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지키는 기록의 힘
나의 궤적을 되돌아보기
한 해가 마무리 되어가는 11월입니다. 연초에 세운 계획, 얼마나 지키셨나요? 초심을 지키는 일은 늘 어렵습니다. 일터에서의 초심뿐 아니라, 취미, 관계, 일상 등 그 무엇에서도 처음의 마음은 잊히기 마련이죠. 뜨거웠던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식어가고, 안 그래도 작아지고 있는 마음을 무너뜨리는 방해꾼들과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할 때가 많은데요. 초심을 지키는 방법은 무궁무진하지만, 그중 가장 좋은 방법은 지난 궤적을 모두 담은 기록을 통해 나의 시작점으로 다시 되돌아가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심을 지켜주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주는, 기록의 힘을 담은 책 세 권을 소개합니다.
나를 지켜주는 기록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일터에서 초심을 잃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완벽하고자 지나치게 애쓰고,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무리하는 과정에서 오는 좌절, 불안 등의 부정적인 감정들일 거예요.『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는 김키미 작가가 ‘셀프 칭찬 일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난 과정을 그립니다. 칭찬 일기라고 하면 왠지 어린이들이 포도알 스티커를 붙여가며 쓸 것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칭찬 일기 쓰기는 그 누구보다 칭찬받을 일 없는 어른에게 필요한 활동임을 알게 됩니다.
김키미 작가는 회사 생활, 작가 활동을 겸업하며 밤에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상을 보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하고 푹 쉬는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요. "아무것도 안 하고 쉰 나, 칭찬해!"라고 셀프 칭찬을 하고 잠들었더니 오랜만에 푹 잠들었던 이날을 계기로, 나 자신을 칭찬하는 '셀프 칭찬 일기'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칭찬 일기의 초반에는 타인으로부터 받은 인정, 능력 발휘, 나를 무리하게 움직여 완성한 일 등 일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칭찬을 하면 할수록 점점 일주일에 한 번 채식하기, 8시간 잘 자기 등 일터가 아닌 내 일상에서의 칭찬할 거리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셀프 칭찬을 통해 일의 결과가 아닌 과정을 중요시하는 법을 진정으로 배우게 되면서 더 이상 무리하는 방향이 아닌 건강하게 오래 지속하는 방향으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셀프 칭찬 일기는 타인의 기준에서 잘한 것을 칭찬하는 것이 아닌, 나만 알 수 있는 나의 성실한 태도, 다정한 표현, 적당한 포기, 새로운 시도 등 을 칭찬한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혹한 편이신가요? 오늘 밤, 남들은 모르고 스스로만 아는 자신의 순간들을 칭찬한 뒤 잠들어 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도 잘 살아낸 나, 칭찬해!
그동안 나는 일을 잘하는 게 성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진정으로 일을 '잘'한다는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자꾸만 '무리되더라도 해내는 나'를 칭찬했던 거다. 매번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두고 거기에 맞춰 무리하게 사는 습관이 일과 일상에 배어 있었다. 하지만 더는 그렇게 살 수 없었다. ...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성취 지향이라는 두꺼운 벽을 넘어 삶의 지향을 찾은 나를 칭찬한다. 만약 살다가 한 번씩 또 무리하게 되더라도 오늘의 칭찬을 기억하고 무사히 제자리로 돌아올 나를 믿는다. _김키미,『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실패의 기록도 빛날 수 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

언제나 긍정적인 기록만이 빛나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와 실수, 좌절을 정직하게 기록하는 일 또한 중요합니다. 실패를 마주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일어선 기록은 내가 왜 이 길을 택했는지, 어떤 마음 때문에 절망에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지를 다시 되새겨보게 하기 때문이죠. 실패의 기록을 담은 창업자 박소령 작가님의 책을 소개합니다.
『실패를 통과하는 일』은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를 10년간 이끌었던 창업자 박소령 작가가 쓴 사업 노트입니다. 퍼블리 대표직을 내려놓은 뒤, 그동안 사업을 운영하며 있었던 글을 모두 써 내려갔고, 이 실패의 기록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것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책으로 출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 책의 소개 글을 접했을 땐, 창업에 관심 없는데 꼭 읽어야 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이 책은 잘못된 선택 그리고 실패, 고통 앞에서 이를 어떻게 정면으로 마주하고 다루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주된 이야기였습니다.
