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연대가 갖는 의미
영화 ‘호루몽’으로 보는 자이니치 3세 신숙옥의 삶
타인을 대신하여 힘껏 목소리를 내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나는 추운 세상입니다. 어느 감독의 일본 유학 시절 TV 화면 속에는, 화려한 연변으로 우익 패널들을 당황시키던 한 재일 교포 여성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시위 현장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일본 사회의 소수자 차별에 반대하기 위해 기꺼이 손을 맞잡았습니다. 그렇게 ‘호루몽’이라는 영화가 탄생했습니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영화 '호루몽'은 재일 한국인 3세 '신숙옥'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영화는 실존 인물인 그녀가 등장한 방송물과 기록물, 그리고 감독의 취재 영상과 인터뷰를 토대로 신숙옥의 삶을 재조립하여 보여줍니다. 가난한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이후 혐오 범죄에 맞서는 인권 운동가가 되기까지 영화 속에서 신숙옥을 수식하는 키워드는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차별을 발판으로 사업가가 된 자이니치 여성
195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자란 신숙옥의 생애는 우리 대부분에게 낯선 이야기입니다. 할머니 ‘이백란’, 어머니 ‘케이코’, 그리고 그녀까지 3대에 걸친 자이니치의 삶을 대표하는 키워드는 차별과 가난이었습니다.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던, 동네에서 가장 기센 애로 불리던 그녀조차 자라며 깨닫게 됩니다. 사회에는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조선인'을 위한 자리가 없다는 현실을요.

방황하던 그녀는 고등학교 중퇴 후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합니다. 유리창을 닦으며 청소를 하고, 때때로 모델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계속해서 취업이 되지 않자 25살의 신숙옥은 기업의 여성 근로자 채용을 대행해 주는 ‘인재 육성 회사’를 직접 차립니다. 성차별 폐지가 화두였던 90년대의 시대적 흐름에 힘입어 그녀의 사업은 크게 성공합니다.
성공한 사업가에서 인권 운동가로
사업가로서 점차 이름을 알리던 시기에 신숙옥은 당시 도쿄 시장이었던 '이시하라 신타로'의 사퇴를 요구하는 단체를 설립합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인 집단을 타깃으로 한 그의 망언 때문이었습니다. 이 활동을 계기로 신숙옥은 인권 운동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갑니다. 이후 2013년에는 일본 전역에서 일어나는 소수자 혐오와 범죄를 막기 위해 ‘노리코에넷’이라는 네트워크를 설립합니다.

그녀의 대담한 행보는 사업 고객이었던 일본 기업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동시에 '여성 자이니치 사업가'라는 튀는 이력 탓에 그녀는 극우 단체의 주요 표적이 됩니다. 그녀의 이름을 내건 규탄 집회가 열리고 스토킹과 협박 전화가 지속되자, 신숙옥은 신변의 안전을 위해 잠시 독일로 떠납니다. 그러나 망명 후에도 계속되는 불안과 가족을 향한 위협에 결국 2년 만에 일본으로 귀국합니다. 돌아온 그녀는 사회에 맞서 싸워 이겨 ‘자이니치 교포 100년사’를 쓰겠다고 결심합니다.

소수자를 대표하여 반격하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이야기는 일본 방송사 DHC을 상대로 건 신숙옥의 명예 훼손 소송입니다. 2017년 DHC 지상파 프로그램 ‘도쿄 여자’는 신숙옥에 대한 유언 비어를 방송에 송출합니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 반대 시위에 참여한 신숙옥을 두고 그녀가 오키나와를 틈새시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 배후에는 북한이 있다는 내용을 사실처럼 언급한 것입니다. 방송사를 고소하며 신숙옥은 사회를 향한 본격적인 싸움을 치르게 됩니다.
영상 출처 JTBC 뉴스룸
영화는 약 4년간 이어지는 그녀의 재판 과정을 밀도 있게 다룹니다. 실제 재판 속 원고와 피고의 진술들이 영화 곳곳에 긴장감을 주는 장치로 배치됩니다. 1심과 2심, 3심의 재판 단계는 각각 할머니와 어머니, 그녀의 삶에 상응되어 다뤄집니다. 전쟁으로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던 1대 이백란, 한 평생 조선인이라는 신분을 원망했던 2대 케이코, 혐오의 역사를 직접 끊겠노라 결심한 3대 신숙옥의 삶을 다시 한번 조명합니다. 이러한 일대일 대응적 서술을 통해, 영화는 그녀의 재판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임을 강조합니다.

비서사적 장치로서 영화에는 여성들이 춤을 추는 장면들도 등장합니다. 소복을 연상케 하는 옷을 입은 세 명의 여성이 바닷가에서 원을 그리며 서로의 몸을 감싸기도 하고, 한복을 입은 모녀가 도쿄 타워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몸짓을 취하기도 합니다. 민족적인 정서가 담긴 장면들을 통해, 감독은 여성 3대가 흩어지고 함께하는 여정을 관객들이 더 가깝게 느꼈으면 했습니다.
사회의 수많은 미해결 존재들을 위해
3심 재판 속 최후의 변론에서 신숙옥은 그녀 자신을 ‘미해결된 역사적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재일 한국인이라는 국적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음을, 그녀는 일본이라는 국가가 만들어 낸 돌연변이임을 마지막으로 강조합니다. '함께 살아가요'라는 부제가 붙은 영화의 말미에는 소수자들과 계속해서 연대하는 신숙옥의 모습이 나옵니다. 서로의 생존을 위해 함께 싸워 온 오키나와 주민들을 만나고, 소수자를 위한 숙박 시설을 운영하며, 또 다른 평화 시위에 참여합니다. 생존을 위해 죽어서도 이겨야 하는 싸움을 선택했던 그녀는 이제 다른 이의 삶에 강한 힘이 되어줍니다.

올해 봄 이팝 꽃이 가득 피었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그리고 겨울의 첫눈이 내린 12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총 두 차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이일하 감독, 신숙옥 운동가가 참여한 지난 12월의 GV에서 여러 차례 강조된 단어는 '연대'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누군가의 물음에 신숙옥 운동가는 짤막히 답했습니다. ‘뭐라도 해야지. 열 번 도전하면 아홉 번 지고 한 번 이겨요.’ 극장을 나와 흩날리는 눈발로 온통 백지가 된 세상을 바라보며, 과연 이곳에서 어떤 몸짓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첫 대답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