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

디앤디파트먼트의 롱라이프디자인

사물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

오늘만 해도 몇 개의 물건을 그저 쓰고 버리고 선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유행한다는 이유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들었다는 이유로, 화려하거나 귀엽다는 이유로 말이죠. 디자인은 환상을 만들고 소비를 부추기는 일로 자주 오해받습니다. 하지만 디앤디파트먼트(d&department)의 창립자 나가오카 겐메이는 오래, 안전하게, 간편하게 사용하는 아름다운 물건을 좋은 디자인으로 정의합니다.

디앤디파트먼트(이하 '디앤디')는 20년 이상 장수한 물건을 취급합니다.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롱라이프(long-life)디자인'을 지향하죠. 올바른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대화하기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고집합니다. 때로 손님들과 함께 디자인 '공부회'를 열기도 하고요. 그렇게 디앤디는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을 넘어서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논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해왔습니다.

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요? 디자인은 우리가 물건을 어떻게 대하도록 만드나요? 디앤디가 제안하는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을 소개합니다.

새로 만들지 않는 디자인 가게

이미지 출처: d&department

버려진 물건들의 보물 창고, 재활용품점에 들러본 경험이 있나요? 디앤디는 재활용품 전문점에서 출발했습니다. 버려졌지만 훌륭한 디자인의 물건을 찾아 판매했어요. 이른바 '디자인하지 않는 디자인 가게', 새로 만들어 유행과 명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소개하는 곳입니다. 한번 사용된 물건을 매입해 잘 정돈한 뒤 다시 판매하는 방식, 이는 디앤디만의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어요.

이미지 출처: d&department seoul

버려질 뻔한 재활용품은 디앤디를 거쳐 다시 한번 순환합니다. 현재는 매장에서 새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 재활용품을 반드시 배치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물건을 포장할 때도 재활용 쇼핑백을 활용했어요. 한번 사용된 다른 가게의 쇼핑백에 디앤디의 테이프를 붙여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버려진 물건을 재발견하는 일은 일종의 사회적 운동이었어요. 사람들에게 오래 써도 좋은 물건의 가치를 생각하게끔 만들거든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일은 디앤디파트먼트에게 있어 물건을 파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프라인의 역할: 함께 공부하기

디앤디는 좋은 디자인을 선별해 소개하는 편집샵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지는 답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오래 살아남는 롱라이프디자인을 제시했지만, 이 역시 아주 엄밀한 기준은 아니니까요. 겐메이는 좋은 디자인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배워야 할 것이 끝없이 많다고 말했어요. 우선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의 생각과 태도, 배경부터 알아야 하고요.

그래서 가끔은 매장의 문을 닫고 공장 견학을 하거나 손님들과 공부회를 통해 물건과 디자인을 주제로 공부했어요. 디앤디 제주점에서는 '무엇이 제주다운가'를 주제로 손님들과 함께 토론하기도 했죠. 오프라인 매장은 디자인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대화하고 물건의 배경을 자세히 소개하는 교류의 장으로 기능합니다.

요즘은 온라인에서 주로 구매가 일어나고, 오프라인은 보조 수단인 경우가 많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은 물건을 멋있게 보여주는 쇼룸의 역할을 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디앤디 역시 웹사이트를 활용하지만, 중심은 오프라인 매장에 두었어요. 온라인에서는 물건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 능동적으로 소비하기 어렵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할인율과 편의성에 집중하는 만큼 제품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렵고요. 반면에, 오프라인 매장에서는 판매하는 사람과 손님이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누면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물건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보고, 고민하고, 대화하고, 그만큼 오래도록 사용하는 것. 이는 디앤디가 롱라이프디자인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디자인의 비전이자, 사물과의 새로운 관계 맺기 방식에 대한 제안이었어요.

