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무게를 끌어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 탑승하기

인생을 바꾸는 사유로 빛나는 파스칼 메르시어의 대표작 두 권

언어의 무게를 끌어안고 리스본행 야간열차 탑승하기

‘이대로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많은 것이 안정적이고 자리 잡았다는 생각과 함께 찾아오는 내면의 질문입니다. 조화와 갈등은 마치 정반합과 같아서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안심 뒤에는 내적 갈등이 꼬리를 물고 따라오죠. 우리 모두에게는 내가 원하는 진정한 삶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근원적으로 내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과 새로운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은 늘 갈등 관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걸까요? 깊은 고민을 혼자 끌고 갈 기력이 없는 독자들을 위해 준비된 책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며 돌연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과 시한부 판정을 받아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하던 중에 ‘아이코, 그건 오진이었습니다’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듣게 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철학적 고민에 대한 해답이 될 만한 책인데 줄거리가 제법 흥미롭지 않나요? 두 권의 책은 각각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언어의 무게』입니다. 말로 다 표현되지 않는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그것이 인생에 어떤 무게를 갖는지 집요하게 연구한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대표작들이죠. 언어가 우리 자아를 구성하는 방식과 그를 바탕으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유의 여정을 다룬 이야기들,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언어의 무게』를 소개합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김나지움의 선생님입니다. 올해 57살인 그는 고전 문헌학에 통달하고 라틴어를 사랑하는 걸어 다니는 사전, ‘문두스’로 통하죠. 존경받고 신뢰받는 교사이자 동료인 그는 정해진 일과에 익숙함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투신자살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를 발견해 구해내는 돌연한 일을 겪고, 포르투갈 태생의 그녀가 남긴 언어의 멜로디가 계속해서 귓가를 맴돌아 혼란스러워집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삶에 벌어진 균열을 밀고 들어오는 남은 생에 대한 고뇌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폭풍처럼 느낍니다. 일상에서 벗어난 삶을 느끼며 문득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의 시간을 생각하게 되죠.

이미지 출처: unsplash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헌책방에 들어간 그는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한 책을 발견합니다. 언어에 대한 통찰을 기반으로 인간 존재와 영혼에 대해 풀어가는 사색이 인상적인 책이었죠. 심연을 건드리는 문장들에 이끌린 그는 어떤 필연적이고도 본능적인 욕구를 따라 리스본으로 떠나는 짐을 챙깁니다.

“오늘 오전부터 제 인생을 조금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더는 문두스 노릇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내면을 건드리는 눈부신 책,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 프라두의 흔적을 찾는 여행을 시작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포르투갈 여자를 만나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책을 만나 떠나온 여행길. 그레고리우스는 낯선 곳에 대한 불안함, 자신이 벌이는 무모함에 대한 불확실함을 떨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제껏 인지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자신 속에서 구체화되는 것을 느끼죠. 지금 이 순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게 깨어 있는 순간”임을 절감합니다.

탐정 소설 같기도, 모험 소설 같기도 한 이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요?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자를 관찰하는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듯, 독자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지켜보게 됩니다.

 

타인의 삶을 추적하는 이야기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스틸컷

무미건조한 삶을 살던 한 남자가 어느 날 낯선 언어로 쓰인 책을 만나 불현듯 모든 일상을 뒤로 하고 리스본으로 떠난 이야기. 이 소설은 극단적으로 다음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층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는 주인공 그레고리우스가 우연히 만난 책의 저자인 프라두의 인생을 추적하면서 그의 친구, 연인, 가족, 스승을 만나 프라두의 삶을 복원한다는 이야기이고, 둘째는 여정에서 인용되곤 하는 프라두의 글에서 얻을 수 있는 보석 같은 철학적 사유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무척 원초적인 방법으로 프라두의 삶을 추적합니다. 무덤을 찾고, 동네 사람 중 프라두를 아는 노인을 만나 가족의 주소를 받고, 그의 여동생을 만나고, 함께 저항 운동을 했던 동료의 요양원을 방문하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실마리를 붙잡으며 프라두 발굴을 이어갑니다.

