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실황을 담은 밴드 다큐멘터리 영화 3선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무대의 열기

한여름의 록 페스티벌과 야외 콘서트, 관객과 하나 되어 뜨거운 열기를 나누는 밴드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 짜릿합니다. 현장에서 직접 음악도 듣고 무대도 즐기고 싶지만, 무더위에 뛰어놀기 부담스러운 계절인데요. 그런데 생생한 라이브와 팬들의 환호 섞인 무대가 꼭 야외 페스티벌에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시원한 영화관이나 집에서도 레전드 밴드들의 열정적인 무대를 즐길 수 있죠. 바로, 실제 공연 실황과 밴드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감상하는 방법인데요. 불쾌지수가 치솟는 후덥지근한 8월. 이곳이 영화관인지 록 페스티벌 현장인지, 2025년인지 레전드 밴드의 전성기인지 헷갈릴 만큼 몰입감이 넘치는 밴드 다큐멘터리 영화 3편을 소개합니다.
초음속으로 초신성이 된 밴드
<슈퍼소닉>, 25.08.29 재개봉
작년 이맘때, 밴드 ‘오아시스(Oasis)’가 재결합을 발표하면서 전 세계 팬들을 불타오르게 만들었습니다. 1994년에 데뷔했던 오아시스가 2009년에 해체를 발표한 지 15년 만이었죠. 오아시스는 1990년대 가장 성공한 영국 뮤지션으로 손꼽히는 밴드입니다.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글로벌 히트곡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사랑받아 왔죠. 그러나 오아시스는 해체에 이르기까지 온갖 구설수에 휘말리거나, 멤버간의 갈등으로도 유명합니다. 밴드의 중심축인 갤러거 형제는 악동으로 불리며, 활동 내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 오히려 팬들이 걱정할 정도였죠. 오죽하면 재결합 소식 이후, 월드 투어 내내 형제를 격리시켜달라는 바람이 있을 정도니까요. 우려 끝에 올해 월드 투어를 시작한 오아시스. 다가오는 10월에는 이들의 내한 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티켓팅을 실패한 국내 팬들은 취소표를 기다리다가 지쳤을 텐데요. 이들을 위해 오아시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슈퍼소닉>이 재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

영화 <슈퍼소닉>은 갤러거 형제의 어린 시절부터 밴드가 결성되고 단숨에 세계적인 록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습니다. 공연 도중 리암 갤러거가 노엘 갤러거에게 탬버린을 던지고, 드럼 실력이 부족하다며 드러머를 내쫓는 등의 거침 없는 비하인드까지 담겼죠. 하지만 영화는 오아시스가 해체하기까지의 모든 일대기를 따라가진 않습니다. 그 대신 데뷔 3년 만에 관객 25만 명을 동원한 넵워스 공연까지, 마치 초음속처럼 내달려 초신성의 경지에 오르는 오아시스를 보여줍니다. 무려 260만 명. 영국 인구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팬들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넵워스 공연은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무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늘 자신만만하던 노엘 갤러거가 처음으로 겁이 났다고 고백했을 만큼요. 이른 시기에 정점에 오른 밴드가 25만 명 앞에서 선보이는 무대는 과연 어떤 에너지로 가득 차 있을까요? 8월 29일,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재개봉하는 영화 <슈퍼소닉>이 여러분을 영국 맨체스터와 넵워스로 초대합니다.