이 책은 구성 또한 독특한데요. 지난 10년의 결정적이었던 순간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나의 기억' 파트, 그 시기를 지금 현재의 시점으로 다시 돌아봤을 때 어떻게 느끼는지를 기록한 '지금의 생각' 파트가 반복됩니다. 지난 10년간의 실패를 다시 마주하며 과거의 결정에 후회되는 점은 없는지, 초창기로 돌아간다면 어떤 부분에 더 힘을 썼을지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하는 회고 글을 읽다 보면, 한 사람의 한 시절이 마무리되는 이야기 속에 함께 들어와있는 듯한 기분을 받게 되는데요.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 성공뿐만 아니라 실패를 통과해 내는 일도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하는,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더 정확하게 알게 해주는 귀중한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합니다.
우리는 어차피 실패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더 절박한 질문은 어떻게 실패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실패를 다룰 것인가, 혹은 실패 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 실패를 마주했을 때 패배감은 옆으로 밀어두고 가만히 상황을 살펴본다면 그 잔해에는 반짝거리는 것이 잔뜩 섞여 있다. 그리고 그 일에서 무엇인가를 배웠다면, 그것을 실패라고 부를 수 있을까? _박소령,『실패를 통과하는 일』
내 삶의 모든 순간을 기록하는 법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기록하기로 했습니다』는 기록 덕후 김신지 작가님의 기록에 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책입니다. 기록 덕후인 작가님도 처음부터 기록을 잘 한 건 아니었다고 하는데요. 어느 날, '나한테 중요한 것은 정작 따로 있는데 다른 데 신경 쓰느라 불행해지고 만다'는 생각을 한 작가는 이런 불행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에게 중요한 것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회사 혹은 학교를 오가며 매일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현대 사회의 우리는 종종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비슷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는데요. 이렇게 하나의 뭉텅이처럼 뭉뚱그려 기억되는 한 해를 아닌, 더 해상도 높은 한 해를 보내기 위해서는 내게 소중한 순간들을 정확하게 기록해두는 일이 꽤 도움이 됩니다.
이 책에서는 기록의 필요성과 더불어 22가지 기록하는 법을 소개하며, 쉽고 재밌는 기록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데요.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어 하루 한 개의 행복한 장면을 사진으로 수집하는 '1일1줍' 기록 법, 매달 나만의 베스트를 뽑아보는 시상식 열기, 같은 장소에서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기록하기, 자신만의 관심사(돈까스, 노가리, 오래된 간판, 동네의 식물 등) 하나를 주제로 삼아 기록하기 등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은 기록 법들이 가득합니다. 기록물의 예시 사진도 함께 실려 있어서, 다른 사람의 기록을 보고 기록 욕구가 샘솟는 분들께는 좋은 자극제가 되어줄 거예요. 다양한 방식의 기록 법 중 하나를 골라, 일상 속 행복을 더 쉽게 발견하고 선명하게 기억하게 해 줄 내년의 기록을 시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물론 이런 기록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들입니다. 사실 모든 기록이 그럴지 모르죠. 하지만 시시때때로 마음이 메말라 갈 때, 열어볼 기록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좋은 것들을 발견하고 기록할 수 있다면, 우리 마음은 아주 나빠지지는 않을 거예요. 사는 게 다 그렇지 않고, 사람이 다 그런 게 아니라고 계속 손을 들어 가리키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요. _김신지,『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종종 지치고 힘든 날엔 최근 5년 동안 쓴 일기장을 펼쳐봅니다. 무언가의 시작을 앞두고 설렜던 날도, 기대했던 날도, 실망했던 날도 많았더라고요. 좋았던 날의 기록은 내가 이렇게 열정을 가지고 달리던 시기도 있었구나 싶어 초심을 되찾게 해주고, 안 좋았던 날의 기록은 이때 이렇게 힘들었는데 모두 견뎌내고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 싶어 마음을 다잡게 해줍니다.
초심을 지키기 위해 동기부여가 되는 문장을 읽어보거나, 첫 시작을 앞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도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과거의 내가 어땠는지 그 궤적을 되짚어보는 일이 아닐까요? 나의 첫 마음은 그 시절 과거의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