이미지 출처: 씨네21

그레고리우스가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프라두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자이크처럼 흩어진 프라두의 면면을 수집해갈수록, 해독할 수 없는 포르투갈어로 쓰인 한 책의 저자일 뿐이었던 프라두는 다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형상을 갖춰갑니다. 프라두는 명민하지만 시대를 둘러싼 갈등으로 괴로워했던 직업인이이었고, 지적으로 충만한 시대 운동가였으며, 평생 가족과의 갈등과 고민을 안고 있었던 아들이자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날카로운 철학과 진솔한 자기 고백을 담은 프라두의 책, 미발표 원고, 편지, 단상들에 비추어 프라두를 기억하는 이들의 진술과 프라두의 진솔한 영혼을 대조해 가죠.

 

그레고리우스는 왜 프라두를 추적했을까

이미지 출처: 씨네21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그레고리우스를 끌어당긴 소설 속 허구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에 대해 알아가는 긴 여정을 그립니다. 아는 사람도, 아는 곳도 하나 없는 도시에서 프라두와 관련 있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삶에 깊게 관여되어 있는 프라두의 파편을 모아 프라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가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를 만난 사람들은 모두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하냐고요.

“저는... 저는 이 분이 살던 곳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을 알던 사람 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가 쓴 글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어요. 현명한 문장들. 아름다운 문장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 분과 함께 있다는 건 어떤 느낌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작가인 파스칼 메르시어는 「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에서 실마리를 제공합니다. “아마도 완전한 이해는 내가 낯선 삶의 형식에 스스로를 적응시킬 때만이 가능할 것이다. 그 삶의 형식으로 내가 들어가서 스스로 체험하면서 공감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낯선 언어로 된 삶의 공간을 체험하고 그 언어로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타자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를 탐구한 과정도 그러했죠.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에서 바로 ‘스스로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지는 단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행동 뒤의 생각과 감정을 거울처럼 인지하는 일이죠.

이미지 출처: unsplash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를 탐색하는 동안 소설은 프라두의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선형적 전개로만 흘러가지 않습니다. 화자이자 관찰자인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의 자기 기록과 사람들의 진술을 대조하면서 그의 영혼, 그의 철학에 깊이 공명하게 되고, 자신의 과거를 겹쳐보면서 묻어둔 과거를 회고하는 긴밀한 연쇄 작용이 일어나는 구조를 취합니다. 즉, 이 작품의 주제는 프라두의 인생 조각을 모아 완성하는 탐구 과정보다도 그 여정을 통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변화하는 그레고리우스의 서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는 용기, 깊은 성찰로서의 도피를 이뤄낸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은 단순한 일탈로 가볍게 치부되지 않습니다. 돌연 사직서를 내고 학교에 나오지 않는 그레고리우스를 바라보는 교장과 학생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선생님은 갑자기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은 것 같다. 조용하면서도 혁명적인 뭔가를 말이야. 소리 없는 폭발 같은 것이었나 보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폭발.”

이건 그레고리우스의 여정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경이로움이기도 합니다. “살지 않은 삶이 우리 안에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책 속 질문을 읽으며,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 편안한 삶에 균열을 내야 한다면 나는 그레고리우스처럼 용기를 낼 수 있는지 깊이 돌아보게 되거든요.

 

인생을 바꾸는 통찰, 프라두의 글

리스본 정경. 이미지 출처: unsplash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에서 프라두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그를 전혀 몰랐던 타인, 그레고리우스입니다. 그는 프라두의 글을 통해 이전의 자신이라는 편안한 한계를 모두 깨뜨리고 두려움을 떨쳐내는 데 성공합니다. 무작정 향한 리스본에서 새로운 인생을 향한 방황으로 호되게 고생한 그레고리우스는, 다시 베른으로 돌아와 자기 내면의 집착, 불안, 그리고 새롭게 싹튼 삶에 대한 욕구를 확인합니다. 그러고서야 재차 리스본으로 향합니다.