전 세계를 침공했던 레전드
<비틀즈 '64>, 2024
전 세계 역사상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뮤지션은 누구일까요? 바로 ‘비틀즈(The Beatles)’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레전드 밴드죠. 영국 리버풀에서 결성된 비틀즈는 데뷔 앨범부터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요. 하지만 비틀즈가 세계적인 밴드로 거듭났던 건, 미국을 방문했던 시기부터입니다. 영화 <비틀즈 '64>는 1964년에 비틀즈가 뉴욕 JFK 공항에 내리는 순간부터 2주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당시 영국 음악에 냉담했던 미국인들은 목 놓아 비틀즈를 외치기 시작했는데요. 비틀즈를 필두로 영국 음악이 미국 전역에 울려 퍼진 이 시기는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이라고도 불렸습니다. 말 그대로 영국의 비틀즈가 미국을 침공했다고 부를 만큼, 미국 전역이 떠들썩했던 사건이죠. 비틀즈를 보기 위해 호텔을 에워싸고, 공연장을 가득 메운 팬들. 이들의 열기는 60년이나 흐른 지금까지도 영화를 통해 전해집니다.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미국에서의 인기를 입증한 비틀즈. 동료 뮤지션들과 당시 현장에 있던 팬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틀즈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서거의 비극을 겪은 미국인의 삶을 치유하고 새로운 희망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미국의 유명 프로그램 ‘에드 설리번 쇼’ 공연과 워싱턴, 할리우드 등 미국 각지에서 펼쳐진 투어는 매번 함성으로 가득 찼죠.
비틀즈의 음악은 들어봤어도, 무대는 본 적이 없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레전드임에도 워낙 오래전에 활동했던 밴드니까요. 그렇다면 <비틀즈 '64>를 추천합니다. 마틴 스코세이지가 총괄 프로듀서로,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그리고 존 레논의 아들 션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아내 올리비아 해리슨이 제작에 참여한 영화. 1964년 미국을 뜨겁게 달군 비틀즈의 전설적인 무대를 <비틀즈 '64>을 통해 경험해 보세요.
아이코닉한 뉴웨이브 밴드
<스탑 메이킹 센스>, 25.08.13 개봉
1983년 미국 할리우드 판타지스 극장에 어쿠스틱 기타를 치며 무대에 오르는 데이비드 번. 이어서 다른 멤버들이 차례로 등장하며 퍼포먼스가 시작됩니다.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시작해 시대의 아이콘이 된 밴드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무대인데요. 토킹 헤즈는 뉴웨이브, 포스트 펑크 밴드로서, 감각적인 음악과 혁신적인 퍼포먼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팬들뿐만 아니라 The 1975, 라디오헤드, 더 위켄드, 장기하와 얼굴들 등의 후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죠. 영화 <양들의 침묵>의 감독 조나단 드미 역시 토킹 헤즈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그는 토킹 헤즈의 공연을 보고는 ‘마치 촬영을 기다리는 영화’ 같다고 이야기했는데요. 결국 조나단 드미는 이들의 콘서트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합니다.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는 4일간 이어진 공연을 촬영해 만든 콘서트 실황 영화입니다. 화면에 카메라가 잡히는 걸 최소화하기 위해 매번 다른 각도에서 촬영해 완성된 작품이죠. 특히 이 영화는 부연 설명 없이 오로지 음악과 무대만으로 가득 차 있는데요. 덕분에 토킹 헤즈의 실험적인 사운드와 독창적인 무대를 온전히 즐길 수 있습니다. 들썩이는 어깨가 쉬어갈 틈 없이 촘촘한 88분은 매 순간이 클라이막스나 다름없죠. 그만큼 공연의 세트 리스트를 미리 듣고 영화관을 찾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치 유명 밴드가 내한 공연을 할 때, 가사나 멜로디를 외워가는 것처럼요.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41년 전 공연이지만 실시간 무대를 보는 것만 같은 <스탑 메이킹 센스>. 더위를 피해 시원한 영화관에서 생동감 넘치는 토킹 헤즈의 공연을 즐겨보세요.
공연의 열기는 시공간을 초월해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전달됩니다. 록밴드의 무대는 그만큼의 에너지가 있으니까요. 만약 시간이 없어서, 날씨가 너무 더워서,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서 록 페스티벌이나 야외 콘서트에 가기 망설여진다면, 공연 실황을 담은 영화를 감상해 보세요. 시대를 풍미했던 레전드 밴드의 이야기와 무대가 여러분의 가슴에 불을 지필 예정입니다.
밴드와 관객 사이엔 화학작용이 있지. 서로에게 끌리는 자석 같은 거야. 사랑, 분위기, 열정, 격정. 관객에서 오는 즐거움들. 어쩌면 그게 오아시스였는지 몰라. _ 노엘 갤러거, <슈퍼소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