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위에 세운 새로운 이야기
옛 고전에서 출발해 새 고전이 된 작품 3선
"미숙한 시인은 모방한다. 완숙한 시인들은 훔친다. 나쁜 시인들은 훔쳐온 것을 흉하게 만들고 좋은 시인들은 더 낫게 만든다. 더 낫지 않다 하더라도 적어도 훔쳐온 것과 다르게는 만든다."_T.S.엘리엇
‘모방’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부정적인 뉘앙스를 동반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게으름, 창작의 실패를 가리키는 말처럼 느껴지죠. 그런 의미에서 엘리엇의 말은 모방과 창작을 가르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듭니다. 완숙한 작가일수록, 훔쳐 온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끝내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요.
문학의 역사를 조금만 돌아보면, 완전히 무(無)에서 탄생한 작품은 거의 없습니다. 신화는 변주되고, 서사는 반복되며 수없이 다시 쓰여 왔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들 역시 오래된 고전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단순한 재현이나 안전한 오마주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원작을 모방하는 대신 해체하고, 재설계하고, 비틀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였죠. 그 과정에서 원작 고전의 그림자를 벗어나 스스로 또 하나의 고전으로 자리 잡은 작품들입니다. 그들의 ‘다름’은 어디에서 생겨났을까요?
‘모방’이 가능한가?
보르헤스의「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그는 또 다른 『돈키호테』를 집필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쓰려고 했던 것은 『돈키호테』 그 자체였다. 그가 원작을 기계적으로 옮겨 쓰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는 사실은 덧붙일 필요가 없다. 그의 경탄스러운 야심은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모든 단어와 모든 행이 완전히 일치하는 몇 페이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_보르헤스,「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픽션들』중
여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필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원문의 토씨 하나까지 동일하게 옮겨 씁니다. 원작의 문장과 단 한 글자도 다르지 않은 이 책을 과연『돈키호테』와 같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명확한 이유를 대기 어렵지만, 왠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르헤스는 바로 이 어색한 지점을「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의 핵심 메시지로 삼았습니다.
텍스트가 동일하다 할지라도 읽는 조건과 시대, 맥락이 달라지면 의미는 완전히 뒤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개념이 사실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죠. 외형이 같다고 해서 본질까지 같은 작품이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우리가 아는『돈키호테』는 17세기 초에 쓰인 작품인데요.『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에는 이 고전을 20세기 초에 다시 쓰고자 하는 ‘피에르 메나르’라는 가상 인물이 등장합니다. 보르헤스는 단순히 『돈키호테』를 다시 쓰는 행위만을 묘사하지 않습니다. 메나르가 참조하는 텍스트, 인물의 이력과 환경까지 정교하게 설정하며 이야기를 확장하죠. 백과사전이나 저작물들이 마치 실존하는 것처럼 권위를 갖고 등장하지만, 사실 이 모든 텍스트는 허구입니다. 이렇게 가짜 상호 텍스트를 촘촘히 쌓아 올리고, ‘진지한 모방’이라는 유머를 통해 창작과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를 교묘하게 흔듭니다.
이 작품은 학술 논문처럼 쓰여 있습니다. 각주와 인용이 넘치고, 화자는 지나치게 진지하죠. 그런데 말하는 내용은 점점 이상해집니다. 독자는 혼란스러워하다가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내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기준들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요. 보르헤스는 이 이야기를 통해 원본이나 형식이라는 개념이 지닌 성역 같은 권위를 해체하면서도, 동시에 창작자들이 느끼는 ‘이미 다 나온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슨하게 풀어줍니다.
모든 인류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역할의 한계를 체감하는 시대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르헤스의 이 짧은 소설은, 쓰였던 당시보다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 더 정확한 질문과 답을 던지는 작품처럼 읽힙니다.
서사는 지우고 구조는 탄탄하게
이탈로 칼비노의『보이지 않는 도시들

황제 쿠빌라이 칸과 먼 이국땅에서 온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는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황제는 낯선 묘사와 언어를 받아들이며 그 도시들을 상상합니다.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 실존했던 두 인물의 이름만 보아도 배경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새로운 영토를 향한 정복과 탐험이 활발했던 아득한 과거 말이죠. 책의 첫 장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이 두 인물을 보면 고전 여행기나 연대기처럼 도시를 헤매는 여행자의 서사를 짐작하게 됩니다.
하지만『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이런 예상을 비껴갑니다. 이 책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여행의 사건이나 에피소드가 아니기 때문이죠. 마르코 폴로는 경험을 ‘감상’하기보다 ‘기술’합니다. 작품 속에서 다뤄지는 도시는 모두 가상의 장소들인데, 화자는 이 도시들을 색채와 질감, 냄새와 소리 같은 감각으로 묘사합니다. 일정한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거리, 벽 없이도 공간을 구분하는 냄새의 차이, 도시 사람들의 행동, 환상처럼 퍼지는 노랫소리. 묘사가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독자는 마치 그 도시에 직접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이탈로 칼비노는 중세 여행담이 따르던 전형적인 서사를 과감히 포기하고 중세 여행기라는 장르의 골조만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문학적 메시지가 풍성하다기보다는 묘사된 공간을 따라가며 감각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작품에 가깝습니다. 풍성한 여행 에피소드를 기대하며 책을 펼친 독자들이 당황하는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죠.