고전어 선생으로서 살아온 이전의 자기 정체성을 부수는 데는 프라두의 글이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죽음, 우정, 가족, 고독, 언어, 시간, 존재 등 인간 삶의 존재론적 물음을 끊임없이 던지는 프라두의 책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이 책이 자신을 위해 쓰였다는 확신을 갖고 계속해서 자기 영혼을 탐험합니다. 물리적으로도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프라두의 글을 여행 가이드북처럼 들여다봐야 했고요. 프라두의 영혼과 하나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여행이었으니, 어쩌면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된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레고리우스와 함께 프라두의 글을 따라가며, 바쁜 일상 뒤로 오랫동안 미뤄둔 질문들을 수면 위로 건져 올리게 됩니다. 일상적인 사건 지점마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사유를 펼쳐놓는 프라두는 명민한 제자처럼, 정직한 오빠처럼, 강인하고 불같은 기질의 친구처럼 우리 삶에 질문을 폭격하죠. 그의 글에 머무르며 천천히 독서를 이어가는 동안 우리도 그레고리우스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됩니다. 프라두의 성찰을 거울삼아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경험 말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습니다. 힘겹지만 안정적이고 익숙한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단순한 탈주의 욕망을 일으키는 것 이상으로, 모두가 느끼는 인생의 번민과 존재론적 고민을 철학적으로 건드리는 ‘철학 소설’이라고요.

언어의 무게

“글쓰기는 새로운 사람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명확성과 이해를 만들어낸다. 또는 그런 착각을 하게 한다. 자신의 언어에 운이 좋은 사람은 스스로를 향해 눈을 뜨는 것과 같아서 새로운 시간을 경험한다. 시의 현존이라는 시간이다.” _페드루 바스쿠 드 알메이다 프라두 《시의 시간》 1903년, 리스본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등장하는 ‘프라두’를 연상하게 하는 이름으로 『언어의 무게』가 시작됩니다. 위 서문에서 거론된 ‘글쓰기’, ‘이해’, ‘자신의 언어’, ‘시간’, ‘시’와 같은 핵심 단어들이 곧 이 소설의 문제의식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 서문으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의식을 선포합니다. 언어에 대한 철학적인 사유로 자기 삶에 대한 이해를 완결시키는 과정을 문학적으로 보여주겠다는 것이죠.

내 생각을 정확히 표현하기에 적합한 단어를 고르고 골라본 적, 있지 않나요? 가장 들어맞는 단어를 찾았다는 희열을 느낀 순간보다 어떤 단어도 내 마음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 답답했던 경험이 더 많을 것입니다. 하물며 순간의 감정이 아닌, 나의 인생을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찾아야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말이죠. 글쓰기라는 행위로써 단어를 고르는 작업이 곧장 ‘내 삶은 어떠했는가?’라는 거대한 성찰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글로 쓴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지. 나는 이제 그 생각들을 그냥 실행에 옮기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숙고하며 거리를 두고 마주할 수 있어. 생각들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나는 언제나 그 생각으로 돌아올 수 있지. 글씨로 표현됨으로써 생각은 예전에 조용하고 일시적인 정신의 일화일 때는 갖지 못했을 확실성을 얻게 돼. 이 확실성을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생각 속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지 제대로 알게 되고 배우지.”

작가 파스칼 메르시어는 본명 ‘페터 비에리’라는 이름으로 쓴 「언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라는 논문에서 “언어를 통해서만 인간은 비로소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156쪽)”고 말합니다. 그의 문제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듯, 파스칼 메르시어의 작품에서는 자유자재로 수많은 언어를 구사하던 등장인물이 자신을 위한 명확한 언어를 탐구하며 정체성을 완성해 갑니다.

남의 목소리에 힘을 주는 사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쓰는 사람으로

『언어의 무게』의 주인공 레이랜드도 언어를 만지고 음미함으로써 자신과 타인의 삶을 성찰하는 일이 일상입니다. 자기 생사 여부를 ‘특정 언어를 곧장 떠올릴 수 있는지’ 기준으로 진단할 만큼, 자신이 지니고 있는 언어들의 역사, 감정을 매개로 자기 생의 수많은 맥락을 인지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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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에 천착하며 살아온 번역가이자 출판사 대표 레이랜드는 런던 지하철과 거리를 헤매며 공상에 빠진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지하철 안내 문자와 방송에 환호하고, 역 이름을 읽으며 승강장의 타일과 이음새, 자동판매기를 생각하는 모습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 일상의 평정을 잃은 사람처럼 보이죠. 잠시 후, 그가 왜 이렇게 흥분했는지 밝혀집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으나, 그 판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직후였던 것이죠. 새 삶을 선물 받은 사람의 희열이었던 것입니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레이랜드가 뇌종양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정리하던 중 뇌종양은 오진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입니다. 그로 인해 삶을 다른 시선으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게 되죠. 이를 계기로 레이랜드는 평생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어떤 언어로 옮기는 것에 천착하던 사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담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나아갑니다. 번역은 원작의 의미, 원작자의 경험과 감정에 동화되어 정확히 다른 언어로 그려내는 일이라면 소설 쓰기는 자기 목소리를 찾고 고유한 생각을 내보이는 일입니다. 단순한 창작을 넘어 자기 성찰 과정이 필수로 동반되죠. 문학적 표현을 사용하는 일은 자기 정체성을 명확히 갖추도록 돕고 서사적 텍스트를 쓰는 것은 자기 세계에서 벗어나 타인에 공감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합니다. 이런 문학의 힘을 빌려, 레이랜드는 자기 성찰 완성의 서사를 향해 나아갑니다.

