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임 별

밴드 겸 디자인 스튜디오 모임 별의 연대

모이고 흩어지고 다시 모임 별
이미지 출처: 만선

개인이 팀을 구성하며 화합을 이루려면, 집단의 방향성과 이익에 맞춰 개인의 헌신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환상의 팀워크는 개성의 절제, 그리고 많은 배려가 뒷받침되어야 하죠. 그럼에도 팀원 고유의 개성과 특장점을 십분 발휘하며 유기적인 호흡을 보여주는 공동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마치 살아 숨 쉬듯 뭉쳤다 흩어지며 독창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데요. 한 가지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공동체 ‘모임 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채로운 빛을 내는 멤버들이 자유롭게 모여 창의적인 작업을 이어가는 모임 별. 이들의 화합은 완성형이 아닌, 끊임없이 반복하고 실험하며 흩어지고 모이는 진행형입니다.


술 모임, 모임 별

이미지 출처: 만선

인사동의 한 술집에 모여 앉은 사람들. 미술작가와 기획자, 패션 디자이너와 에디터, 영화 관계자와 뮤지션까지 다양했는데요. 이들은 술자리에서 시를 낭송하거나 기타를 연주했고, 각자 자신이 만든 옷이나 그림을 가져와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스치고 어울리는 느슨하고 유연한 관계, 그 안에서 조태상과 조월 형제는 동료들과 작당합니다. 잡지와 음악, 나아가 음악 공연을 하는 술 모임, ‘모임 별’의 첫 등장이었죠.

이미지 출처: 만선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모임 별은 오랜 시간 많은 곡을 쓰고 공연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단순히 밴드나 뮤지션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데요. 모임 별은 음악뿐만 아니라 디자인, 브랜딩, 영화음악, 소프트웨어 개발 등 폭넓은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다양한 필드에서 작업물을 만들어 내는 모임 별. 고정 멤버들로 구성된 견고한 팀이기보다, 자유롭게 모였다 흩어지며 서로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하는 모임 별은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새벽이 되면 파하는 걸 전제로 저녁마다 하나둘 모여드는 술 모임을 닮았죠. 각자의 고유한 궤적을 따라 움직이다가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그 순간, 모임 별의 전위적인 결과물이 탄생합니다.


규정할 수 없는 전위적인 음악

이미지 출처: BYUL.ORG

밴드 활동을 시작한 모임 별에게는 공연은 물론, 잡지와 음반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디자인과 인쇄, 홈레코딩에 도전하며 자체 레이블이자 출판사 ‘비단뱀클럽’을 만들었죠. 그곳에서 탄생한 비정기 간행물 ‘월간뱀파이어’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잡지에 음원을 녹음한 CD가 결합된 형태였습니다. 이 독창적인 간행물 못지않게 모임 별의 음악은 특정 장르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는, 고유하면서도 다변적입니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가 돋보이는 전자음악에 어쿠스틱 기타의 선율이 더해지기도, 밴드 셋으로 드림팝이나 록 장르에 가까워지기도 하죠.

이미지 출처: 언제나오월 Mayallthetime

작곡, 녹음, 프로듀싱 등의 음악 작업을 담당하는 조태상과 조월. 그리고 여러 뮤지션이 모임 별을 이룹니다. 디제잉과 공연 기획, 베이스를 담당하는 이선주,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서현정, 새소년의 황소윤 등의 동료 뮤지션이 모임 별에 모이고 또 스쳐갔죠. 유기적으로 이어진 멤버들은 매번 모이는 조합에 따라, 그 색깔에 걸맞은 공연을 선보였습니다. 또한 모임 별의 음악성은 국내외에서 인정받았는데요. 2018년에 발매한 앨범 [주인 없는 금]으로 16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댄스&일렉트로닉 부문을 수상했으며, 미국과 독일 레이블에선 이들의 음원을 LP로 발매했습니다.


영화에 스며든 현대적인 사운드

모임 별은 2001년에 개봉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의 음악을 담당했습니다. 삽입곡 ‘2’와 ‘진정한후렌치후라이의시대는갔는가’ 등 모임 별의 곡은 영화 흥행과 별개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죠. 이를 계기로 몇몇 음악 매체에서는 모임 별의 음악을 소개했고, 많은 리스너들이 그들의 음악에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임 별은 그 이후 상업영화에서 자취를 감췄는데요. <고양이를 부탁해> 삽입곡과 유사한 음악을 의뢰받았지만, 비슷한 음악에 갇히기보다 계속해서 전위적인 음악을 하기 위한 선택이었죠.

이미지 출처: 엣나인필름

그로부터 약 20년이 흐르고, 모임 별은 남궁선 감독의 영화 <십개월의 미래>의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모임 별의 음악에 어울리는 영화를 연출하고 싶었다던 남궁선 감독과 모임 별의 인연은 지난해 개봉한 영화 <힘을 낼 시간>으로 이어지기도 했는데요. 20대 중반에 은퇴한 아이돌 세 사람의 뒤늦은 수학여행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서 모임 별의 감성은 특히 잘 어우러졌습니다. 모임 별은 노이즈를 삽입하거나 전자음과 어쿠스틱 기타를 교차하는 등 현대적이고 세련된 사운드를 쌓아 올렸죠.


모임 별의 또 다른 이름,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CJ E&M 지산 밸리록 페스티벌 브랜딩. 이미지 출처: BYUL.ORG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모임 별을 검색하면 음원들이 등장하지만, 웹사이트에 접속하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모임 별은 음악만을 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그룹이기도 합니다. 우선 모임 별의 클라이언트만 봐도 이들의 경력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데요. 베니스 비엔날레, 일민미술관, 삼성전자, 부산국제영화제, 서울공예박물관 등 유명 클라이언트를 보유하고 있죠. 그런데 음악을 하던 모임 별은 어떻게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또 이토록 성장시켰을까요?

일민미술관 아이덴티티 리뉴얼. 이미지 출처: BYUL.ORG

모임 별이 결성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멤버 조태상은 아트선재센터에 디자이너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그의 작업물을 보던 외부 클라이언트가 의뢰하기 시작했던 것이 디자인 스튜디오로서 모임 별의 첫걸음이었죠. 모임 별은 외주 업무를 수행할 때도 마치 음악을 할 때처럼 유기적으로 조합을 이룹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각자 뛰어난 능력을 보유한 멤버들이 팀을 이뤄 협업하는 것인데요. 이를 통해 모임 별은 브랜딩, 아트디렉션, 건축 디자인, 패션쇼, 소프트웨어 개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집단으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작업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의 대부분은 그들의 본업이 음악인 줄 모른다고 하죠.

모임 별 웹사이트 바로가기


누군가는 전자음악 밴드로, 영화음악을 만들었던 팀으로, 혹은 유명한 디자인 스튜디오로 이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면, 모임 별은 여전히 친한 친구들이 모이는 술 모임이라는 것. 그리고 25년이 되도록 반짝이는 음악, 프로페셔널한 작업물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끊임없이 흩어지고 모이며 호흡하는 그룹 모임 별은 왠지 영원히 생동하고 반짝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