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을 말하는 섹스 포지티브 브랜드
대담함과 유쾌함의 경계 위 까르네 볼렌테
패션은 실용성과 미의 경계에서 자주 논의되지만, 때로는 동시대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관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까르네 볼렌테는 이 가능성에 주목해 오랫동안 금기시되던 섹슈얼리티를 보다 열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브랜드입니다. 대담함과 유머, 연대 정신으로 성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함께 따라가 볼까요.
포르노 영화의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까르네 볼렌테는 히지리 엔도, 테오드로 파머리, 아고스톤 팔린코가 2015년 설립한 파리 거점의 패션 브랜드입니다. 브랜드명은 1980년대 이탈리아 포르노 영화 'The Rise of the Roman Empress'의 원제를 사용했습니다. 본 작품의 주연 배우 치치올리나가 보여준 자유롭고 해방적인 태도는, 까르네 볼렌테의 세계관을 구축하는 핵심적인 출발점이 되었죠. 빈티지 포르노, 고전 예술, 영화, 개인적인 경험들은 지금도 브랜드의 주된 영감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까르네 볼렌테는 자신을 브랜드보다 ‘커뮤니티’에 가깝다고 규정합니다. 성과 사랑을 누구나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장려함과 동시에, 온라인 판매 수익 일부를 HIV/AIDS 관련 단체에 기부하며 자신들이 지향하는 태도를 연대의 실천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꾸밈 없는 방식으로 표현하는 에로티시즘

까르네 볼렌테가 성을 표현하는 방식은 솔직합니다. 메시지는 대담하지만, 삽화와 자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전반적인 분위기를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I LOVE NY’의 디자인을 비튼 ‘Ex Appeal’, 성과 공동체를 연결한 ‘Cum-munity Values’ 같은 언어유희는 브랜드가 성을 다루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보여줍니다.
이러한 접근은 컬렉션의 주제에서도 이어집니다. 역사적인 신화 이야기부터 첫 키스의 이미지까지, 까르네 볼렌테의 컬렉션은 매 시즌 성과 사랑 속 구체적인 이야기를 포착해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냅니다.
다채로운 정체성의 연대, Cum Together

까르네 볼렌테의 Cum Together 컬렉션은 브랜드가 지향하는 성 긍정주의를 분명하게 드러낸 컬렉션입니다. 1980년대 페미니즘과 펑크 운동에서 영감을 받은 파스텔 컬러 위로 다채로운 그래픽이 더해졌는데요.
본 시즌은 특정한 관계의 피상보다는 서로 다른 개성과 정체성이 만들어내는 공존에 집중했습니다. 룩북은 엘리베이터 거울에 비친 셀피 형식으로 촬영되었는데, 이는 각자가 가진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덧없고 짜릿한 순간, One Night Stand

One Night Stand 컬렉션은 관계가 시작되는 순간에 드러나는 충동적이고 솔직한 분위기에 주목했습니다. 우연히 마주친 시선이나 짧은 대화처럼 순간적으로 스쳐 가는 장면 속의 미묘한 기류를 시각적으로 풀어냈죠.
이 컬렉션은 사회가 원나잇 스탠드를 바라보는 편견을 정면으로 다루며, 관계의 지속 여부가 경험의 가치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어떤 만남은 오래 이어질 필요가 없고, 어떤 기억은 짧아도 선명하게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상기시킵니다.
끝나지 않는 여름의 열기, Ti Amo Carne

2025년, 까르네 볼렌테는 설립 10주년을 기념한 컬렉션을 공개했습니다. 지난 10년간 그들이 걸어온 발자취를 회고하며, 그와 함께 변화해 온 섹슈얼리티와 사랑, 관계의 모습을 다시 고찰하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이전 시즌들의 아카이브 요소 역시 현대적인 감각으로 다시 해석되었는데요. 여름 휴양지와 숨겨진 야외 공간에서 영감을 얻은 이 컬렉션은 ‘Sea, Sex, & Cum’이라는 감각적인 키워드로 욕망의 밤을 표현합니다.
성과 사랑은 삶과 가장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주제입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각기 다른 만큼, 이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양하죠. 까르네 볼렌테는 이 차이를 전제로 삼고, 모두가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을 제안합니다. 이들의 디자인은 특정한 감정을 유도하기보다는, 우리를 이루는 여러 가지 사랑의 형태를 자연스레 떠올리도록 합니다.
까르네 볼렌테가 흥미로운 이유는 성을 둘러싼 담론을 단순화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몸과 취향,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그리고 그 답의 출발점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 우리가 매일 입는 옷에서부터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