보인다. 나는 모든 것으로부터 멀찍이 돌아선다. 때마침 악을 쓰는 철판. 조금 충혈된 눈으로 그것의 고혈을 붉게 물들인다. 녹슨 비가 당분간 내릴 터다.
부서진 지붕 틈 사이로 빛이 들어왔다. 그것은 신경 써 담은 바구니에서 떨어진 하얀 물체 같았다. 나중이 돼서야 하나가 부족한 것을 알고, 역설적인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는 사람. 그의 멋쩍음 밑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