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된 어제를 저장하는 마산창고

사라지기 직전의 것들을 줍는 마산 골목의 작은 박물관

삭제된 어제를 저장하는 마산창고

꽃네수예점이 별다른 소식도 없이 조용히 간판을 내렸습니다. 50년 넘게 마산의 번화가였던 창동 골목을 지켜온 사랑방이었죠. 언젠가 폐업 소식을 알리는 종이가 유리문에 붙었고, 간판도 함께 철거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간판만은 404미터를 이동해 신신예식장 옆 마산창고의 벽에 걸렸습니다. 창동을 자주 오가던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본 적 있을 그 간판입니다.

마산은 한때 경상남도 최대 도시였습니다. 산업화의 물결이 이 항구 도시를 중심으로 흘렀고 공장과 상점, 그리고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거센 물결이 지나간 뒤 도시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우리가 모두 이미 짐작하는 그대로입니다. 누군가의 생계였고 누군가의 청춘이었던 것들이 비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씩 지워지고 말았습니다. 마산창고는 이러한 흐름 속에 생겨났습니다.


종이 한 장을 액자에 거는 일

공간 안으로 들어서면 벽면을 채운 수많은 액자가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마산의 상징적인 빵집인 고려당 쇼핑백부터 한때 국내 섬유 원사 생산의 큰 축이었던 한일합섬의 광고 전단까지 도시의 기억을 품은 조각들이 걸려 있습니다. 흔히 수집가의 공간이라고 하면 물건이 천장까지 산처럼 쌓인 풍경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곳은 물건 하나도 허투루 두지 않습니다.

종이는 재활용하기 편하다는 이유로 불에 타거나 쓰레기봉투에 담겨 너무나 쉽게 지워지고는 합니다. 이곳의 주인장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오히려 그것들을 더욱 귀하게 다루는 쪽을 택했습니다. 낡은 종이 한 장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액자에 담아 벽에 거는 모습에서 기록을 대하는 남다른 무게감이 전해집니다.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아니라 마산의 시간을 정성껏 백업하고 보여주려는 진심이 이 정갈한 벽면 위에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철거 트럭이 오기 10분 전

벽면에 걸린 수집품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면 100년 된 양조장의 문틀이 벽에 비스듬히 서 있습니다. 마산 어시장 근처에서 오랫동안 술을 빚던 양조장은 이제 공영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양조장 건물이 허물어지기 전 가져온 네 짝의 문틀에는 사진으로는 옮길 수 없는 것들이 결마다 새겨져 있습니다.

어떤 물건에 관해 물어봐도 주인장은 그 물건을 주워 온 사연부터 역사까지 막힘없이 말해줍니다. 창동 사거리 공용 주차장 건너편에 있던 모모 양복점이 철거되던 날, 10분 차이로 건져낸 양복 마네킹과 간판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마산창고가 지켜낸 것들은 모모양복점의 간판처럼 누군가 손을 뻗는 찰나와 철거 트럭이 도착하는 사이 어딘가에서 왔습니다.


사진 하나를 보는 데 걸리는 시간

마산창고를 방문한 이날, 벽에 걸린 액자 속 사진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사진 하나를 보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걸 그 장면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사라지면 모든 기억이 백지화될지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나서도 한동안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안에 무언가를 가지고 옵니다. 지나가다 들어온 사람과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이 같은 물건 앞에 서도 보이는 것이 다릅니다. 기억은 물건 안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알아보는 사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은 물건만 모으는 게 아닙니다.


꽃네수예점의 푸른 간판 앞에서는 요즘도 사진이 찍힙니다. 바로 옆 신신예식장에서 복고풍 컨셉으로 커플 사진을 찍는 이들이 늘 그 간판 앞에 섭니다. 폐업과 함께 사라질 뻔했던 간판이 이젠 누군가의 기념사진 배경이 되었습니다. 기억되는 방식이 달라졌을 뿐 간판은 여전히 어딘가에 남아 기억되고 있습니다.

낡은 쇼핑백 하나에 담긴 그 시절의 삶을 살피는 일은 낭비가 아닙니다. 발전이라는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우리가 무엇을 사랑했는지 적어두는 일입니다. 마산창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고요한 기록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습니다.


공간 정보

  • 주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몽고정길 121 (신신예식장 옆)
  • 운영일 : 매월 지정된 일자에 개관 (개관일은 마산창고 인스타그램 확인)
  • 인스타그램 : @masanchang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