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마음으로 떠나는 뉴욕 미술관 여행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면 생기는 일들
            누구나 한 번쯤 마음 깊이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지만, 많은 이들은 그 길에서 막막함과 좌절을 느낍니다. 삶을 다 걸어볼 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부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그것이 일로 연결되는 건 또다른 어려움이죠. 필자는 미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발견하고, 고군분투 끝에 잘 맞는 일자리를 찾는 데에도 성공했습니다.
늘 꿈꾸던 바가 이뤄져 기뻤지만 막상 좋아하는 것이 일이 되니 기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예술 작품을 볼 때의 감흥은 떨어지고 지겹고 지루한 마음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도 싫증이 날 무렵,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오래된 습관인지, 본능적인 끌림인지 자꾸만 미술관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낯선 미술관을 거닐며 떠올린 처음 미술을 좋아하게 된 순간, 그리고 변화한 마음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구겐하임 미술관: 뉴욕을 이루는 다양한 색

열흘간의 뉴욕 여행, 길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구겐하임 미술관이었습니다. 미술을 좋아한다면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있거나, 미술관 그 자체로 상징적인 곳에 끌리게 됩니다. 잭슨 폴록 같은 유명 예술가를 발굴하고, 작업 활동을 지원하며 세계에 알린 사람. 2차 세계대전으로 예술 또한 위기에 처했을 때 구출을 도우며 미국이 미술의 중심지가 되도록 큰 영향을 준 사람. 바로 페기 구겐하임입니다. 그의 이름을 딴 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만은 예술이 아무리 지겨워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센트럴 파크를 따라 걷다 보니 미술 수업이나 책에서 수없이 보았던 구겐하임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동그란 원형 복도를 따라 5층부터 1층까지 작품을 관람하는 그 경험이 참 궁금했습니다. 그곳에선 시카고 출생의 흑인 예술가 라시드 존슨(Rashid Johnson)의 전시 « A Poem for Deep Thinkers »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은 회화, 조각, 영상 등 90점이 넘는 존슨의 작품으로 가득했습니다. 재료 또한 검은색 비누부터 시어버터, 페인트 등 다채로워서 다양한 탐구를 지속하는 작가로 느껴졌습니다. 이처럼 폭넓은 작품들은 흑인의 정체성, 고유한 문화, 여전히 잔존하는 인종 차별에 대한 표현이었습니다.

존슨의 전시는 뉴욕을 경험하며 느낀 바와 연결되어 깊이 다가왔습니다. 도시 곳곳을 걸으며 이렇게 다양한 인종과 성별, 서로 다른 생김새와 취향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유럽과 아시아, 다양한 지역을 여행해 보았지만 놀라울 만큼 서로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시야가 한순간에 넓어지는 동시에, 지금까지 알던 세계가 얼마나 한정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미술을 좋아한다 말하면서도, 백인이 아닌 다양한 인종의 예술가와 다양한 지역의 미술사에 대해 아는 게 얼마 없음에 놀랐고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 미술을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얼마나 서구 백인 중심으로 돌아갔었는지, 다르다는 이유로 무자비한 차별이 가해졌는지 배워왔습니다. 뉴스나 책, 강의를 통해 들어왔지만, 미술관에서 작품을 통해 만날 때면 사실을 배우기보다 온몸으로 느끼면서 이해하게 됩니다. 내가 알던 것 이상의 세계를 보여주고, 문제를 발견하고, 잊지 말자고 되새기는 예술의 가치를 다시금 느꼈습니다.
첼시의 갤러리들: 화이트큐브에서 만난 예술

