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도 맞들면 낫다
서로에게 기대고 맞대어 나아가는 영화 3편
인간관계 속 ‘의존’과 ‘공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관계의 주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태라는 점에서 비슷하기도 하지만 둘의 의미는 조금 다르게 해석되죠. 필자는 맺어진 관계 속 각자의 삶을 지탱하는 무게중심의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구별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삶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바로 설 수 있게 해주는 무게중심이 타인에게 조금 더 가깝게 위치할 때 관계의 형태는 ‘의존’이 되고, 무게중심이 오롯이 자기 자신에게 위치할 수 있게 될 때 타인과 건강한 ‘공존’을 이룰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타인에게 의존하는 사람이 아닌 타인과 공존하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각자에게 지워진 삶의 무게를 견디며 말이죠. 의존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담스러운 뉘앙스를 의식하게 되기 때문이지만, 의존과 공존이 꼭 상호 배타적인 형태의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존은 공존을 형성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고, 기대는 관계가 일종의 처방처럼 필요한 이들도 있죠. 온전히 바로 선 모습으로 타인과 공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까스로 버거운 삶을 버티고 서있는 이들에게는 잠시라도 무게를 나누어서 져 줄 의존의 대상이 먼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아티클은 의존마저 절실한 외로운 인물들을 다룬 영화를 소개합니다. 홀로 고통을 감내하던 위태로운 순간에 만나 서로에게 기대어 끝내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개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3편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서로 간의 의존을 통해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 속 인물들을 빌려 외로이 존재하고 있을 지금 어딘가의 당신에게 ‘의존할 용기’를 전합니다.
광활한 사막도 함께 견디면, <바그다드 카페>

1987 │ 드라마 │ 95분 │ 감독 - 퍼시 애들론
길이라고는 트럭이 달리는 고속도로 하나뿐인 황량한 사막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 그 앞에서 지칠 대로 지친 두 여자가 우연히 마주합니다. 카페의 주인 ‘브렌다’가 무능력하고 게으른 남편을 내쫓아 버리고 삭막한 삶이 주는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녀의 앞에 남편과 싸우고 버려지다시피 차에서 내리게 된 ‘야스민’이 나타나게 되죠. 브렌다는 낯선 야스민을 의심하고 경계하며 그녀에게 쌀쌀맞게 굴지만, 야스민은 카페에 머물며 브렌다에게 묵묵히 친절을 베풀고 이웃들을 다정히 대할 뿐입니다. 야스민의 노력 덕분에 카페는 점점 손님들로 북적여 활기를 띠게 되고, 사막만큼이나 메말랐던 브렌다의 삶은 점차 즐거움과 기쁨으로 채워져 갑니다.
국적부터 인종, 성격 등 모든 것이 달라 보이는 둘이지만 그들이 서로를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여자 모두에게 삶에 대한 희망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낯선 땅에서 오갈 데 없던 야스민에게 브렌다는 머물 곳이 되어 주었고, 가족의 생계를 혼자 책임지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던 브렌다에게 야스민은 삶이 즐거움과 가능성으로 채워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죠. 뿌연 흙먼지가 날리는 막막한 사막 위에서, 커피머신 하나 없어 제 기능조차 다하지 못하던 카페에서 브렌다와 야스민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 주며 ‘바그다드 카페’라는 공간을 편안하고 아늑한 곳으로 바꿔나갑니다. 어느새 손님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로 가득 찬 카페를 보고 있으면 한 사람이 전하는 위로가 가진 영향력이 한 개인을 넘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야스민이 마술 키트로 브렌다에게 만들어 준 장미꽃 한 송이, 브렌다가 야스민에게 빌려준 허름한 방 한 칸은 각자의 외로운 순간에 찾아든 위로였을 겁니다. 대단해 보이지 않는 무엇이라도 삭막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분명 오아시스 같은 희망의 샘물이 될 수 있음을 영화 <바그다드 카페>는 말합니다.
너를 구하는 건 나를 구하는 것, <썬더볼츠*>

