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과 1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세 편의 SF로 우리의 미래 점치기
기술과 인간은 이제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습니다. 당장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만 해도 시각과 청각을 가뿐히 만족시킬뿐더러 훌륭한 저장 장치를 도맡고 있죠. 눈앞에 있는 노트북은 말 그대로의 CPU로서 공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점점 더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는 이미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인공 지능과 현대적인 도움 속에 매일을 살아가는 중이에요.
캐서린 헤일스는 이러한 인류를 '포스트휴먼(Posthuman)'이라 정의합니다. 기술과 인간의 융합으로 전통적인 '인간'을 넘어선 새로운 존재가 등장했다고 보는 것인데요. '정보'들의 조합으로서 신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식을 확장하며 탈경계 위에 놓이게 된 포스트휴먼들.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현재와 미래를 살펴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급속도로 변해가는 현실을 문화와 윤리가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를 검토하는 거죠. 신기술을 남용하거나 남발할 여지는 없는지. 극단적으로 치닫거나 보수적으로 정체되진 않을지. 이 새로운 삶을 앞으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어떤 것도 단정 짓지 않은 채, 열린 결말로 질문하면서요.
외면과 직면 사이 갈림길: 네오 소라, 해피엔드

수많은 점멸등이 깜박이고 긴급 뉴스가 구름처럼 떠다니는 근미래의 도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 국민을 향한 경계는 나날이 기세를 더해갑니다. 대지진으로부터의 '보호'를 이유로 이주민에 대한 근거 없는 혐오 감정을 퍼뜨리고, 이에 대항하는 평화 집회는 '폭동'으로 간주해 가차 없이 진압하곤 하죠.
그럼에도 고등학생 유타와 코우는 친구들과 함께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나날을 보냅니다. 전자 음악과 디제잉에 심취해 성인들만 출입 가능한 클럽에 몰래 들어가기도 하고, 아지트를 찾아 늦은 밤 학교에 잠입하기도 하죠. 자연스레 옥상에 올라가 피우는 담배처럼 익숙하게 저지르는 비행들. 그날도 눈에 띄는 비싼 차에 그저 발칙한 장난 한번 친 거였습니다.

그런데 교장 나가이는 이를 참지 않습니다. 일종의 '테러' 사태라고 선포하더니 촘촘해진 외부의 통제를 수용하듯, 곧 학교 전체에 AI 인식 체제를 도입하며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요. 자신들의 행동이 시시각각으로 평가받자, 세상에 신경을 끄던 아이들도 점차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재일교포인 코우는 더 이상 이 상황을 방관할 수 없습니다. 고작 신분 때문에 휴대 의무도 아닌 특별영주증명서를 자꾸만 확인받고, 똑같은 장난을 쳐도 더 쉽게 범죄자로 지목되니까요. 반면, 본토인인 유타는 그저 졸업하기 전, 하루라도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어차피 떠날 사람은 떠날 테고 작금의 상황은 바꿀 수 없을 테니, 불투명한 내일은 생각하려 하지 않죠.
현대판 파놉티콘 속에서 이들의 관계는 그렇게 갈라섭니다. 본인의 정체성과 신념에 따라, 포기와 수용으로, 회피와 방황으로, 또 분노와 연대로 대응하죠. 이에 끊이지 않는 경고음과 소란을 자신들만의 소리로 덮던 시절은 지나가고, 썩 개운하지 못한 해피엔딩을 맞이합니다.

결국 후미와 함께 교장실을 점검했던 아이들은 감시 시스템을 중지시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테러' 현장의 범인이라 자처한 유타가 퇴학당하죠. 여전히 안전을 위해서는 불합리함을 감수하더라도 규칙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어쩔 수 없이 제도권 안에 머물러야 할 시간도 아직 남아있습니다.
물론 희망도 피어납니다. 아타는 졸업식에서 끝까지 교장의 권위를 모욕하는 퍼포먼스를 펼칩니다. 톰과 밍은 이중국적을 안고 국내외에서 새로운 장을 넘기는 중이죠. 코우는 사회 운동의 유의미함을 깨달은 채 무사히 공부를 이어갑니다. 여태껏 현실로부터 도망치던 유타는 이제야 비로소 자기 삶을 마주하고요.

