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쓸모 있는 독립영화 가이드
2025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선정작 추천
영화진흥위원회가 설립하고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운영하는 인디그라운드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유통배급을 지원하는 센터입니다. 매년 인디그라운드에서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장·단편 독립영화를 소개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독립영화는 지하철역 전광판에서 심심치 않게 마주하게 되는 상업영화와 달리 관심을 두고 찾아보지 않으면 소식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올해 하반기 가장 열렬한 애정을 받은 <세계의 주인>처럼 최근에는 두각을 보이는 작품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립영화의 세계에 선뜻 방문하기에는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고민으로 망설이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지난해의 주목할 만한 한국 독립영화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독립영화 라이브러리는 이제 막 입문하는 분들에게 좋은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있어 좋은 프로그램입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정말 많은 독립영화가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는데요. 여기서는 또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고민을 덜어 드릴 수 있도록 올해 독립영화 라이브러리에 소개된 한국 독립영화의 어제와 오늘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세 편을 소개해 드립니다.

단편으로 체험하는 장르물의 맛 <함진아비>
이상민|2023|극영화|25min
영화 <함진아비>는 아들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 철규에게 고향 친구가 찾아와 함진아비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친구가 '순이'와 결혼한다는 말에 철규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지만, 간곡한 부탁에 결국 함을 팔아주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게 되는데요. 철규와 친구들이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의 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어 반가움과 동시에 마치 흐르는 시간 속에서 홀로 잠겨 있었던 것만 같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줍니다.
한국의 전통 혼례 문화를 소재로 한 <함진아비>는 공포 스릴러 단편영화입니다. 함을 팔기 위해 신부의 집으로 향하는 과정을 통해 관객들은 철규와 친구들이 묻어둔 과거의 비밀에 다가가게 되는데요. 장르영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를 짧은 러닝타임 안에 잘 담아내 인상 깊은 단편입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영화적 완성도와 스토리를 담아내야 하는 단편영화야말로 독립영화의 진미가 아닐까 합니다. 제한적인 공간과 시간 안에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는지 보고 있으면 말그대로 영화적 마법을 목격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것 <딸에 대하여>
이미랑|2023|극영화|105min
홀로 살고 있는 요양보호사 ‘엄마’의 적막한 하루를 깨뜨리는 전화 한 통, 바로 딸 그린입니다. 전세보증금으로 애를 먹던 그린은 상황이 여의치 않자, 자신의 동성 연인 레인과 함께 엄마의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세 사람의 불편한 동거는 이해할 수 없는 삶에 대한 충돌과 불화로 이어집니다.
제목을 보면 흔히 떠오르는 익숙한 중년의 여성이 동성애자인 딸을 마주하고 이해하는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영화는 보수적인 엄마와 진보적인 딸의 갈등이 일방적 이해로 봉합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엄마가 가진 정상 가정에 대한 집착이 어디서 오는지, 그가 가진 불안의 기원을 찾는 것으로 이해의 토대를 만들어 갑니다.
동성 연인을 둔 자식과 부모의 불화로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로 뭉친 사회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노출되는 혐오와 폭력으로 이어지는데요. 한때는 존경받는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요양원에 방치된 신세인 할머니 재희를 보며 엄마가 느끼는 불안은 그것이 사회에 편입되지 못할 딸의 미래이자, 자기 자신의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견고한 사회 구조의 앞에 익숙한 두려움을 느끼는 엄마와 그렇기에 더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믿는 딸의 관계는 어쩌면 영영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딸에 대하여>가 선택한 ‘우리’의 대안이자, 독립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적 삶인 것 같습니다.

웰컴 백 투 헬! <지옥만세>
임오정|2022|극영화|108min
임오정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 <지옥만세>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솔직히 담아낸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그 다짐대로 독립영화의 재기 발랄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두 명의 여고생 나미와 선우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습니다. 두 사람은 지옥 같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학여행 대신 폐목욕탕에서 동반자살을 모의하게 되는데요. 선우를 통해 자신을 지옥에 빠뜨린 가해자 채린이 잘 먹고 잘사는 것도 모자라 곧 유학을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미는 “그 애 인생에 스크래치라도 내 주자”며 복수심을 불태웁니다.
어머니 가게에서 훔친 돈 몇만 원과 그 애 인생을 흠집 낼 커터 칼 하나만 들고 떠난 복수의 여정에서 나미와 선우는 행복해 보였던 채린의 또 다른 지옥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을 10대의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지옥 같은 세상. 그 속에서 영화는 극적인 해피엔딩을 보여주는 대신 “절대로 죽지 마!”라고 외치며 변함없는 지옥에 만세를 보냅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 종교라는 사회 고발적 소재를 다루는 이 영화가 견지하는 태도는 문제의식을 확장하는 대신 인물들의 사적영역에서 벗어나지 않아 새로운 느낌을 주는데요. 할 수 있기에 대책 없이 저지르는 일들로 기어코 지옥을 살아내는 영화 <지옥만세>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달라진 두 사람을 통해 내일의 가능성을 이야기합니다.
독립영화는 상업영화가 다루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쟁점을 깊이 있게 다루는 영화로 정의[1]됩니다.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 지금 이 시대에 화두를 던지기도 하고(<함진아비>), 때로는 허를 찌르는 황당한 방식으로(<지옥만세>) 혹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는(<딸에 대하여>) 독립영화는 한국 영화의 오늘이자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그림자이기도 합니다.
우물 안 개구리라는 속담처럼 사람은 자신의 세계라는 우물 안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합니다. 그렇기에 제게 독립영화를 본다는 건 또 다른 세계와의 만남을 기대하게 만드는 순간입니다. 비록 동그란 렌즈 너머 재현되는 세계일지라도 내가 모르는, 그럼에도 나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엿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진흥위원회 독립영화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