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문화를 담은 베를린 디자인 호텔 3선
힙스터 문화를 경험하는 베를린 스테이
유럽의 호텔 문화는 역사가 깊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순례자들이 잠시 머물며 쉬어가는 장소였고, 19세기 중반 그랜드 호텔(Grand Hotel) 시대가 열리면서 호텔은 단순한 숙박시설을 넘어 사회의 중심 무대로 자리 잡았습니다. 부유층, 정치인, 예술가, 사교계 인사들이 모여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내던 곳입니다. 물론 여행자들을 위한 여관 문화도 자연스럽게 발전했습니다. 마을의 큰 식당이 객실을 함께 운영하던 형태였고, 상인과 순례자, 여행자들이 모여 각지의 소식을 나누며 작은 문화 교류의 장이 되었습니다. 지역마다 다른 음식과 언어, 풍습이 자연스럽게 뒤섞이던 생생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렇듯 유럽에서 호텔은 오래전부터 단순히 ‘잠을 자는 곳’ 이상의 의미를 가졌습니다. 여행자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이 태어나는 장소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전 세계적으로 여행이 자유로워진 시대에 호텔의 역할은 더욱 확장되고 있습니다. 현대의 호텔은 웰니스, 미식,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경험을 큐레이션하는 하나의 플랫폼이 되었습니다. 특히 디자인 부티크 호텔은 시각적·감각적 경험을 공간 전체에 녹여냅니다. 공간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투숙객은 그 이야기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개방형 라운지와 카페는 투숙객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드나드는 커뮤니티의 중심이 되며, 호텔은 도시의 문화적 리듬을 체감할 수 있는 장소가 됩니다.
감성과 심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도시 고유의 문화 코드가 살아 숨 쉬는 곳인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의 디자인 호텔 세 곳을 소개합니다.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한 미첼베르거 호텔 (Michelberger Hotel)
미첼베르거 호텔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문화적 부흥이 시작된 상징적인 지역, 베를린 동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2009년에 오픈한 이 호텔은 오래된 공장 건물을 개조해 베를린 특유의 인더스트리얼 미학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입니다. 그만큼 재활용과 윤리적 소비에도 큰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베를린 외곽에는 ‘미첼베르거 팜(Michelberger Farm)’이라는 자체 농장을 운영하며, 이곳에서 재배한 유기농 식재료가 호텔 레스토랑의 주요 식재료가 됩니다. 이 호텔은 베를린의 쿨하고 창의적인 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전통적인 호텔과는 조금 다른, 열린 공간을 지향합니다. 획일적인 체인 호텔과 달리 개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내부 곳곳에서 빈티지 가구와 개성 넘치는 아트워크를 볼 수 있습니다. 객실은 모두 다른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공간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공용 공간은 집 안의 큰 거실처럼 기능하며,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누구와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 호텔은 예술가들에게 사랑받는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정기적으로 소규모 라이브 공연이 열리고, 다양한 아트 프로젝트가 진행되며, 창작자들이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예술가에게 열려 있듯, 미첼베르거 호텔 역시 그 창작성을 품어주는 인큐베이터로 기능합니다.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 시설을 넘어 하나의 지속 가능한 플랫폼입니다.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영감을 받을 것이며, 투숙객들은 이곳을 통해 베를린의 감성과 지역성, 그리고 예술적 에너지를 온전히 경험하게 됩니다.