왜 ‘언어의 무게’일까

우리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매 순간 뼈저리게 느끼면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의식하고서 모든 순간을 마지막으로 여기게 된 레이랜드는 삶의 한계를 의식하고 “어떻게 살려고 했는지, 어떻게 살아야 했는지” 질문하지 않았던 지난날을 깊이 돌아보게 되는데요. 이렇게 주제 의식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 책의 제목이 왜 ‘언어의 무게’였는지 깨닫게 됩니다.

“크게 말하든 속으로 말하든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과는 달라. 다른 점 가운데 한 가지는 글로 쓴 생각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는 점이지. 나는 이제 그 생각들을 그냥 실행에 옮기는 게 아니라 꼼꼼하게 숙고하며 거리를 두고 마주할 수 있어. 생각들은 금방 사라지지 않고 지속되고, 나는 언제나 그 생각으로 돌아올 수 있지. 글씨로 표현됨으로써 생각은 예전에 조용하고 일시적인 정신의 일화일 때는 갖지 못했던 확실성을 얻게 돼. 이 확실성을 통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 생각 속에서 나는 과연 누구인지 제대로 알게 되고 배우지.”

머릿속에 들어앉은 종양의 무게(비록 오진이었지만), 즉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 레이랜드는 인생을 질량이 있는 실체로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새롭게 얻은 삶에서 자기 인생을 묘사할 가장 ‘정확한 언어’를 골라 첫 소설을 만들며, 스스로 내려야 하는 무수한 결정들을 마주하죠. 타인을 위한 언어였을 때는 몰랐던 언어의 무게는 나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경험을 설계하려는 시점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묵직하게 실체를 얻은 것입니다.

인생 탐구는 함께하며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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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이야. 물론 지금까지 지내온 모든 날도 마찬가지였지. 오늘, 그리고 앞으로 남은 날은 늘 조금씩 줄어드는 법이니까. 하지만 내가 그 한계를 알지 못했으니 지금까지는 남은 날이 가능성으로 열려 있었어. 하지만 이제는 달라. 나는 한계를 알고 있어.”

레이랜드의 인생은 온통 ‘언어’로 가득합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언어에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고, 다양한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 무수한 언어를 구사하고 레이랜드 못지않은 언어에 대한 탐구가 돋보였던 영혼의 단짝인 아내 리비아가 가장 인상적입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고 삶을 정리하는 동안 레이랜드는 이미 죽은 아내를 수신인으로 설정한 편지를 씁니다. 영혼의 단짝이었던 사람에게 모든 사유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가정만으로도 자기 인식이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편지라는 매개로 올바른 언어를 골라 자기 경험의 윤곽을 알아보려는 시도로요. 레이랜드가 리비아에게 쓴 자기 고백 편지는 책 전체에 내레이션처럼 나지막이 깔리며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지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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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이 네 언어로 말하는 걸 도왔다. 그들에게 네 언어의 목소리를 주었고, 네 언어가 그들의 목소리가 되게 해주었다. 네 언어에서 네 목소리는 어떠하지? 너 자신에게는 어떤 울림이 있을까? … 네가 이렇듯 뜨겁고 정신 나간 의지, 그리고 그 의지의 바탕이 되는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을 다시 한번 불태워서 너 자신의 단어로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펜을 잡길 바란다.”

