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배움의 힘을 고백하는 책 3권
고이지 않는 사람 되기 위해 공부하며 평생 곁에 두고 읽을 책

“공부가 그렇게 좋으면 박사 학위 따러 대학에 다시 가야 하는 거 아냐?” 배움에 대한 열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연히 ‘학위’에 대한 말이 따라붙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제도, 증명, 권력 같은 도구로 바라보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하지만 공부는 어떤 도구나 상태가 아니라 과정과 그 의미에 집중할 때 진정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 해의 절반을 돌아보는 계절에 서서 되돌아보니, ‘지금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야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계속 주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무언가를 배우고, 새롭게 알고, 만나고자 할 때에야 비로소 고이지 않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사람은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배움을 위한 걸음을 내딛는 일이 여전히 막막하기만 할 때, 우리가 막연히 배척하고 두려워하는 공부를 각자만의 방식으로 체화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책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세 권의 책은 감탄스러울 정도로 배움에 진심인 사람들의 고백이자 제안입니다.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의《배움의 발견》은 미국 전역에서 “올해의 책”, 베스트셀러, 전 대통령과 언론의 추천을 쓸어 담은 책입니다. 16살까지 학교나 병원도 가본 적 없을뿐더러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는 몰몬 근본주의 가정에서 자란 소녀가 어떻게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를 거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배움’을 통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 같지 않나요? 놀랍게도, 이 책은 저자의 실화를 다룬 에세이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자라온 극한의 폐쇄적인 환경을 매우 상세하게 묘사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에피소드들을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하죠. 문명사회에서 완전히 동떨어진 특정 집단의 현실을 충격적으로 그려내면서, 의구심 없이 성장해 온 어린 시기부터 자신을 옥죄는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반항을 시작했던 시기, 탈출 후에 현대 사회에 녹아들기 위한 고군분투의 날들 등 매 시기에 품었던 감정을 진실하게 풀어냈습니다.

‘배움’의 의미
이 이야기는 한 여성의 극복 서사에 그치지 않습니다. 가족과 진실 사이 균열, 교육의 중요성과 그 본질, 인간의 정체성 형성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저자에게 ‘배움’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지식의 학습 그 이상이었습니다. 자기 세계를 인지하고 자기 존재 의미를 깨치는 처절한 과정이죠. 부모가 알려주고 오빠가 가르쳐주는 망상의 ‘진실’ 너머,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겪으며 판단하는 진실을 모아 세상을 재구성합니다. 내가 확신하고 있었던 세계의 전복,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신념과 충성을 배반하고 진실을 선택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결정, 무에서 다시 세계의 틀을 만들어가는 동안 세상에서 돌연변이 취급을 받아야 하는 고독한 여정. 저자가 ‘배움’을 위해 감내해야 했던 과정은 우리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당연하다는 확신을 건드리는 책
이 책이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것은 단순히 아름다운 성공 스토리여서가 아닙니다. 먼저, 외면하지 않고 괴로웠던 과거를 마주한 회고록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족을 등졌다는 죄책감, 가족들이 자기 자신조차 속이고 있다는 진실의 슬픔과 배신감, 자기 자신을 구원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감정이 너무나도 솔직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무척 힘들어 여러 번 책을 덮고 숨을 골라야 하죠.
한 사람의 인생을 아주 꼼꼼히 들여다보는 만큼, 이 책은 무척 폭넓은 주제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가족과 나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하는데요. 가족의 역할, 한 인격의 형성을 위해 필요한 유대,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합치되어야 할 신념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합니다. 이어서 가족과의 연을 끊으면서까지 배움을 열망했던 저자를 통해 ‘나는 왜 배우고 싶은지’를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사회 제도 하에서 삶을 무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수준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그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게 됩니다. 어쩌면 배움이란, 인생에서 절대 중단할 수 없는 원동력 같은 것 아닐까요. 이 책은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을 다시금 뒤집어보게 하는 위력이 있습니다. 읽기만 하고 가만히 있으면 죄를 짓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공부의 위로』

대학 학부생 시절, 저는 제 전공 수업보다 남의 전공 수업을 기웃거리는 학생이었습니다. 필수학점 수를 신경 쓰지 않고 교양 수업으로 시간표를 꽉 채운 탓에 정작 졸업 때는 수강 학점이 넘쳐서 문제였죠. 지금 이 시기에 듣는 교양 수업이 평생 남을 지식이 되고 삶을 살아가는 태도를 만들어 줄 것이라 막연히 확신했던 기억이 납니다.
뇌가 아직 유연하고 젊음의 가소성이 최고치에 다다라 공부가 쉬이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던 시절, 공부가 남긴 흔적에 대한 이야기. 공부한 내용이 기억에 남지 않으면 헛되다고 흔히들 생각하지만, 대학 시절의 공부는 잊히는 과정에서 정신에 깊은 자국을 남기고 거기에서 졸업 후 이어질 고단한 밥벌이의 나날에 자그마한 위로가 될 싹이 움튼다. 그것이 공부의 진정한 쓸모라고 생각한다. _『공부의 위로』,p.9
저자도 그런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만 하는 대학생은 인생을 모른다”라는 선배들의 말, “대학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았죠. 흔히 말하는 모범생으로 대학을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그 시절 본능적으로 이끌려 공부했던 시간이 자기 삶을 지탱하고 있다는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시절 교양 과목은 내게 무엇을 남겼나