ⓒ michelbergerhotel.com

현지인들의 핫스팟 비키니 호텔 (25hours Hotel Bikini Berlin)
젊은 베를리너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호텔은 베를린 서부 중심가, 쿠담(Ku'damm) 근처에 있는 비키니 호텔입니다. 25hours Hotel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시작된 브랜드로, ‘개성 있는 부티크 디자인’을 지향하는 체인 호텔입니다. 2000년대 초, 획일적인 체인 호텔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해 새로운 감각의 숙박 공간을 만들고자 했고, 현재는 유럽 전역과 중동까지 확장하며 각 도시의 정체성을 담은 다양한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비키니 호텔은 맞은편에 동물원이 위치해 있어 ‘도심 속 정글(Urban Jungle)’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베를린의 생동감을 담아냈습니다. 호텔의 객실은 두 가지 테마로 나뉩니다. 동물원 방향의 객실은 ‘정글룸’으로, 식물과 나무, 자연스러운 색감을 활용해 꾸며졌습니다. 창밖으로 동물원의 파노라마 뷰가 펼쳐져 객실 이름처럼 실제 정글 속에 들어온 듯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반면 도시 방향의 ‘도시룸’은 베를린의 산업적인 풍경을 담아보다 도회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비키니 호텔은 ‘비키니 하우스’라고 불리는 작은 고층 복합 건물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말 저녁이 되면 이 건물 앞에는 젊은 베를리너들이 긴 줄을 서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호텔 최상층에 위치한 몽키 바(Monkey Bar)와 NENI Berlin 레스토랑 때문입니다. NENI Berlin은 다양한 문화가 섞인 미식 경험을 선사하고, 몽키 바는 DJ와 라이브 음악으로 베를린의 밤 문화를 대표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루프탑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베를린의 야경은 파리 야경에 뒤지지 않을 만큼 힙하고 로맨틱합니다. 여행객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이유입니다.
비키니 호텔 내에는 코워킹 스페이스도 마련되어 있어 회의나 워크숍을 위한 다양한 크기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공간은 호텔의 콘셉트답게 자유롭고 유연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또한 9층에는 이 호텔의 숨은 매력 중 하나인 사우나가 있습니다. 베를린 동물원의 전망을 바라보며 건식 사우나를 즐길 수 있으며, 투숙객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베를린만의 에너지와 도시의 활력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비키니 호텔은 가장 베를린다운 선택지일 것입니다.


ⓒ 25hours-hotels.com

캠퍼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호텔, 카사 캠퍼 베를린 (Casa Camper Berlin)
캠퍼(Camper)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 신발 브랜드입니다. 신발 브랜드와 호텔의 조합이 다소 독특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유럽에는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는 호텔이 꽤 있습니다. 브랜드의 컨셉과 철학을 호텔이라는 공간으로 확장한 사례입니다. 캠퍼 역시 자사의 신발 디자인 철학인 편안함, 단순함, 기능성을 호텔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적용했습니다. 카사 캠퍼 베를린은 바르셀로나 지점에 이어 두 번째로 문을 연 곳으로, 2009년 베를린에서 가장 트렌디한 지역인 미테(Mitte) 지구에 자리 잡았습니다. 이곳 역시 바르셀로나 지점과 마찬가지로 산업 디자이너 페르난도 아마츠(Fernando Amat)가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카사 캠퍼의 가장 큰 특징은 ‘내 집 같은 편안함’을 제공하는 디자인과 서비스입니다. 객실은 침실과 욕실을 분리해 넓고 안락한 느낌을 주며, 특히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투숙객들에게 아늑함을 선사합니다. 앞서 소개한 두 곳의 호텔보다 화려함이나 힙한 분위기는 덜하지만, 그 대신 편안하고 편리한 감성을 강조합니다. 컬러와 소재 또한 캠퍼 신발을 연상시키는 심플하면서 세련된 붉은색 톤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천연 소재가 곳곳에 사용되었습니다. 이 호텔의 라운지 이름은 ‘Tentempié’로, 스페인어로 휴식 또는 가벼운 간식을 의미합니다. 이름처럼 라운지는 24시간 무료로 운영되며, 투숙객들은 언제든 편하게 머물며 베를린 시내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웰빙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어 투숙객은 핀란드식 사우나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헬스장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은 단순한 호텔 숙박이 아니라 캠퍼라는 브랜드의 철학을 체험하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디자인과 예술, 미식에 관심이 있으면서도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어반 노마드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아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호텔 자체에서 특별한 행사가 열리지는 않지만, 베를린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동네 산책은 물론, 미테 지역의 갤러리·부티크 숍·레스토랑 등을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입니다.


ⓒ casacamper.com
독일에 오래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유학을 시작했던 초창기에는 숙소에 큰 기대가 없었습니다. 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도 충분했지요. 그때는 정말 잠만 잘 수 있으면 됐고, 숙박비를 아껴 관광지를 한 곳이라도 더 가보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여행을 대하는 제 태도도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자 한 도시를 더 깊이 바라보고, 그곳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은 어떻게 이 도시를 살아가는지, 이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체감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베를린 여행을 계획하며 호텔을 먼저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베를린에 사는 친구를 통해 비키니 호텔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 예약해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비키니 호텔은 제가 그동안 경험했던 호텔들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객실은 크지 않았지만 충분히 안락했고, 깔끔하면서도 누군가의 생활이 은근히 스며 있는 집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호텔을 통해 도시를 경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능한 한 디자인 호텔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물론 너무 고가의 호텔은 부담스럽지만, 적당한 가격대에서도 그 도시만의 매력과 미감을 담아낸 호텔들이 많습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 중 하나인 베를린을 여행할 계획이 있다면, 디자인 호텔에 머물며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예술과 문화를 한껏 경험해보시길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