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생각 (들)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동양화과 오픈스튜디오 & 결과보고전

그림 생각 (들)
<그림 생각 (들)>, 홍익대학교, 2025.06.03 - 06.07 | 이미지_양승규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는 목을 길게, 빼고 말했다. 침착한 여운이 감도는 말미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것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점잔을 뺐다. 한동안 경직된 날이 이어질 것이다.
시원한 실내에서 무더운 바깥을 바라보는 건 생경한 감각을 느끼기에 충분한 환경이 되었고, 야기된 조건들은 주로 횡으로 달렸다. 맹렬한 기세가 가위 충동적인 모양새였다.
그는 본인이 말한 대로 정말 긴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그에게 어떤 사건에 관한 설명을 맡긴다면 그것의 전말은 군더더기 없이 드러날 터다. 때에 따라 앙상해 보이기까지 하겠지만, 내면에 속속들이 들어찬 정직에 다부진 체격은 기다렸다는 듯 가냘픔을 파훼한다.
"서론이 긴 이야기가, 더군다나 그 속의 한 사내가 구덩이로 굴러떨어지는 정경을 경험하였습니다."
무성한 수풀은 그을음을 비약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갖가지 수단의 수선을 시작했다. 여전히 목을 길게, 뺀 그가 이에 수행적인 면모를 들이밀었다.

두껍게 보면 경지고, 박하게 보면 이 지경인 처지는 괴로울지언정 고루하지 않았다. 완고한 객체의 소란을 어림잡아 잠재운 후 부랑자의 부러움을 여러 번 산 환경을 조성했다. 환멸과 멸시가 구를 이룬 지금도 여전히 틀에 박힌 과업은 종종 이지러진 사물을 열거하게 했으며, 언젠가부터 정확한 정박을 쫓게 했다.
탁한 바깥의 높이가 어느 안정에 들어 불가사의한 행동에 지침으로서 기능할 때 사소한 하늘은 열린다. 빈집의 가치가 차도 없는 병세 따라 오르고, 고도를 높인 열과 아직은 어정쩡한 악화. 공교로운 평화는 쥐 죽은 곳에 서늘한 공기를 놓아두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 닿은 장소에 속한 미덕은 시급한 일을 겪은 지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한다.
터럭에 걸터앉은 모양새가 언급한 태도는 심적으로 얕은 물가의 훤한 바닥을 상정하는지도. 양질의 시작은 얄궂은 면면이 있었다. 누구도 손자국투성이 창문을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사각으로 내몰린 시간으로부터 분명한 사안의 여울짐까지 심정은 열 중 하나의 빈도로서 존재했다. 투박한 솜씨에 조응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갈수록 줄어드는 응달에 양가의 감정을 느끼기도 하였다. 열띤 토로의 흔적을 가문 날에 물가 찾듯 구했지만, 이는 구부정한 자세를 바로 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수고였다. 곧 잊힐 한때의 우려를 철저하게 인식하며 아직 닿지 못한 마무리에 손이라도 뻗어 보는 것.
무심코 청한 악수의 중요성을 왼팔에 칭칭 동여맨 사람이 앞날에서 뒤숭숭한 생각 몇을 꾸었다. 그의 거동은 전과 다름없었지만, 거대한 목 넘김이 이동을 삼가기 시작했기에, 그는 머지않아 힘껏 박힌 판에서 떨어질 터였다. 울적한 사상이 한 발을 끌며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장면을 들쑤셔 극도에 이르기도, 혹은 눈 감음으로써 그렇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한편으로, 죄다 내성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면면을 고찰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인형사가 가늘고 긴 꿈을 꾸고 있는 사이 실내는 작게 움츠러들었다. 이 몸짓을 눈치챌 수 없는 건 이제 세상에 놀랄 일은 없기 때문이다. 경탄의 부재를 한스럽게 생각하던 이들 중 예상 밖의 삶을 사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모두 그저 혼란스러워만 하다가 지레 겁을 집어먹기도 전 식음을 전폐한 까닭이다.
예의 꿈이 어느 정도 할당량을 채웠을 때 인형사의 표정은 과잉과 여분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다. 그 끝에 마주할 무엇이 예사로워 견딜 수가 없다.
이유를 채근하다 보니 어느새 빈 주먹이 되었고, 숨을 공간으로 툇마루나, 다락, 그리고 굴이 언급되었지만, 죄다 머뭇거리는 통에 버젓이 드러난 몸뚱이를 형용한다. 인형사가 몸을 일으키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의식의 영역에 한 바느질이었다. 습관을 매개로, 버릇을 통계로 이루어진 작업은 사뭇 정적이었다. 차려진 아침 식사를 조감한 후 인형사는 손에 물기를 털었다. 기억에도 없던 세면을 용케 불러일으키며.

그 도시의 벽은 하나같이 낮게 형성되어 있었다. 도시 계획자의 다분한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순전히 우연의 소산으로 파악하기로 했다. 그러기까지 꽤 많은 기로를 마주쳐야 했지만, 선택에 어려움은 없었기에 하늘에 턱없이 모자란 높이를 조금 구워삶기도 한다. 대체로 무익한 삶을 통틀어 심지 빠진 등잔이라고 했다. 유행은 두 계단씩 밑으로 내려오는 듯하다.
방만한 도시에 주린 배를 억제하며 깃털이 억센 생각과 뻣뻣한 기능을 실험 위에 두었다. 되도록 목소리를 높이지 말자고 당부하던 이가 끝내 묵음에 도달했을 때 여러모로 보나, 나는 스스로에 접한 꼴이었다. 당시 정경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재주에 그만 헛기침을 한 것도 잠시, 별 뜻 없이 주변을 사선으로 보았다.
막막한 추위에 도리어 불탄 사역 동물 몇을 가상으로 쫓으며 호화로운 감상에 빠진 세월의 일부를 쥐는 것. 보기 드문 일의 방종이 못내 서럽게 흘러간다.

식료품의 집적은 가위 아름다웠다. 그 자체로 생명력을 발하는 자연이 찬장이나 서랍 혹은 창고에 제 존재를 기록하고 있었다. 서툰 희망 사항에 사물의 본바탕은 뒤숭숭해져 걸핏하면 의식에 꽁꽁 언 광을 쏘아붙였고, 그럴 때마다 그는 손끝에 한기가 돌아 무엇이든 붙잡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현재 머무는 장소에 대한 안도가 절반은 넘어 당장 이곳을 박차고 떠날 생각은 없지만, 언젠간 앞선 충동이 그를 알지 못하는 곳, 넘겨짚어 판단하는 곳으로 이끌 것이다. 이 음울한 예언은 종종 지나치게 맑은 날을 모으는지도 모른다.
기호로 난잡한 집기로 준비한 식사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얹고 그간의 졸음보다 더 응축된 숨을 가벼이 뱉었다. 일련의 과정으로 허기는 달아났다. 이제 상징적인 식사에 개념적인 예절로 대응할 때가 된 것이다.
절로 감기는 눈은 바람 부는 부두에 정박한 타성을 괴고, 시에 젖은 순간을 외고. 무수한 파문이 높낮이에 일었다. 앉고 서고를 반복한 가구(家口)는 이를 모르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