저자는 대학 시절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수강했던 자신의 교양 수업 기록과 그 수업에서 지금까지 뻗어 나오는 사유를 선연하게 보여줍니다. 심리학 개론, 프랑스어 산문 강독, 독일 명작의 이해, 라틴어, 민법총칙 등… 성실한 모범생이면서도 사고만큼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20대 시절 저자의 모습이 그려지는 수강 목록 아닌가요? 그 수업 필기 내용, 교수님을 비롯해 수강생들과 주고받는 대화, 우당탕 치러내는 과제, 수업을 듣는 중에도 초조하게 고민하던 진로 고민. 마치 그 시절 강의실로 돌아간 듯 생생한 기록에 독자들도 각자의 대학 시절을 회상하게 됩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은 ‘교양 수업’에 주목했다는 점입니다. 흔히들 쓸모없다고 말하는 공부인 교양 수업에서의 교양을 추상적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손에 잡히는 실체로 제시하죠. 교양은 완벽한 지식 체계가 아닙니다. 자기 세계를 공고히 하되 다른 세계가 틈입할 가능성을 열어두는 힘이며 태도 그 자체입니다. 저자는 대학 강의실에서 배운 매 교양 수업에서의 훈련을, 마치 전시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는 도슨트처럼 하나하나 귀중하게 풀어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대학에서의 공부를 통해 한 인간이 변화하고 성장할 가능성을 알려줍니다. 배움에 눈을 빛냈던 자신의 20대 초반을 보며 독자들도 함께 배우고 익히며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죠.
각자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재미도 있지만, 20대 시절 저자가 매 수업에서 얻은 지혜와 어느덧 견고한 사회의 일원이 된 저자의 느지막한 통찰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라틴어 수업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교양 과목에서도 “세상은 쓸모를 요구하지만, 유용한 것만이 반드시 의미 있지는 않으며 실용만이 답은 아니라는 위로”를 느끼고, 심리학 개론 수업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카를 융의 개념을 좋아하게” 되면서 “상처 입어 본 사람만이 타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통찰이 그 예시들이죠. 지혜의 원천에서 지혜를 얻어가는 완벽한 동화 주인공의 서사를 보는 것 같아, 삶과 배움에 대한 나의 마음도 찬찬히 돌아보게 되는 책입니다.
『공부가 되는 글쓰기』

하고 싶은 말과 생각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 적 있다면 주목하세요. 직관적인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저자는 글쓰기가 배움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아주 명료하게 알려줍니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 너머
학창 시절, 우리는 별로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완성된 글쓰기를 강요받곤 했습니다. 이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잘 아는 주제나 관심사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도록 독려하는 공부 환경이면 어떨까요? ‘왜 글을 쓰지 못하는가’와 더불어 ‘왜 배우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문학과 수학, 화학과 음악이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여도 그곳으로 들어가는 적절한 진입로가 마련된다면 모든 학문이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지식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죠. 저자는 ‘범교과적 글쓰기’를 설명하면서 단순히 글쓰기를 두려워하던 학생을 쓰도록 만드는 것을 넘어 배우기를 겁내는 학생을 배우게 만드는 방법과 그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명료한 글쓰기와 명료한 사고의 연결

‘글쓰기’의 역할은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저자는 글쓰기가 사유의 한 형태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합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깨달을 수 있거든요. 한 문장, 한 문장을 써 내려가며 주제로 다가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배움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으며, 정돈되지 않은 채 불명확한 ‘감정’의 상태로 머무르던 영역을 논리적인 ‘생각’으로 다듬어 가게 됩니다. 글쓰기와 생각하기, 그리고 배움은 동일한 과정입니다. 글쓰기는 종이 위에서 이루어지는 사고 행위이며, 명료하게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 명료하게 쓸 수 있고 더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됩니다.
저자는 이 이상적인 이론이 실현된 감탄스러운 사례들을 가져와 소개합니다. 이 훌륭한 과정을 통해 생산된 여러 탁월한 글쓰기 사례를 수집해 보여주면서 어떤 분야의 글을 잘 쓰기 위해 꼭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짚어줍니다.
이 책은 글쓰기의 위력을 설명할 뿐 아니라 글쓰기에 대한 풍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평생 함께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열정’이라는 재능을 지닌 사람들의 글과 삶이 담겨있죠. 덕분에 이 책은 글쓰기의 이론서나 결정본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 자신의 삶을 향한 호기심이 반짝이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앎’을 향해 다가가는 여정을, 글을 통해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절판되어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도서관에서 대여해 읽을 수 있습니다.
“그 학기에 나는 진흙이 조각가에게 몸을 맡기듯, 나 자신을 대학에 맡겼다. 나는 내가 다시 만들어지고 내 정신이 새로 짜여질 수 있다고 믿었다.” 아티클에서 소개한 타라 웨스트오버의 《배움의 발견》중 한 구절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우리가 여전히 공부하는 것은 굳어버린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입니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흐름에 자연히 어우러지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며 교류하기 위해서는 늘 새롭게 자신을 직조하고 다듬고 조각해야 합니다. 내가 믿고 있는 면만 보는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간다면, 나의 세상은 지금의 그 작은 세상에서 그치겠죠. 하지만 남은 평생의 인생을 ‘지금과 똑같이 살겠다’라는 다짐을 한 것이 아닌 이상, 우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오늘 소개한 책들로, 배움은 그 지식을 습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발걸음을 내디뎌보세요. 오늘부터 남은 생은 매일 나의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살아보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