60년대에서 발견한 롱라이프디자인

이미지 출처: karimoku60

오래도록 가치 있는 디자인에 대해 파헤치다 보니, 특정 시기에 생산된 제품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1960년대였어요. 이 시기에 생산된 가구와 물건들은 수명이 길고, 유행과 상관없이 여전히 아름다우며, 사용하기 편리했어요. 여기엔 역사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생활을 다시 부흥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디자인 운동이 일어나던 시기거든요. 국가, 디자이너, 제조업체, 소비자 모두 '좋은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영감을 받아 디앤디의 '60비전(vision)'이라는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어요. 1960년대의 좋은 디자인을 재발견하는 일이었는데요. 당대 생산된 재활용품을 판매할 뿐만 아니라 생산이 중단된 제품을 원 제조사를 통해 복원했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가구 회사 가리모쿠와 협업해 1960년대에 출시되었던 아이템을 복각했어요. '가리모쿠60' 라인은 지금 보아도 세련되고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롱라이프디자인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죠.

가리모쿠를 포함해 총 12개의 회사가 참여해 60비전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디자인을 만들어 낸다는 1960년대의 초심을 되살리는 일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는 디앤디가 지향하는 좋은 디자인에 대한 충분한 힌트가 되어주었습니다.

지역의 감각과 개성을 연결하기

감각적인 디스플레이와 큐레이션, 독특한 판매 방식에 힘입어 디앤디 매장은 일본 전 지역으로 확대됩니다. 이때 겐메이는 세 가지 원칙을 제시했어요. 하나는 본부에서 직접 고른 롱라이프디자인 물건을 소개하고 판매할 것, 그리고 지역의 개성과 물건을 소개하며 교류의 장이 될 것, 마지막으로 먹고 마시는 공간을 함께 열 것. 도쿄를 시작으로 홋카이도, 후쿠시마, 교토, 오키나와를 포함한 15곳에 디앤디의 지역점이 생겼습니다.

디앤디의 지역점은 단순히 위치만 다른 '사업 확장'이 아니었어요. 겐메이는 이를 "지역의 우수한 특성을 최신의 감각으로 번역해서 전하는 장소"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곳에서 각 지역의 전통 공예와 특산품, 축제 등을 소개하고자 했죠. 전 지역 공통의 롱라이프디자인 제품과 지역의 공예품들을 함께 배치해서 판매했어요. 지역점은 수공예자들의 주기적인 생산과 공예품의 소비를 돕는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d&department

디앤디는 지역의 매력을 발굴하고 드러내기 위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디자인과 여행을 주제로 <d 디자인 트래블>이라는 잡지를 발간한 것인데요. 매호 하나의 지역을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북이지만, 디자인을 주제로 삼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관광 가이드와 다릅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기보다는 디앤디가 지향하는 디자인의 관점을 담았어요. 숙소, 카페, 식당, 공예품과 사람들까지. 오래 지속되는 것, 지역다운 것, 본질적인 가치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소개합니다.

지역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지역민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납니다. 소개한 장소나 사람과는 취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나가고요. 잡지에 게재된 곳을 독자와 편집부가 연 1회 재방문하는 '빙글빙글 투어'도 마련했어요.

이처럼 디앤디가 지향하는 디자인은 지역 커뮤니티와의 연결성 속에서 드러납니다. 물건 하나를 소비하는 일은 단순히 결제 행위에 그치지 않고 물건이 속한 지역 사회망을 이해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디앤디파트먼트의 디자인 철학은 우리가 사물에, 자본에, 온라인에 의존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이곳의 소비자는 직접 매장에 들러 물건을 고르고, 사람을 만나고, 물건을 사용하며 긴 시간을 쌓습니다.

'빈티지 가구', '세컨핸즈', '당근마켓'까지 좋은 물건을 오래 쓰는 일이 다시 주목받는 지금, 디앤디의 롱라이프디자인은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물건을 정말 알고 사용하고 있는 걸까요? 이 물건이 어디서 왔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지역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소비 방식은 달라집니다. 소유가 아닌 관계로 사물을 대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물에, 자본에, 유행에 의존하지 않는 삶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