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음이 아닌 이어짐, 건축의 오마쥬
낡은 질문을 새로운 문장으로 잇는 건축가들
처음 보는 예술 작품 앞에서 익숙한 감각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럴때 우리는 ‘모방’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요. 형태의 복제가 단순히 결과에 머무는 일이라면, ‘오마쥬’는 그 형태를 빚어낸 근원적인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라 볼 수 있죠. 진정한 오마쥬는 단순히 닮은 옷을 입는 것이 아닌, 앞선 이가 남긴 철학과 고민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가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존경의 의미를 담은 오마쥬로, 다양한 건축물을 소개하려 합니다. 스승의 철학을 빛의 언어로 계승한 안도 다다오, 도시의 숨결을 읽어낸 알바로 시자, 고대의 침묵을 현대적 언어로 되살린 루이스 칸까지. 닮음을 넘어 질문을 이어가는 이들의 세 가지 방식으로 건축이 새로운 창조성을 얻은 과정을 살펴볼게요.
스승의 빛을 투과해 빚은 침묵
안도 다다오와 르 코르뷔지에
많은 예술가들은 스승이나 존경하는 대상을 닮으려는 시도에서 창작을 시작합니다. 독학으로 건축을 익힌 ‘안도 다다오’ 역시 그랬는데요. 그에게 ‘르 코르뷔지에’의 ‘라 투레트 수도원’은 하나의 거대한 질문지였습니다. 안도는 스승이 보여준 거친 노출 콘크리트의 물성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안에 담긴 서사는 다르게 풀어냈죠.

<빛의 교회>는 존경의 의미가 담긴 오마쥬의 결정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승이 찬미했던 빛의 역동성을 극도의 절제를 통해 ‘고요함’으로 치환했는데요. 어두운 콘크리트 상자 끝에 뚫린 십자가 모양의 틈새는 장식적 형태를 복제한 것이 아니었죠. 스승이 ‘성스러운 빛’에 닿기 위해 추구했던 것처럼, 안도 다다오는 겸손하면서 날카로운 방식으로 같은 방향을 추구합니다. 겉모습의 닮음을 넘어, 공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영적 감동을 <빛의 교회>에서 보여주는데요. 스승의 오랜 화두를 자신만의 언어로 이어갑니다.


이미지 출처 : ArchEyes, © Hiromitsu Morimoto
도시의 지형을 담은 오마쥬
알바로 시자와 포르투
오마쥬의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습니다. 때론 한 도시가 가진 고유한 호흡이 건축가의 스승이나 영감이 되기도 하는데요. 포르투갈의 거장 건축가 ‘알바로 시자’의 <보아 노바 티하우스>는 포르투라는 도시와 이를 둘러싼 자연환경이 수천 년간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한 건축물입니다.

그는 해안가의 거친 암석과 파도의 비말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그 틈에 건물을 낮게 뉘었습니다. 포르투에서는 붉은 기와를 자주 볼 수 있는데요. 이는 도시의 상징적인 풍경으로, 붉은 지붕이 만들어내는 파노라마 뷰가 유명해 많은 사진과 그림 작가들에게 영감이 되곤 합니다.

<보아 노바 티하우스>에서도 눈에 띄는 붉은 기와 지붕과 암벽 사이의 조화는 주변 건물을 단순히 흉내 낸 것이 아닙니다. 포르투라는 도시가 지닌 ‘순응과 저항’의 역사를 공간의 태도로 오마쥬한 거라 볼 수 있죠. 땅의 굴곡을 따라 흐르는 동선과 바다를 향해 열린 창까지.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담을 수 있는지, 또한 도시의 일부로서 어떻게 겸허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태를 복제하는 대신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낼 때, 건축은 도시와 함께 하나의 풍경이 됩니다.

붉은 벽돌이 기록한 오마쥬
루이스 칸과 고대적 감각
현대 건축 건축가 ‘루이스 칸’은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으로 불리는데요. 빛과 침묵의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자주 소개되기도 하죠. 그는 모더니즘 건축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전통 건축에서 영감을 얻어 창의적인 방식으로 승화했습니다.
현대와 전통, 낯선 두 단어가 담겨있기 때문일까요. 루이스 칸의 건축을 보면 낯선 기시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의 작품은 현대적인 재료로 지어졌음에도, 수천 년 전 로마의 유적이나 이집트의 신전 앞에 서 있는 듯한 묵직한 풍경이 보입니다. 하지만 고대 건축의 겉모양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졌던 본질을 오마쥬했습니다.

인도 아메다바드에 위치한 <인도 경영대학>은 그가 고수했던 ‘물성에 대한 정직함’과 ‘고대적 감각’이 정점에 달한 작품입니다. 현대적 기술인 철근 콘크리트 구조를 사용하면서, 외장재로는 현지의 흙으로 구운 붉은 벽돌을 활용했죠. 그는 “벽돌은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가?”라는 유명한 자문을 남겼는데요. 질문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벽돌을 단순한 장식이 아닌 거대한 아치와 원형의 재료로 활용하며 묵직한 인상을 담아냈습니다.

건물 곳곳에 둟린 거대한 개구부와 깊은 복도는 인도의 뜨거운 햇살을 걸러,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냅니다. 이 침묵의 공간은 마치 수천 년 된 로마의 욕장이나 중세 수도원의 회랑을 걷는 듯한 정적을 선사합니다. 이런 건축물에서 수업을 듣게 되면 어떨지 상상해보게 되는데요. 이곳의 학생들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붉은 벽돌의 틈새로 느껴지는 고대와 현대의 조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처럼 루이스 칸은 형태와 재료를 흉내 내는 모방을 넘어, 건축이 가진 원초적인 힘에 닿기 위해 숭고한 오마쥬를 보였습니다.


Indian Institute of Management Ahmedabad (IIMA) / 이미지 출처 : dezeen
모든 것이 빠르게 복제되고 소비되는 ‘레퍼런스의 시대’에 오마쥬의 가치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오마쥬는 겉모양을 흉내 낸 것과는 다르죠. 과거를 모방하는 것을 넘어, 그 속에 숨겨진 본질을 꺼내 각자만의 해석을 담아 옮겨 심는 것입니다. 앞선 위대한 가치 앞에서 겸손한 자세로 새로운 것을 창작해내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결국 오마쥬란 누군가의 치열했던 고민을 이어 받아, 질문의 답을 찾아가려는 대화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창조성과 시대를 관통한 하나의 서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