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카메라를 만드는 이유
유능한 기술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들 때
요즘 스마트폰 카메라는 AI 기술의 집약체입니다. 피사체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최적의 결과물을 내놓죠. 최근 공개된 갤럭시 S26의 AI 편집 툴은 한술 더 뜹니다. 사용자가 지표를 조정하는 대신 명령어를 내리면 그에 맞춰 편집을 해줍니다. “피부 톤을 더 밝게 해줘”, “눈을 좀 더 키워줘” 같은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제 ‘찍는 행위’는 똑똑하고 편리한 스마트폰의 영역으로 완전히 넘어간 듯 보여요.
하지만 카메라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굳이 ‘취미’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오래된 카메라를 사서 특별한 날을 기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특히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초반에 생산된 ‘네오 빈티지’ 디지털카메라의 유행은 주목할 만한 사건입니다. ‘레트로 트렌드’로 치부하기엔 그 생명력이 꽤 길다는 걸 증명한 사례거든요. 심지어 저화질의 구형 아이폰을 다시 구매하는 현상까지 벌어집니다. 왜 우리는 성능이 뒤떨어지는, 오롯이 ‘찍는 것’만 가능한 기계에 다시 손을 뻗는 걸까요?
필자는 사람들이 성능이 뒤처지는 기기에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해방감과 정서적 만족을 찾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리함은 우리에게 매끄러운 결과물을 보장하지만, 그 효율적인 시스템이 때로는 사용자의 개입을 제한하고 우리가 직접 발휘해야 할 감각의 주체성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에 호응하듯, 현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카메라가 발매되고 있습니다. 과거라면 시대착오적이라 비판 받았을 모델들을 소개해 봅니다.
과거를 복기하는 대신 현장을 포착하라
라이카 M11-D (2024)

카메라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봤을 ‘빨간 로고 카메라’의 주인공 라이카. 카메라 매니아들에게 성역과 같은 브랜드인데요. 100년 넘는 역사 동안 35mm 카메라의 표준을 정립하며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는 도구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왔죠. 타협 없는 광학 성능은 라이카를 창작자의 철학을 대변하는 상징으로 만들었습니다.
라이카의 M11-D는 '전략적 불편함'을 가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디지털 기기임에도 불구하고 본체 뒷면에 당연히 있어야 할 ‘액정 화면(LCD)’이 없습니다. 대신 감도(ISO) 조절 다이얼이 있죠. 찍은 사진을 그자리에서 바로 확인하거나 메뉴를 조작해 수치를 변경하는 디지털 특유의 유용함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죠.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은 ‘복원’의 기회를 줬습니다. 즉각적으로 사진을 확인하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으면 그만이었죠. 스마트폰은 ‘무한한 재시도’의 기회를 더욱 확장해줬고요. 덕분에 ‘포착’은 기술적 오류를 줄이고, 원하는 장면을 완벽히 담아내는 실용적인 행위가 됐습니다. M11-D는 이러한 편리함을 없애고, 다시금 사진의 원초성을 제안합니다. 액정을 통해 과거를 복기하는 대신, 눈으로 포착한 현장을 즐기라는 권유인 셈입니다.
100년의 정서를 소유하는 미학적 퇴행
인스탁스 미니 에보 시네마 (2026)

후지필름의 인스탁스는 즉석 사진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입니다. 그중에서도 ‘미니 에보’ 시리즈는 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결과물을 절묘하게 결합해, 사진을 찍는 것을 넘어 직접 인화하는 물리적 행위의 즐거움을 복원하며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최신작인 인스탁스 미니 에보 시네마는 ‘미학적 퇴행’을 메인 테마로 내세웁니다. 과거 시네마 캠코더의 폼팩터를 빌려온 이 모델은 한 손에 감기는 투박한 그립을 통해 사용자의 태도를 기록이 아닌 ‘연출’의 시대로 되돌려 놓습니다. 특히 1930년부터 2020년까지, 100년의 세월을 아우르는 10가지 시대별 필터는 사용자가 특정 시대의 분위기와 정서를 선택해 사진 또는 영상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합니다.

