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램덩크, 명탐정 코난, 이누야사... 만화 거장들의 데뷔작

근사하게 변할 우리의 처음을 기대하며

슬램덩크, 명탐정 코난, 이누야사... 만화 거장들의 데뷔작
이미지 출처: 서울미디어코믹스

누구나 알고 있는 대작 만화가들도 처음엔 신인이었습니다. 그들의 데뷔작은 지금의 완성된 스타일과는 조금 다르지만, 현재의 대표작을 예고하는 징후가 숨어있습니다. 미숙함과 과감함이 공존하는 첫 시도에도 이미 그들의 서사적 DNA가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죠. 이번 아티클은 그런 처음의 순간을 통해 작가의 세계를 다시 읽어봅니다. 팬이라면 한번쯤 “이 작가가 처음엔 어떤 이야기를 그렸을까?” 상상해봤을 겁니다. 대가들의 성장을 엿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세요.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데뷔작 <카에데 퍼플>(1988)

스포츠 만화의 대명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슬램덩크』 의 매력은 등장인물 각자의 탄탄한 성장 서사와 생생한 묘사로 표현된 농구 경기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서사와 주특기로 주인공 강백호 못지않게 수많은 캐릭터가 사랑받았죠.  2023년 개봉한 영화의 인기는 『슬램덩크』 가 여전히 살아있는 걸작임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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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의 시작은 역시 농구 만화였습니다. 그의 데뷔작 <카에데 퍼플>에는 이미 서태웅을 닮은 주인공이 나옵니다. 이름 또한 서태웅의 원작 이름인 '루카와 카에데'로 같으며, 농구 외에는 관심이 없지만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점까지 닮았습니다. 루카와와 맞서는 불량 학생 '아카기'의 이름은 『슬램덩크』 채치수의 이름과 같습니다. 루카와에게 패한 뒤 특기생 입학이 좌절된 그는 루카와에 대한 분노를 숨기지 못합니다. 삐뚤어진 행동을 하지만 누구보다 농구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슬램덩크』의 정대만을 떠올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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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데 퍼플>, 이미지 출처: twicomi

아카기의 대결 신청으로 두 사람은 일대일 농구 경기를 하고, 경기 장면이 이어집니다. 『슬램덩크』 의 긴장감 넘치는 장면 전환과 앵글, 사실적인 묘사에 비하면 신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묘사는 아직 투박합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강백호의 기세처럼 속도와 집중을 그리는 패기가 느껴집니다. 코트를 내달리고, 농구공이 튀는 찰나의 긴장감. 이 모든 순간을 예술로 바꾸어 낸 그의 감각은 결국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명작으로 자라났습니다.

<카에데 퍼플>, 이미지 출처: twicomi

명탐정 코난 아오야마 고쇼의 데뷔작 <잠깐 기다려>(1986)

고등학생 탐정 쿠도 신이치가 의문의 조직에 의해 약을 먹고 초등학생 ‘코난’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만화 『명탐정 코난』은 지금도 연재 중인 걸작입니다. 비상한 두뇌를 타고난 천재적인 주인공이 옆집 박사가 만들어주는 각종 기계 장치의 도움을 받아 신체적인 한계를 극복하며 사건을 해결합니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숨긴 채 마취총 시계를 이용해 다른 탐정인 척 사건을 해결하고, 음성변조기, 스케이트보드, 위치 추적 안경 등을 유용하게 사용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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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의 이러한 공상 과학 소설 같은 특징은 그의 데뷔작인 단편 <잠깐 기다려>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공중 비행 장치를 개발해 천재 소년이라 불리는 고등학교 1학년 타카이는 2살 연상인 아베와 사귀고 있지만 주변에서 들리는 어리다는 놀림에 폭발하기 직전이었죠. 그래서 타임머신을 개발해 15살인 현재의 자신이 2년 전으로 돌아가 15살의 아베와 만날 계획을 세웁니다. 타임머신 개발에 성공한 날, 유타카가 망설이는 사이 아베는 기다리라는 말을 남긴 채 2년 후 미래로 갑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도 『명탐정 코난』과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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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활용한 이야기 구조와 SF적인 장치의 활용 등 코난의 세계를 예고하는 요소가 데뷔작에 녹아 있습니다. 이 만화는 30페이지 분량의 러브스토리지만 여기에 추리가 더해진 이야기가 『명탐정 코난』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나름의 논리로 기본적인 설정을 독자에게 설득하고, 그 위에 인물의 이야기를 쌓아가는 방식도 마찬가지죠. 이 한 발자국이 지금의 108권, 30년의 세계로 이어졌습니다. 아오야마 고쇼 단편집이라는 단행본이 출간되었고,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미래의 거장이 될 유망한 신인을 만나는 설렘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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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고쇼 단편집 구매 페이지