55개의 도시, 11개의 주제군, 총 9부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엄격한 배열을 유지합니다. 각 구성의 시작과 끝에는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의 대화가 배치되고, 그 사이에는 도시들에 대한 묘사가 독립적으로 등장하죠. 도시들은 사건으로 연결되지 않는 대신 ‘목록’과 ‘기술’로만 그려집니다. 이는 황제 쿠빌라이 칸이 대제국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낯선 세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하는 배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서사가 배제되고 기술만 남은 이 플롯에서 독자는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쿠빌라이 칸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됩니다. 정보를 듣고 소화하는 역할을 받는 것이죠. 대부분의 소설이 인물, 사건, 결말이라는 흐름을 제공하지만, 이 책에는 줄거리도 성장도 문제 해결도 없습니다. 정보를 전달받은 이후의 사유는 황제, 그리고 독자의 몫으로 남겨집니다.
불친절해 보일 수 있는 이 구조는 오히려 독서 경험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상상력과 표현의 아름다움을 감탄하게 하는 데서 나아가 기억과 상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장소에 대한 그리움까지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빈틈없이 설계된 구조와 절제된 묘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자유롭게 우리 사유를 해방해 주는 것 같습니다.
화자를 바꾸며 새로 쓰는 신화
마거릿 애트우드의『페넬로피아드』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와 『일리아스』는 고전 중에서도 고전으로 꼽힙니다. 그중 『오디세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화려한 영웅인 오디세우스의 모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사시로, 그의 지혜와 재치가 돋보이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웅 서사 속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는 정숙한 여성의 전형으로 등장합니다. 오디세우스가 이십 년에 걸친 긴 여정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 페넬로페는 끊임없이 정숙함을 시험받습니다. 죽었다고 여겨지는 남편을 대신해 구혼자 중 한 명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는 것이죠.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를 위해 낮에는 수의를 짜고 밤에는 그것을 풀어내는 기지를 발휘하며 시간을 벌고, 마침내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아들 텔레마코스는 구혼자들을 살해하며 복수를 완성합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익숙한 이야기에서 한 가지를 포착합니다. 핵심 인물인 페넬로페에게는 정작 발언권이 없다는 것이죠. 기존의 신화는 페넬로페를 ‘정숙하고 지혜로운 아내’라는 역할로만 정의할 뿐, 그녀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거의 다루지 않습니다. 주연에 가까운 인물이지만 그녀의 서사는 배경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마거릿 애트우드는 『페넬로피아드』를 통해 시선을 뒤집습니다. 제목부터 고대 서사시가 연상되지 않나요? 작가 특유의 익살이 엿보입니다.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 뒤에 가려졌던 이야기, 즉 ‘여성의 신화’를 현대의 관점으로 다시 쓰겠다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소품처럼 취급되던 페넬로페와 그녀의 열두 시녀에게 마이크를 쥐여주는데요. 목소리를 얻은 이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영웅 오디세우스의 서사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화자를 따라가다 보면 전쟁 영웅이라는 훈장 뒤에 숨겨졌던 오디세우스의 지칠 줄 모르는 역마살, 여성 편력, 영웅 콤플렉스가 드러나죠. 동시에 겁박당하는 위험을 무릅쓰며 구혼자들의 정보를 빼내고 이타카 성을 지킨 페넬로페의 어린 시녀들의 행보도 다시금 인식하게 되고요.
신화는 본래 논리정연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지역에 따라 다르게 구전되기 때문에 그만큼 불완전한 형태로 전해지죠.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 불완전함에서 출발해, 오랫동안 강조되어 온 일방적 메시지를 비틀고 새로운 사람에게 발언권을 부여했습니다. 그 결과, 고대 그리스 신화는 여성의 목소리와 한 인간의 생애를 품은 현대적 서사로 다시 태어납니다. 불완전한 신화가 여성의 인권과 한 인물의 생애를 녹인 지금의 언어로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이죠.
보르헤스, 이탈로 칼비노, 마거릿 애트우드처럼 내로라하는 작가들 역시 그 시대에는 기존의 고전에 도전하는 선택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들이 만든 '다름'의 방식을 되짚어보니 어떠신가요? 권위를 존중하면서도 해체할 수 있는 용기와 오랜 시간에 걸쳐 다져온 나의 신념을 믿는 방법을 배운 기분이 듭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한 의지가 가득한 새해입니다. 뭐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 출발선 앞에 섰지만, 막상 발을 내디디려니 움츠러들게 되는데요.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이 시점에서 오늘 소개한 책들로 힌트를 얻으면 어떨까요?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의심해보고, 중요한 구조가 단단히 서 있는지 점검하고, 상황을 바라보는 발판에 변주를 더해보는 방법을 적용해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