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우정을 다룬 영화 3선

친구가 전부였던 그 시절을 돌아보며

망한 우정을 다룬 영화 3선
출처: 영화 ‘하나와 앨리스’

“나 너 때문에 고생깨나 했지만 사실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공허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분들은 이 대사가 어느 영화의 대사인지 맞히셨을까요? 맞아요, 2022년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대사입니다. 끝난 사랑이더라도 그게 아니었다면 느꼈을 외로움이 잘 표현된 대사이죠. 망한 사랑 이야기에 대한 열광은 ‘헤어질 결심’에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는데요, 필자는 해당 대사가 망한 사랑의 핵심이라고 느낍니다. 마음의 양면이 잘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엇갈리는 마음은 사랑에만 있는 것은 아닐 거예요. 망한 사랑이 있다면 망한 우정도 있는 법입니다. 때로는 망한 우정이 더 오랜 여운으로 남지요. 특히 친구가 전부였던 10대에는 작은 균열도 강렬하게 다가오곤 합니다. 그렇지만 망했다고 여겼던 그 우정, 정말 망했던 걸까요? 새 학기를 앞두고 싱숭생숭해졌던 이맘때를 떠올리며 서툴렀던 마음을 돌아봅니다.

버터 감자로 불릴 만큼 화제였던 주연 케미 '해피엔드'

걱정 없이 행복했던 순간을 담은 영화

출처: 영화 ‘해피엔드’

근미래의 도쿄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해피엔드’의 주인공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를 포함한 다섯 친구는 클럽 음악을 즐기는 음악 연구 동아리원입니다. 이들은 출입이 막히는 밤에 몰래 동아리방에 들어가 음악을 틀고 노는 등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죠. 어느 밤 이들은 교장의 차량에 장난을 치고, 이후 도입된 학교의 AI 감시 체제와 이에 적극 대응하는 후미의 등장은 다섯 친구의 관계에 균열을 냅니다. 후미의 모습에 큰 영향을 받은 코우는 세상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며 유타를 한심하게 보기 시작하고, 그 생각을 망설임 없이 드러내요. 그런 코우를 바라보는 유타는 그저 전처럼 같이 놀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변화한 코우를 붙잡기란 어려운 일이죠. 영화는 관계의 위기를 지진, 다리 떨기 등 흔들리는 화면으로 보여줍니다. 그리고 격동하는 시절을 겪어낸 이들의 졸업식으로 마무리합니다. 졸업식에서 서로를 캠코더로 담고, 늘 함께 걷던 육교에서 인사하죠.

“다음에 보자” 

출처: 영화 ‘해피엔드’

다음을 기약하는 ‘다음에 보자’의 실현이 드물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모든 면이 닿아있다가 무너지며 흩어지는 영화 속 젠가처럼, 어떤 인연은 예상치 못하게 옅어집니다.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섯 친구는 웃으며 헤어져요. 아마 그들도 알았을 겁니다. 한 프레임에 담기던 이들이 각자의 프레임으로 떠나는 과정이라는 걸요. 그러나 이 흩어짐이 무용하지는 않습니다. 한 프레임에 함께 기록된 사진과 영상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하는 한 그때 그 시절도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닿는 법이지요.

이제훈과 박정민의 삐뚤어진 우정 '파수꾼'

서툴렀던 나를 떠올리는 영화

출처: 영화 ‘파수꾼’

갑작스레 기태가 죽었습니다. 기태의 아버지는 아들의 책상 서랍에 보관된 사진 속 친구들을 찾으며 아들의 죽음을 뒤쫓아요. 아버지의 현재와 서로가 전부이던 세 친구의 과거가 교차하며 영화는 진행됩니다. 친구들 사이 중심적인 위치에 있던 기태는 친구들을 간섭하고 통제합니다. 심지어는 폭력의 형태까지 나아가는데, 기태 본인은 이를 우정의 방식이라고 인지해요. 희준은 소극적인 데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기태의 폭력에 쉽게 노출되고, 동윤은 ‘그만해라’ 정도에 그치며 방관자로 머물죠. 이러한 셋의 관계에서 침묵과 회피는 축적됩니다.