CCTV와 안면 인식, 녹음기와 핸드폰, CDJ와 우퍼 스피커 등 작은 전기 신호에서 출발해 사람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또는 순간의 자유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활용되는 기술들. 〈해피엔드〉는 그 파급력 속에 놓인, 당장의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닐 사건들을 다루면서 질문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치적 무기력에 빠져있지 않은지. 닥쳐올 일에 비관적인 태도로 일관하지 않는지. 기꺼이 갈림길에 서서 두려움을 내려놓고 발을 뗄 준비가 됐는지를 말이에요.
통제와 이탈의 탄생 서사: 소피 바르트, 팟 제너레이션

신선한 공기를 사서 마시고, '네이처 팟'을 통해 자연 풍경을 만끽하며, AI에게 하루를 안내받는 것에 이어 심리 상담마저 받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진’ 머지않은 미래. 이제는 알 모양의 인공 자궁 '팟'을 통해 임신과 출산도 보다 편리하고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생식계를 관리할 수 있기에, 여성은 더 이상 신체적으로 고통받지 않고 사회적으로 소외되지 않아도 되죠. 남성도 동등하게 태아와의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됐고요. 생물학적으로 부모가 될 수 없는 동성 연인은 마침내 아기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기회를 거대 테크회사의 임원인 레이철이 획득합니다. '팟'에 대한 선망 속 커리어 우먼과 엄마라는 호칭을 둘 다 쥐어 줄 승진 혜택 덕분에요. 그러나 앨비는 거부감을 먼저 느낍니다. 그는 여전히 흙과 나무를 소중히 하는 식물학자로서 ‘자연스럽지’ 않은 이 과정을 소화하기 어려워하죠.
하지만 이내 아내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불만과 의구심에 맞서며 '팟' 출산에 동참합니다. 밤낮으로 '팟'을 애지중지하고, 모니터링 앱으로 열심히 태교하며, 두 사람은 그렇게 서서히 부모가 되어가요. 그런데 출산일이 다가올수록 예상치 못한 난관이 이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일과의 균형을 맞추는 가운데 '팟'에 대한 유대감 차이가 발생하고, 애착의 중요성과 AI를 활용한 학습 등 장차 이뤄질 아이의 양육 방식에 대해서도 미묘한 의견 차이를 보이죠. 더불어, 업계의 '팟' 소유권 주장으로 인해 당장의 분만 장소조차 신경전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22세기의 아기가 태어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들. 그 쉽지 않은 진통을 이 영화는 기괴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장면 속 물음들로 표현합니다. 성차별 해소를 구실로 삼은 또 다른 거대 자본의 탐욕을 채워준 건 아닌지. 생산성을 이유로 인류의 상품화에 쉽게 동의한 건 아닌지.
모성의 신화 대신 초인간의 신화가 자리 잡진 않았는지. 진화를 명분으로 그동안 이어 온 자연과의 관계성과 그 의미를 폄하한 건 아닌지. 그리고 결국 서로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헤쳐나가기보다, 눈앞의 불편함을 소거하는 것에 그저 혹한 건 아닌지를 말이에요.

물론 앞으로 한 생명이 잉태하는 과정은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지겠죠. ‘팟’을 발명한 회사 ‘페가수스’가 자연을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이른 존재를 상징하는 것처럼, 기술은 계속해서 자연법칙을 지배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발전하곤 하니까요.
그러나 그 필요에 기계적으로 수긍할 필요는 없습니다. '팟'을 통해 얻게 된 아이를 앨비가 지켜둔 '셸' 아일랜드에서 낳길 바라며, 끝내 안전한 선택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레이철처럼요.
이해와 오해 속 비인간의 세계 : 코고나다, 애프터 양