첨단 기술이 노이즈 없고 선명한 해상도를 지향한다면, 미니 에보 시네마는 의도적인 노이즈와 거친 입자감으로 그 시절의 고유한 분위기를 구현하는 데 집중합니다. 기록의 효율성이 가져온 기술 과잉에서 벗어나 정서적 기록의 깊이를 되찾으려는 설계는 비록 효율 면에서는 퇴보일지라도, 기술 이외의 감정을 담으려는 욕구를 자극합니다.
24시간의 기다림이 만드는 밀도
플래시백 원 (2025)

전통적인 브랜드들이 카메라의 원형과 발전에 기초한 불편함을 설계한다면, 스타트업 ‘플래시백’은 디지털의 문법 자체를 비틂으로써 퇴행을 실천합니다. 이들이 애놓은 카메라는 외형적으로 일회용 카메라와 비슷하나, 속은 디지털 기술로 채워져 있어요. 하지만 작동 방식은 현대의 디지털 원리와는 완전히 동 떨어져 있죠.
플래시백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을 즉시 삭제할 수 있는 디지털의 편의성을 원천 봉쇄합니다. 찍은 사진은 기기 내부가 아닌 전용앱으로 전송되고,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건 촬영 후 24시간이 지난 후죠. 필름 카메라 시절, 필름 한 롤이 현상되기 까지의 시간을 디지털로 구현한 셈입니다. 결과물을 즉각 확인하는 시대에 이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지연’이라는 불편함을 만듭니다.

효율 면에서 본다면 이는 명백한 퇴보입니다. 허나 24시간의 지연은 휘발되기 쉬운 사진 한 장에 ‘인내’와 ‘기록의 밀도’를 부여합니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누르는 셔터는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질 때보다 훨씬 무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묵직한 한 컷의 무게감은 결과를 고대하는 기다림으로 이어지며, 기술에 의존하던 포착자의 주도성을 회복하게 하는 장치가 됩니다.
손끝이 기억하는 창작의 즐거움
펜탁스 17 (2024)

리코 이미징은 ‘필름 카메라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 SLR 명가였던 펜탁스 브랜드로 수십 년 만에 새로운 필름 카메라 ‘펜탁스 17’을 출시했습니다. 레트로한 외형만 흉내 낸 토이 카메라가 아닌 ‘진짜’ 필름 카메라죠. 모든 것이 자동화된 시대에 기계와 사용자가 직접 상호작용해야 하는 ‘진짜 도구’의 귀환입니다.
이 모델의 출시는 필름 매니아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오래된 모델을 고쳐 사용해야 하고, 필름 값은 나날이 높아지는 좁은 시장에서 필름 문화의 지속성을 증명하려는 펜탁스의 행보에 뜨거운 환호가 쏟아진 것이죠. 중고 시장의 낡은 기계에 의존하던 올드 유저부터 필름의 손맛을 처음 마주한 새로운 유저까지 이 도구의 등장을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펜탁스 17은 수동 와인딩 레버를 돌리고, 렌즈를 조절해 거리감을 직접 가늠해야 하는 ‘목측식 초점’ 방식을 택한 고전적인 필름 카메라입니다. 고의적으로 설계된 이 기계적 장치들을 다루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원하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설정을 매만지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는 이 과정은 사진 본연의 즐거움을 일깨우며 기술이 대신해줄 수 없는 성취감을 제공합니다.
그간의 기술이 제약을 지우고 매끄러운 효율성(심리스)를 선사하는 데 집중해왔다면, 앞서 살펴본 사례들은 '발전'의 정의를 다시금 사유하게 합니다. 이들이 고수하는 의도적인 불편함은 모든 것이 너무 유능해진 시대에 인간의 감각이 머물 수 있는 ‘비효율의 영토’를 제안하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스마트폰이 모든 변수를 통제하며 편리함을 제공할 때, 역설적으로 사용자들은 스스로를 단순한 구경꾼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24시간을 인내하고, 수치를 즉각 확인할 수 없는 불안을 감수하며, 와인딩을 하며 사진을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은 그래서 더욱 각별합니다. 이러한 '의도된 무능함'은 시스템에 전적으로 의탁하기보다 기술 과잉이 놓친 삶의 미세한 질감을 직접 만져보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발전은 사용자를 단순히 게으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감각을 날카롭게 벼려낼 여백을 남겨두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매끄러운 해상도가 앗아간 우리의 서툰 자리를 다시금 허락하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가 불편한 카메라를 손에 쥐며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가장 인간적인 발전의 형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