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긋나도 서로를 향하는 가족 영화 3편
가족은 무엇으로 완성되는 걸까, 궁금해질 때

가족 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시나요?
많은 이들이 배려, 안정감, 사랑 같은 따뜻한 단어를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우리가 숱하게 본 미디어 속 가족들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서로를 1순위로 생각하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현실 속 가족들은 이와 다릅니다. 삶을 공유하면서도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어설픈 사이기도 하고, 오해를 거듭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어디로 보나 이상적인 가족과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죠. 숱한 오해와 상처, 불안정함 속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키는 가족들. 조금은 엇나가고 이상한, 하지만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가족들의 이야기 3편을 만나봅시다.
기억을 잃어도 사라지지 않는 관계,
<더 파더>

안소니는 어느 날 아침, 앤에게 런던을 떠날 것이라는 고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프랑스로 가겠다는 딸의 폭탄 고백 이후 이상한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간병인이 훔친 것이 분명한 시계가 집안에서 발견되고, 외출 후 돌아온 집 거실에서 낯선 남자와 마주치기도 합니다. 낯선 이는 자신이 앤의 남편이라 주장하고, 장을 봐 돌아온 앤은 "제가 언제 프랑스로 간다고 했어요?" 반문해 안소니를 혼란스럽게 합니다. 심지어는 딸의 얼굴까지 바뀌어 안소니는 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영화 <더 파더>는 치매를 앓는 노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입니다. 안소니의 세계가 뒤틀린 것은 치매로 인해 모든 감각과 인식에 혼돈을 겪는 안소니의 현실을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고통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안소니의 곁에는 늘 앤이 있습니다.
앤은 때로는 난폭해지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나약해진 아버지를 지켜봅니다. 아버지의 병은 차도가 없고, 돌봄은 끝이 없습니다. 현실은 앤을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앤은 좌절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안소니와 앤이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된 뒤에도, 앤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안부를 묻고, 함께 할 새로운 시간을 계획합니다. 가족 간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닐까, 영화 <더 파더>를 통해 되새겨봅니다.
그럼에도 닿고 싶은 마음,
<더 웨일>

온라인 글쓰기 강사 찰리는 272kg라는 거구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출을 전혀하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강의와 배달음식 섭취만 반복하던 어느 날, 찰리는 자신의 몸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낍니다. 간호사인 친구 리즈는 이대로 가다간 찰리가 조만간 심부전으로 사망할 것이라 경고하지만, 찰리는 병원 진료를 거부합니다. 대신 오래 전 헤어진 딸 앨리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10대가 된 앨리는 학교에서 정학을 맞고, 낙제 위기에 처해있는 골칫덩어리 소녀가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삐딱한 시선을 던지는 것은 물론, 다시 만난 찰리에게 폭언도 서슴치 않습니다. 하지만 찰리는 앨리의 모습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앨리가 낙제하지 않도록 에세이 숙제를 도와주겠다 말하며, 두 사람은 함께 글쓰기를 하게 됩니다.

<더 웨일> 속 찰리와 앨리는 가족의 해체를 겪었고, 이 과정에서 생긴 오해와 상처로 완전히 틀어집니다. 동성연인 앨런과 사랑에 빠져 집을 떠났던 찰리는 앨리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어합니다. 또한 찰리가 여전히 앨리를 사랑한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려 하죠.
수많은 가족이 틀어지고 흩어집니다. <더 웨일>은 가족이라는 구조가 무너진 후 남은 이들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부모와 자식이라는 역할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두 사람을 엮어줍니다. 완벽한 용서와 화해가 없어도, 서로를 향한 끈끈한 마음으로 가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요.
나의 '좋은' 엄마,
<플로리다 프로젝트>

디즈니월드 근처 '매직 캐슬'이라는 싸구려 모텔에는 6살 무니가 살고 있습니다. 무니는 스쿠티, 젠시와 친구가 되어 매일을 즐겁게 보냅니다. 관광객에게 구걸해 얻은 동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나눠 먹고, 교회에서 나눠주는 빵과 음식으로 배를 채웁니다. 불안정한 일상이 반복되지만, 아이들은 마냥 해맑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계는 복잡합니다.
식당의 점원으로 종일을 일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스쿠티의 엄마 애슐리, 댄서로 일하다 해고된 무니의 엄마 헬리는 정부 보조금마저 끊길 위기에 처합니다. 그러던 중 무니와 스쿠티가 놀이를 하다 폐건물에 불을 지르자, 애슐리는 무니와 헬리와의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밀린 방세와 끼니로 걱정하던 헬리는 길에서 향수를 판매하고 구걸을 해 무니를 기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결국 매춘까지 합니다. 헬리가 매춘을 한 사실이 발각되며 헬리는 복지국에 무니를 빼앗기게 됩니다.
위험천만한 일상을 살아가는 헬리는 결코 좋은 양육자가 아닙니다. 복지국 직원들은 안정적이고 완벽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더 나은 가족'에게 무니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죠. 하지만 무니는 엄마인 헬리와 있고 싶어 합니다. 무니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겠다는 헬리의 마음은 잘못된 선택을 낳지만, 그 안에 존재하는 절박한 진심을 느끼게 합니다. 사회의 눈으로 볼 때 헬리는 '좋은 엄마'는 아니었지만, 무니에겐 누구보다 '좋은 가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가족이란,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때때로 완벽한 가족을 꿈꿉니다. 오해가 쌓이고 상처 주는 말을 주고받을 때면 이 관계가 진짜 가족이 맞는지 의심까지 하게 되죠. 미디어 속에 등장하는 이상적인 가족과 비교하고, 타인이 가진 안락함과 배려를 부러워도 합니다. 때로는 더 나은 조건을 갖춘 가족을 꿈꾸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족을 만드는 건 어떤 조건이 아니라 서로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을요. 가족은 처음부터 완벽한 모습으로 주어지지 않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완전함에 가까워진다는 것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