레이랜드의 열정을 알아보고 그가 언어를 매개로 자기 삶에 대한 인식을 갖춰갈 수 있도록 조언해 준 삼촌 워런 숀도 있습니다. 작중에는 이미 사망해 등장 빈도가 많지 않지만, 레이랜드가 언어에 살고 언어에 죽는 사람이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생 멘토’죠. 이야기 전체에서도 서두에 등장하는 삼촌의 편지는 스포일러나 다름없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의 언어에 목소리를 주던 레이랜드가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이야기 형식을 취해 펜을 잡도록 응원하니까요. 레이랜드는 삼촌의 집에 기거하며 새로운 삶의 국면으로 나아갈 결단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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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버크가 정원에서 개와 노는 모습이 보였다. 레이랜드는 그 집으로 건너가 문장을 보여줬다. 쉼표를 넣을까, 뺄까? 버크는 책을 받아들고 상자에 걸터앉았다. … 레이랜드가 대답했다. “자네가 이 쉼표에 대해 함께 고민해줘서 행복하네. 내가 저 위에서 내내 뭘 하는지 자네가 이해한다는 걸 이제 알겠어. 나는 뭐가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자주 했다네.  ‘다른 사람들이 얼어 죽지 않으려면 어디서 자야 할지 모를 때, 쉼표와 세미콜론 중에 뭘 써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을까?’라고 말일세.” .. 버크는 담배를 한 모금 빨고 나서 말했다. “내가 사회적 불의에 얼마나 분노하는지 자네에게 말한 적 있지? 하지만 난 워런이 저 위에 앉아 있는 게 괜찮다고 생각했네. 워런이라는 사람의 특성과 관련이 있지만, 언어와 사고에 대한 열정과도 연관이 있었네. 나는 그런 건 거의 몰랐지. 요즘 나는 빈곤과 쉼표를 비교하는, 그런 중요함의 차등은 없다고 생각하네. 중요함은 동일하지 않아.”

삼촌의 이웃으로 만나 친구가 된 케네스 버크와의 관계도 아름답습니다. 삼촌 생의 마지막을 돌봐주었다는 무뚝뚝해 보이는 이웃 버크는 단호한 결단으로 사람들을 도왔던 약사였죠. 그 과정에서 약간의 불법이 더해졌다는 판결로 약사 자격을 잃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상대에게 진심으로 마음을 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외로운 사람이지만, 첼로 연주를 즐기고 고전과 언어에 제법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어 레이랜드의 작업에 의미 있는 의견을 건네 레이랜드에게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내 주변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봄 직한, 정직하고 현명한 친구죠.

 설명 없이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딸 소피아와 아들 시드니, 교도소 수감자였다는 독특한 이력을 배경으로 이후 언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회복한 안드레이 쿠츠민 등 매력적인 인물들이 가득한데요. 언어와 글쓰기를 중심으로 자신을 탐구하는 사람들의 빛나는 통찰과,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통찰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 자기 세계에 대해 명확히 인지해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일 자체가 눈부시게 감동적입니다. 책을 사랑하고 사색의 즐거움을 조금이나마 맛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언어에 대한 사유가 곧 자기 성찰인 주인공 레이랜드의 통찰, 그런 레이랜드가 주변인과 나누는 대화에서 넘쳐나는 철학적 메시지에 감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소개한 두 권의 책에는 분명 자신의 내면을 선명히 비춰주는 인물, 사유, 글이 있었을 겁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인생 그 어떤 지점에서든 누구든 고민해 볼 수밖에 없는 질문들이기 때문이죠. 여러분이 지금 어떤 국면에 있든,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 두 권의 책을 읽는 경험이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면 매치포인트는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이런 경험은 폭음이나 불꽃이나 화산 폭발과는 아주 거리가 멀어서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_ 『리스본행 야간열차』 중에서

 

참고 자료

  • 이홍경(2016), "어느 중년 남자의 자신을 찾아 떠난 여행 -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연구", 한양대학교, 독일언어문학 제71집(2016.3). 95-114
  • 유현주(2017), "읽기와 쓰기에 대한 은유 -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소고", 연세대학교, 세계문학비교연구 제60호 149 - 167
  • 신희선(2025), "'삶'과 '글쓰기'를 말하는 철학적 소설 - 파스칼 메르시어 『언어의 무게』를 중심으로", 단국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 빌둥 Buildung 제6권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