출처: 영화 ‘파수꾼’

삐뚤어진 마음은 삐뚤어진 결과를 낳는 법입니다. 잘못된 형태의 감정 표현으로는 관계를 유지할 수 없죠. 결국 희준은 전학을 가고, 동윤 또한 자퇴를 택합니다. 잘못된 자신을 모르고 둘에게서 멀어진 이유를 듣지 못한 기태는 죽음을 택하죠. 기태는 그전에 물었어요. ‘뭐,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냐?’고요. 폭력의 누적과 관계의 파괴에서 새어 나온 상처는 보는 사람에게 전염되어 안타까움을 자아냅니다. 영화는 관계의 파열음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지만, 평범한 관계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친구에게서 우열을 느낀 경험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모두가 최악의 결과를 마주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태가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봤다면 다른 결말을 마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사랑했던 아오이 유우의 리즈 시절 '하나와 앨리스'

다퉈도 손잡던 우리를 기억하는 영화

출처: 영화 ‘하나와 앨리스’

영화 ‘하나와 앨리스’는 세 영화 중 가장 귀여운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어릴 적부터 단짝인 앨리스를 따라갔다가 미야모토에게 첫눈에 반합니다. 그를 쫓아다니다 머리를 다친 선배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아요.

"저 좋아한다고 한 거 기억 안 나세요?"

그러고는 선배의 전 여자 친구라며 앨리스까지 끼워 넣죠. 앨리스는 하나를 돕기 위해 이 거짓말에 적극 동참합니다. 그러나 마음이 마음대로 되나요, 선배와 앨리스는 서로 끌림을 느껴요. 앨리스는 연기에 진심을 섞게 되고, 하나는 앨리스의 마음을 의심하게 됩니다. 마침내 두 소녀는 서로를 비난하기에 이르죠. 등굣길 마주칠 수밖에 없는 둘의 온도차를 지켜보는 것도 재미 요소 중 하나랍니다.

출처: 영화 ‘하나와 앨리스’

‘하나와 앨리스’는 앞의 두 영화와 다르게 헤어짐으로 끝나지 않아요. 하나의 질투가 날카로워지고 앨리스의 태도가 달라지며 충돌하게 되지만, 앨리스는 하나의 만담 무대를 보러 갑니다. 하나 또한 앨리스가 모델로 발탁된 잡지를 함께 보며 웃죠. 거짓말 소동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멀어졌지만 끝내 화해하는 두 소녀의 우정을 지켜보면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영화는 두 소녀의 우정을 아름다운 봄과 여름으로 담아내요. 비 오는 거리에서 발레하는 앨리스, 바다에 놀러 가는 미야모토와 두 소녀, 녹음이 우거진 풍경을 뒤로하고 함께 웃는 하나와 앨리스. 엉뚱하지만 사랑스러운 청춘은 영화가 담아내는 빛과 색감으로 한층 돋보입니다.


그 시절의 엇갈린 마음들을 살펴보며 독자 여러분은 어떤 기억을 떠올렸나요? 친구가 전부이던 그때, 우리는 참으로 서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뭐가 그리도 아프고 앙칼졌는지 어린 스스로가 신기하기도 해요. 그러나 영글지 않은 미완의 마음은 떫기에 고울지도 모릅니다. 매끈매끈하게 잘 익은 푸른 대추처럼 말입니다. 청춘(靑春)은 푸를 청(靑)에 봄 춘(春)을 씁니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이지요. 새로이 돋아나 여린 새싹은 쉽게 상처 입습니다. 그러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죠. 어떤 꽃을 피울지 치열하게 고민하며 함께 자란 그 시절의 엇갈린 마음은, 지금의 내게 분명한 거름이 되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