반려 휴머노이드나 복제 인간과 가족을 이룬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그에 대한 편견과 혐오도 잔재하는 어느 미래 사회.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생활하던 안드로이드 ‘양’이 갑자기 작동을 멈추자, 제이크, 키이라, 미카의 삶도 멈추어 섭니다. 그의 퇴장을 앞두고 혼란이 찾아오죠.
아직 어린 미카는 다정했던 오빠가 그립기만 합니다. 함부로 말 못 할 속 이야기와 한밤중에 작은 속삭임을 들어주고, 중국 태생의 뿌리를 알게 해주었으니까요. 키이라는 그동안 미뤄두었던 죄책감이 밀려옵니다. 맞벌이 생활 때문에 그에게 아이를 전적으로 맡겼다가, 이제 그 빈자리를 부모로서 온전히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제이크는 '양'에게 들었던 돈과 그동안에 든 정 사이에 갈팡질팡하며, 어떻게든 그를 수리하려 합니다. 공식 판매점이 아닌 곳에서 중고로 구매했지만 보증을 받았던 그때처럼, 이번에도 합법적인 방법부터 불법적인 방법까지 가리지 않고 알아보죠.

'문화 테크노'는 많은 이들에게 호기심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의 체내에 '스파이웨어'가 심겨 있다고 믿는 괴짜 기술자나, 그들의 신비로움을 오래도록 연구한 박물관의 전문가 모두, 곧 부패할 '양'의 신체를 탐낼 정도로요. 그러다가 발견한 거였죠. 아주 작은 크기로 응집된 메모리 뱅크를요.
그것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기억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양'만 알 수 있는 기준으로 10초씩 녹화했을 다양한 장면들은 마치 하나의 숲처럼, 혹은 우주처럼 반짝이며 자리하죠. 그 세상을 탐험하는 동안, 제이크는 여태껏 알 수 없었던 '양'의 혼란스러움, 외로움, 깨달음, 설렘, 슬픔 그리고 행복한 순간들을 마주합니다. 과연 그는 어떤 삶을 살았던 걸까요?

'차'에 관한 기억도, 시간과 장소에 관한 기억도 '진짜' 있었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양'. 영화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속 OST인 'glide'를 들으러 가거나, 릴리 슈슈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슬며시 웃어 보는 '양'. 이미 중국에 관한 지식은 통달했지만, 중국인이 아주 좋아했다던 나비를 끊임없이 수집하는 '양'. 이는 자신의 의미와 존재 방식에 가졌을 끝없는 의문을 보여줍니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생사고락을 온전히 겪었던 '양'. 함께하던 이가 복제 인간으로 돌아오기까지 세대를 거쳐 홀로 기다렸던 '양'. 수많은 계절을 거치며 비슷하고도 다른 순간들의 포착을 몇 번이고 반복했던 '양'. 그러면서도 '무'가 없으면 '유'도 없지 않냐며, 끝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괜찮다는 '양'. 이는 그럼에도 기어이 살아낸, 어떤 한 존재의 깨달음을 보여주고요.

파편화된 거울 속 분열한 '양'의 모습처럼 그는 단순하게 정의되지 않습니다. 그 행적을 따라가며 인간 중심적인 애도가 이어질수록, 더 많은 것들이 일렁일 뿐이죠. 비인간인 그를 이해해 보려는 시도가 평생 인간을 이해하려 했던 '양'의 시간만큼 되풀이될 수 있을까요?
쉽게 단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탐구해야 할 하나의 삶으로 기억하면서. 그의 죽음을 전시하지 않고 영면을 지켜주려는, '양'을 품은 가족의 선택이 곧 우리의 보편이 되는, 바로 그 순간까지 말이죠.

지금까지 세 영화를 살펴봤습니다. 각각은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기도, 대적하기도, 넘어서기도 하죠. 그동안에 체화된 관습과 본능에 기반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면서요.
이처럼, 우리가 '포스트휴먼'이 되었다고 해서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전과는 다른 낯선 상황들 속에서 '인간'뿐 아니라 '비인간'을 포괄할 수 있는 윤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야겠죠. 그러니 그 격차를 좁히기 전까지 무조건적인 '발전'은 삼가야 합니다.
특히 특정 기술이 함부로 속단하지 않는지, 제멋대로 타자를 지우고 차별하며, 매끈하게 일반화하지 않는지를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은 옳고 그름, 정답과 오답, 정상과 비정상처럼 0과 1의 단순한 조합보다는, 제어할 수 없는 변수와 복잡한 공식으로 이뤄져 왔고 이뤄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