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Tail>

임재형 개인전

<꼬리 Tail>
<꼬리 Tail>, Yk Presents, 2025.05.20 - 06.05 | 이미지_양승규


불꽃은 목안을 점거하며 타오르듯 지냈다. 그곳을 통과하는 모든 숨엔 얼마간 맹점이 붙어있었고, 시간 지나면 사라질 역량이 그것과 함께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깊숙한 잠에 빠지지만, 번잡스러운 각성에 피로는 상시 눈밑에 기거한다. 어떻게 할 요량으로 시작을 던졌는지 모르나, 사철을 불 때면서 지낸 이의 우환이 조금은 줄어들길 바란다. 시작은 기대보다 더 멀리 떨어져 눈 밖에 났다. 기꺼운 기호로 장식된 거리를 걸으며 언젠가 이런저런 날과 넋, 그리고 감각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한참을 두리번거렸던 때가 오후였는지 기억나지 않아 자못 쓸쓸해 하기도 하였다.
빈 주머니와 어울릴 감상은 예기치 못한 낙상으로 곤란에 처한 이의 뜀이었다. 온종일 웅크리다 보면 맞이하게 되는 현상과 환상의 다름이 여간 순수하여 쥔 것 없는 손으로 다량의 언어를 잃기도, 별 뜻 없이 허공의 한 점을 노려보기도 했다.
방문의 여닫음으로부터 잔잔한 말의 속성까지 내달렸다. 존재와 부재의 시각은 조금 늦거나 이르다.

POND, 2025, OIL AND ACRYLIC ON CANVAS, 91 x 91CM_이미지_양승규

먼 산은 가끔 그에게 다가오곤 했다. 날이 저물 때나 간 밤이 떨었을 때 이를 오차 없이 알아채고 그의 곁에 섰다. 생김대로 말이 없었지만, 그것이 침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정적의 껍데기는 어디까지나 암호일 뿐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붙박이가 되는 것. 한때 포개지듯 이루어진 포옹이 까마득하게 여겨졌다.
낮게 울려퍼지는 소리는 사람의 것이 되기도, 복도의 것이 되기도 했다. 불분명한 말을 덮고 뼛속까지 파고든 추위를 가두었다. 괜한 소리 하지 말라던 이의 사려가 드문드문 시려왔다. 이러다 결국 속 탄 골목에 상접할지도 모르나, 저기 희뿌연 다발을 보니 미리 알아챈 속셈도 다 부지기수의 타향인 것을.

의식은 누구나 마다했던 역할을 뒤집어 책임 속에 깃든 부스러기를 찾아냈으니, 굉음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광채가 선선한 저녁에 가득 움텄다.
수척한 가을 낯이 이리도 가물거리는 게 꼭 함구할 수밖에 없는 사실 같아도 흐드러진 토양에 거듭 죄인 눈은 감겼다 떴다가 하고.

FLOWERS / SMOKE, 2025, OIL AND ACRYLIC ON CANVAS, 194 x 112cm | 이미지_양승규

평이한 감각들은 졸곤 한다. 성한 몸으로 끝까지 치달은 문지방에 성곽의 일부가 자리 잡고, 요새 통 말이 없던 이가 주변머리 없이 주절거릴 때 졸음에 얽힌 생각은 시원치 않은 작별에 들었다.
저마다 높인 목소리에 천장이 바탕을 잃어도 많은 굴곡이 쌓인 지렛대는 방금 전과 동일한 일상을 양산할 뿐이었다.
가끔 알 수 없는 충족을 원하고, 미덕의 미련과 시련에 꺾인 들숨을 바랐다. 반복되는 퇴고에 지친 건 세상 만물 중 눈이라, 뻑뻑한 이동이 이를 외면하듯 증명한다.
"말 무더기에는 자칫 하면 흘러넘칠 빗물이 가득하다. 목적 없는 소용이 욕지기에 고생이었다."
창문은 불과 앉은 곳에서 대여섯 뼘 정도 떨어져 있었다. 그것은 줄곧 이국적인 풍경으로 가는 통로의 기반을 다지며 무난한 재앙에 걸친 작디작은 발로서 존재했다. 기묘한 인상의 깃발이 흔들리는 장소에서 무릇 찾아낸 벌판은 벌목에서 비롯되었다. 자칫하면 탐욕스럽게 보일 벌목이었다. 그곳에서 조리있게 말하는 습관이 자라며 뜻의 바깥에서도 자생할 심정을 가끔가다 볼 수 있다.

POND, 2025, ACRYLIC AND OIL CANVAS, 112 x 194CM | 이미지_양승규

고립과 더불어 무지한 때가 이어졌다. 현상의 꾸밈에 대한 생각도 멎고, 먹고 살 걱정에 떠난 밤낮도 아물었다. 일거리는 쉽게 불타고 과도하게 연기를 토해냈으며 멀쩡한 치들이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녔다. 열기 띤 바람이 불었다.
들녘의 곧은 팔이 시기상조를 아우르며 버젓이 존재하는 사이 인상을 자주 찌푸리는 고목이 고스란히 공백에 남았다(드물게 인상을 펴며). 만남과 배회는 주변에 성행하고 고립된 처지는 유행에서 동떨어져 주목도가 없다시피 한 목조각만 만지작거렸다. 까슬까슬한 촉감이 무언가를 깊게 호소하는 듯하다.
이리도 차가운 시간이 되면 이에 맞춰 생각은 얼거나 금이 가거나 했다. 이것대로 모진 일이라는 감상과 더불어 시작된 금기에 거리낌없이 색깔을 칠한다. 사라진 대상의 향방을 논한다.
유독 그늘진 거실이 안팎을 허물려 들 때 탁상은 둥그스름한 외형을 갖추고 공중을 분해한다. 혹은 그렇다고 시늉으로 행위를 갈음한다.

HEAD, 2023, OIL ON CANVAS, 32 x 42CM | 이미지_양승규T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