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을 넘어, 현실을 재구성하는 사진가들
독일 현대 사진계를 이끈 3명의 거장

독일은 사진을 단순한 기록 수단에서 독립적인 예술 매체로 끌어올리며 현대 사진계를 이끌어온 나라입니다. 그 출발점은 뒤셀도르프 학파를 세운 베른트와 힐라 베허 부부였죠. 이들은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사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와 패턴, 형태를 연구하는 도구로 사진을 접근한 거예요. 이런 철학에서 '유형학적 사진'이 탄생했습니다. 형태와 구조의 반복을 사진 언어로 표현하면서, 사진을 통해 사유하고 현대 사회의 구조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이죠. 베허 학파의 제자들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며 현대 사진의 거장으로 불립니다. 그중에서도 안드레아 구르스키(Andreas Gursky), 칸디다 회퍼(Candida Höfer), 토마스 루프(Thomas Ruff)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소개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사진 작품을 만드는 안드레아 구르스키
구르스키는 초대형 사진 작업으로 유명합니다.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디테일 사이의 균형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작가죠. 그는 사진을 객관적 기록이 아닌 자신이 새롭게 구성한 현실로 만든다고 말합니다. 이미지를 재구성해서 작품을 완성합니다. 물론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건 아닙니다. 디지털 리터칭과 합성을 하지만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지요. 그래서 구르스키의 작품을 보면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실제로 존재하는 걸까?' 하는 묘한 느낌이 듭니다. 그의 사진에는 거대한 풍경과 산업화된 세계가 담겨 있습니다. 풍경 사진은 아름답지만, 산업화된 현실을 다룬 작품들은 때로는 씁쓸함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언뜻 상반된 것 같은 주제들이지만, 구르스키는 현실 세계의 구조와 리듬, 반복과 혼돈을 자신만의 시각적 질서로 표현해 새로운 미학을 경험하게 합니다.

공간의 초상화를 그리는 칸디다 회퍼
회퍼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도서관, 극장, 박물관, 궁전, 성당 같은 공공 건축물을 촬영하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사진에는 인간이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흔적과 질서가 건축물 곳곳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습니다. 고요한 공간에 축적된 인간의 역사와 문명을 사진으로 포착한 것이죠. 회퍼는 자신의 작품이 침묵과 거리감을 표현한다고 직접 말한 바 있습니다. 회퍼는 그 외에도 색, 빛 그리고 분위기를 중요시했는데요. 사진 작업을 할 때 라이팅을 쓰지 않고 최소 장비로 자연광으로 촬영합니다. 공간이 말하는 빛의 위치를 찾아 사진을 찍는 것입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처음에는 공간의 구조가 보이고 점점 공간 안에 있는 디테일들이 보입니다. 공간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공간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시간성도 느껴집니다. 인간의 부재 속에 공간이 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그녀의 사진 작품 세계는 그 어떤 사진보다 아름답습니다.

사진 매체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토마스 루프
루프의 대표 연작은 대형 인물 초상 사진입니다. 인물은 정면을 응시하며, 감정이 완전히 배제된 하나의 피사체로 존재합니다. 전통적인 초상 사진의 형식을 따르되, 불필요한 요소들은 철저히 제거된 채 촬영된 사진입니다. 언뜻 보면, '이런 사진이 과연 예술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관람객은 그의 사진 앞에서 마치 아주 큰 여권 사진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피사체인 인물이 살아 숨 쉬는 듯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토마스 루프는 관람객이 사진이라는 매체 자체를 인식하길 의도하며, ‘사진이 과연 진실을 담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또한 그는 마치 과학자처럼 사진을 탐구합니다. 예를 들어 NASA의 이미지, 인터넷 이미지, 포르노그래피 이미지 등을 직접 촬영하지 않고 수집한 후 변형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식과 개념을 통해 사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험하는 것입니다. 루프는 현대 사회에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 속에서, ‘무엇을 찍는가’보다는 ‘어떻게 보여지는가’에 더 집중합니다. 이미지들이 더 이상 현실을 담지 않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그는 이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저는 사진을 공부하며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마주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진들이 왜 예술이라 불리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작품을 반복해서 보고, 작가들의 인터뷰를 읽고, 예술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금씩 그 세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대 사진도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현대 사진가들이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하며, 사진이라는 매체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람들임을 느꼈습니다. 사진은 매우 특별한 매체입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왜곡하고 조작할 수도 있습니다. 언론, 상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사진이 과연 예술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저 역시 모든 사진이 예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지로만 보면 구별이 어려운 경우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예술로 바라보는 것은 때때로 다른 어떤 매체보다도 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사진이 현실을 해석하는 또 하나의 언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각자의 언어로 사진을 찍고,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계를 담아냅니다. 사진은 현실과 조작, 기록과 해석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지금껏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 우리는 사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멈추지 않고 사진이라는 매체의 경계를 밀어붙이며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구르스키, 회퍼, 루프 같은 작가들을 저는 깊이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