뉴욕에서 여유 시간이 생기자 첼시 지역이 떠올랐습니다. 여행 후반부에 이르러 피로가 누적되었지만 가고시안, 페이스, 리만 머핀 등 세계적인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그곳을 놓칠 수 없었습니다. 이전에 방문했던 미술관보다 작은 규모의 갤러리들이기에, 가볍게 둘러볼 마음으로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향한 페이스 갤러리는 마침 65주년을 축하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전체가 갤러리인 그곳에서는 로버트 롱고(Robert Longo)의 전시 « The Weight of Hope »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뉴욕에서 태어난 롱고는 목탄 드로잉, 조각, 영상 등 다양한 매체로 사회, 정치적 사건을 주제를 표현합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시위와 전쟁, 폭력의 현장을 다룬 작품들이었습니다. 흑인 인권 운동인 BLM(Black Lives Matter)부터 북한 군대의 모습까지 다양한 사회 속 급박한 현장이 흑백 작품 속에 남아있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우리는 기자입니다. 우리의 임무는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기회를 가진 몇 안 되는 직업 중 하나입니다. 저는 언젠가 무언가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우리가 공유하는 디스토피아적 현재의 모습을 보존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낍니다." - 로버트 롱고, 루이지애나 현대 미술관 전시 인터뷰 중

롱고의 작품을 통해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는 갈등과 불평등, 시위와 전쟁의 현장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페이스 갤러리에서 느낀 감상을 안고, 근처에 위치한 갤러리들을 차례대로 방문했습니다. 동시대를 대표하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만나면서 반갑고 즐거운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거부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흔히 화이트 큐브라고 부르는 순백의 진공 상태와 같은 갤러리는 극도로 조용한, 작품만을 위한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그 덕분에 전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지만 예술 작품이란 함부로 닿을 수 없는 아주 고귀한 것이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전시 공간과 작품에 대해서는 단순히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불편한 지점을 느끼고, 더 나아지길 바라는 소망 또한 예술에 끌리는 이유였음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휘트니 미술관: 이상해서 재미있는 현대미술

갤러리들을 둘러본 후 휘트니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쾌적한 길목을 따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옥상 카페테라스에 앉아 조금 전 지나온 다양한 모양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을 보는 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 이었습니다.

휘트니 미술관은 1930년에 조각가이자 자선가인 거트루드 반더빌트 휘트니(Gertrude Vanderbilt Whitney)가 동시대 예술가를 지원하고 현대 미국 미술을 보존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처음 그 목표에 맞게 다양한 미국 예술가의 작품과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층마다 다양한 전시가 펼쳐지는 그곳에서 « “UNTITLED”(AMERICA) » 전시를 먼저 관람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장 미셸 바스키아, 조지아 오키프 등 익숙한 미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찾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사실주의 작품들부터 현대 소비주의가 돋보이는 작품들이 이어지며 미국 사회를 작품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층에선 풍경을 새롭게 해석한 « Shifting Landscapes » 전시가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흔히 풍경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빛과 그림자를 아름답게 묘사한 회화가 떠오르곤 합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풍경을 정치와 사회적 이슈와 연결해 새롭게 정의했습니다. 흔히 접하지 못했던 에코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여성과 자연의 해방, 지속 가능한 미래를 작품으로 표현한 공간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실험적인 작품들을 전시장 벽부터 바닥, 쉽게 보이지 않는 높은 천장에서 하나씩 찾아내는 경험이 이어졌습니다.
이 공간을 둘러보면서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완벽히 이해하려 하면 막막함에 멀어지고 말지만, 그 뜻이 모호하고 생소해서 더 끌렸던 처음 그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수많은 역할과 과업을 정해진 대로 따라야 하는 삶을 살다 미술관에 가면 마음의 짐을 잊고 자유롭게 떠도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생소한 현대미술 작품 앞에서 낯선 형태와 상징을 제 뜻대로 해석하고 맞춰보는 즐거움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오래전 좋아하던 전시를 끝없이 둘러본 건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미술이 일이 된 후로 이제는 미술이 싫어졌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깊은 애정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그 모양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그 마음이 조금은 미적지근해지더라도 언젠가 열정이 다시 돌아올 수도, 혹은 변화한 이대로 좋아할 수도 있다는 걸 말입니다. 처음 예술 작품을 보고 느낀 뜨거운 행복이나 감동은 덜할지 몰라도, 오래된 친구처럼 함께하는 것도 좋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언가를 너무 깊이 좋아해서, 혹은 일이 되어 지친 이들에게 한 걸음 떨어져 같이 걷는 건 어떨지 제안해 봅니다.
[참고문헌]
- 구겐하임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
 - 페이스 갤러리 공식 홈페이지
 - 휘트니 미술관 공식 홈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