2025 │ 액션 │ 127분 │ 감독 - 제이크 슈레이어
강력한 영웅들이 세상을 구하던 ‘어벤져스’의 시대가 지나고, 마블이 새롭게 선보이는 <썬더볼츠*>는 어쩐지 지켜보는 이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것 같은 위태로운 히어로 ‘옐레나’의 독백으로 첫 장을 엽니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엘리트 암살자인 옐레나는 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내면의 공허와 싸우며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죠. 마치 정신 건강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는 현시대를 반영하듯, 옐레나뿐만 아니라 <썬더볼츠*>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대부분 과거에서 비롯된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의 힘을 빌리고 상황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팀의 모습을 갖춰갑니다. 영화는 이들이 한 팀을 이뤄 새로운 빌런 ‘밥’과 대적하는 평범한 서사 구조를 취하는 듯하지만, 인물들이 공통적으로 트라우마와 고통을 안고 있다는 설정은 평이했던 서사에 변주를 더합니다.
극 중 빌런으로 등장하는 밥은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또 다른 인격인 ‘보이드’(The Void)에게 역으로 잠식당해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사람들을 그림자 안에 가두며 세계를 파괴하려 합니다. 인격의 이름 ‘보이드’를 직역하면 ‘공허’. 말 그대로 공허함의 그림자 속으로 자신을 비롯한 타인까지 가두는 거죠. 옐레나는 이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와 밥이 가진 과거의 트라우마를 모두 마주하게 됩니다. 그녀는 밥이 느끼는 우울감과 공허함을 가장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이기에, 어쩌면 자신을 구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밥을 ‘보이드’로부터 구해내고자 합니다. 히어로와 빌런의 단순한 적대적 구도가 아닌 트라우마를 매개로 한 연대를 통해 우리 각자를 위로하고 돌보려는 온기 어린 메시지가 와닿는 순간이죠.
결국 옐레나를 비롯한 ‘썬더볼츠’의 팀원들은 밥을 지켜내는 데 성공합니다. 보이드에게 잠식되어 가던 밥을 모두가 끝까지 굳세게 끌어안고 놓지 않은 덕분이죠. 내면의 아픔을 지닌 인물들이 또 다른 아픔을 지닌 인물을 구하고, 동시에 자신들이 사는 세상을 구하는 결말을 보며 생각합니다. 때로는 나에게 기댄 타인에게 손과 품을 내어주는 것이 곧 자신을 지켜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을요.
헤맨 끝에 닿게 된 당신을 위해, <김씨표류기>

2009 │ 드라마 │ 116분 │ 감독 - 이해준
이 사람들을 갇혔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스스로를 가뒀다고 해야 할까요? <김씨표류기>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나름의 안락함을 확보하고 있지만 분명 사회에서 밀려나 표류 중이기도 한 어떤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입니다. ‘남자 김씨’는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비관해 한강에 투신했으나 밤섬으로 떠밀려와 표류하게 되었고, ‘여자 김씨’는 사회와 사람으로부터 상처 입은 채 도피처로 택한 자신의 방안을 표류하고 있죠. 각자의 공간에서 영원한 표류를 이어가던 중 망원경 너머로 남자를 발견한 여자는 유리병 편지를 통해 남자와의 교신에 성공하고 둘은 서로를 통해 타인과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호기심과 희망이 섞인 마음을 바탕으로 말이죠.
제법 아늑해 보이는 표류이지만 그들은 사실 외면하고 있습니다. 다시 마주한 현실과 사회는 더 무겁게 자신들을 짓누를 것임을 알기에, 두려움조차 느낄 수 없도록 자신들의 영역을 봉쇄해 버린 것이죠. 그러나 영화는 서로 간의 연결과 소통이 단단한 봉쇄를 뚫고 희망을 틔워내는 순간을 신비롭게 그려냅니다. 마치 미지의 생명체와 조우한 듯, 둘은 조심스럽게 또 천천히 서로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호기심은 관심이 되고, 관심은 응원이 되어 어느새 그들은 서로의 표류를 멈춰 줄 구명보트가 됩니다.
영화의 엔딩 부분, 밤섬에서 쫓겨나 이번에는 확실한 죽음을 다짐하며 버스를 타고 63빌딩으로 향하던 남자의 앞에 여자는 얼굴을 드러냅니다. 주고받았던 희망이 여자를 표류하던 방 밖으로 꺼내주었으므로, 먼저 표류를 끝낸 사람이 아직 표류 중인 사람을 구할 차례입니다.

퍼즐 조각의 한 면 이상은 움푹 파여있거나 돌출되어 있습니다. 한 조각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그림이지만 깎이거나 모난 부분에 꼭 들어맞는 다른 조각과 연결하면 완성된 그림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죠. 그렇게 모든 조각이 서로의 매끈하지 못한 면을 채우고 나면 처음엔 예측하지도 못했던 멋진 그림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자체로 완벽한 퍼즐 조각은 없듯이, 타인에게 기대어 살아간다는 건 당연하고도 필수적으로 느껴집니다. 다만 누군가에게 기대는 마음이 항상 편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죠. 그럴 때 이 영화들을 떠올리면 좀 나을 거예요. 내가 누군가에게 기댄 만큼 나도 그 사람의, 혹은 다른 이의 기댈 구석이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다시 깨닫게 해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