[고화질] 아오야마 고쇼 단편집 | 아오야마 고쇼
<명탐정 코난>의 작가 아오야마 고쇼의 단편들을 모으고 신작 단편을 수록한 특별한 단편집이다. 소인 탐정 죠지의 신기한 추리들로 가득한 탐정 조지의 미니미니 대작전>, 검술과 연애가 어우러진 플레이…

『이누야사』 다카하시 루미코의 데뷔작 <제멋대로인 녀석들>(1978)

다카하시 루미코는 『이누야사』, 『란마 1/2』, 『메종일각』으로 큰 인기를 누린 러브 코미디의 대가입니다. 2024년 넷플릭스에서 『란마 1/2』가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하며 작가의 작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모습을 보여주었죠. 40년도 더 전에 발표된 그녀의 데뷔작에는 작가 특유의 유머와 상상력이 살아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넷플릭스

<제멋대로인 녀석들>은 신문 배달을 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케이 앞에 '인베이더'라 불리는 외계인이 나타나며 시작합니다. 인베이더는 지구인을 정복하기 위해 케이의 몸속에 소형 폭탄을 심습니다. 인베이더의 UFO가 '반어인'들에게 통째로 잡히고, 반어인들은 지구상의 공기를 없앨 목적으로 케이의 몸속에 폭탄을 설치합니다. 탈출에 성공한 케이는 지구에 도착하지만 지구인들에게 외계인으로 오해받고, 지구인들은 우주인을 물리치기 위해 케이의 몸속에 또다시 폭탄을 심습니다. 폭탄 세 개를 품고 있는 케이에게 모두의 생존이 걸려 있음을 알게 된 인베이더, 반어인, 지구인들은 결국 살기 위해 머리를 맞대게 됩니다.

<제멋대로인 녀석들>, 이미지 출처: 소년 선데이 공식 트위터
<제멋대로인 녀석들>, 이미지 출처: 소년 선데이 공식 트위터

러브 코미디의 원조이자 교과서로 불리는 그녀답게 데뷔작에서도 과장된 유머와 로맨스, 액션이 경쾌하게 뒤섞입니다. 이후 발표된 첫 장편『시끌별 녀석들』의 예고편처럼, 평범한 남자 주인공 앞에 어느 날 이 세계의 존재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유쾌한 소동극의 뿌리가 여기서 피어납니다. 웃음과 소동 속에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감정을 놓치지 않는 상상력이 그녀를 시대를 대표하는 이야기꾼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서울문화사
<시끌별 녀석들>, 이미지 출처: 서울문화사

데뷔작 속엔 이미 작가의 모든 것이 숨어 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선, 거친 서사, 구멍이 많은 감정 속에서도 우리는 분명 그들의 대표작을 미리 엿볼 수 있죠. 거목도 하나의 작은 싹에서 자라듯, 그들의 첫 시도는 세대를 넘어 사랑받는 대작으로 피어났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2025년, 우리의 작은 시작도 언젠가 근사하게 꽃 피울 것을 기대하며 새해를 맞이해보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