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마음이 담긴 책 3권
일기와 산문으로 들여다본 시인이라는 새로운 세계
여느 때보다 다채로운 마음의 시집이 나온 한 해였습니다. 찬란한 여름의 상쾌함을 노래하는 시집부터, 고통 속에서 실존의 환희를 발견하는 시집까지 폭넓게 펼쳐졌지요. 시인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다르게 느낄까요? 시만으로 시인의 마음을 짐작하기 어렵다면, 그들의 일기와 산문은 어떨까요. 솔직하게 써내려간 글들에는 시 한 줄이 태어나기까지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요즘처럼 빠르게만 판단하는 시대 속에서, 시인처럼 애정이 어린 방식으로 관찰하는 마음이 궁금하다면 이 책들이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거예요.
일상의 환희
김복희, 『오늘부터 일일』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우리는 늘 ‘끝’과 ‘시작’ 사이를 오가곤 합니다. 한 해의 끝과 한 하의 시작, 그 사이에서 우리는 다양한 모습의 우리를 발견하죠. 그리고 그사이를 가장 잘 건너는 목소리 중 하나는 김복희 시인의 목소리입니다. 『오늘부터 일일』에서 김복희 시인은 끝이라고 생각한 지점에서 다시 시작을 말하고, 낯선 존재들에게 거침없이 사랑을 건네며, 매일을 “오늘부터 일일”이라 선언합니다.
시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요? 아침에 일어나서 우아하게 커피를 내리고, 시를 읽고 쓰면서 하루를 보낼까요? 『오늘부터 일일』에 나타난 김복희 시인의 하루는 사실 우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뉴진스의 ‘하입보이’ 춤을 배우고, 나무 수저를 만드는 ‘원데이 클래스’를 듣기도 합니다. 그런 평범한 하루 속에서 자신의 일일을 사랑스럽게 보내며 시인은 시를 쓰는 마음을 채우는 것이죠.
무엇보다 김복희 시인은 자신의 일일을 통해 ‘사랑이 가져다주는 변신’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우리가 평소에 발견하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시로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사랑을 시작하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요. 당신도 잠깐 펜을 들고, 일기를 써보며 자신의 하루를 사랑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어느새 시인이 되어 있을지 모르니까요.
“사랑의 시작은 역시 좋은 거 맞네요. 시인이 되게 해주잖아요. 바보가 되게 해주고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수 있게 해주고요. 세상의 모든 말, 밋밋하기 그지없던 말에 전부 생기가 돌 거예요.”_(『오늘부터 일일』의 본문 중에서)
반짝이는 영혼의 발견
진은영,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시는 참 슬픈 문학입니다. 보통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언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산물이기 때문이죠.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세상과 나 사이의 설명하기 힘든 ‘다름’을 느끼곤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세계와 정확히 맞물리지 않는 순간들, 그렇다고 완전히 벗어날 수도 없는 일들. 진은영 시인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바로 그 틈에서 태어난 목소리를 모은 산문집입니다. 한 명의 시인으로, 한 명의 개인으로 이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수많은 다름의 순간과, 그 안에서 발견한 서늘한 진실을 적어 내려간 책입니다.
진은영 시인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면서 수많은 좌절을 겪었고, 그때마다 끊임없이 문장들을 붙들며 살아왔습니다. 시인이 겪던 불면의 밤을 버티게 해준 문장들, 좌절했던 마음을 구한 문장들을 통해 시인은 태어난 순간부터 주어진 규정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멈추지 않고 ‘쓴다’라는 태도를 선택합니다. 결국 세계와 완전히 화해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자신만의 작은 은신처를 만드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죠.
이 책에는 따듯하거나 화려한 위로는 없지만, 우리가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목소리가 있습니다. 진은영 시인과 함께, 카프카, 실비아 플라스, 버지니아 울프 등 자신과 맞지 않는 세계를 견디며 글을 써온 이들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다름’이 결코 결함이 아님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혹시 자신이 너무 남들과 달라서 걱정이라면, 세계와 나 사이의 틈을 억지로 메우기보다 그 틈 안에 머물며 나만의 환경을 꾸리는 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요? 편히 숨을 돌릴 수 있는 자리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어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진정 사랑하는 이들은 승리하는 이들이 아니라 진실과 인간적 품위를 지키기 위해 어쩌면 패배할지도 모를 싸움을 시작하는 이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_(『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의 본문 중에서)
날것의 글쓰기
이수명,『내가 없는 쓰기』

일기를 쓰시나요? 일기에 어떤 내용을 적으시나요?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이수명 시인의 일기를 모은 『내가 없는 쓰기』입니다. 이 책은 이수명 시인이 시가 되기 직전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기록한 일기입니다. 시인의 일기 속에는 문장이 되지 않은 사유의 조각들을 통해 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시인의 망설임과 비움, 연결되지 않는 순간들이 담겨 있습니다. 완성된 시가 아닌, 미완의 시, 그리고 시를 쓰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시인은 시에게 닿으려 하기보다 오히려 닿지 못함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시를 쓰려다가 결국 못 썼다는 고백도 있고, 하루 종일 시 쓰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했다는 고백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자신의 목표인 시와, 자신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거리를 있는 그대로 견딥니다. 화려한 서사 대신 아무 일도 없는 하루의 조각들이 남지만, “아무 일도 없으면 아무 일도 없다고 쓴다”라는 단순한 규칙으로 쓰기를 지속합니다.
우리는 가끔 매일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끝내 완성되지 않는 쓰기, 그러나 매일 조금씩 또다시 시작되는 쓰기처럼 멈추고 다시 시작하는 삶의 태도를 배우게 됩니다. 모든 날이 특별하지 않아도, 그저 흘러간 하루를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맞는데, 몇 마디의 언어, 몇 줄의 글에 내가, 하루가 의탁한다는 것이다. 날마다 언어에게 말을 걸고 언어가 태어나는 것은 뭐랄까, 글쓰기의 실행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언어를 통해 내가 실행되는 것에 가깝다. 글이 나를 쓴다. 그렇게 지난 한 해를 건넜다.”_(『내가 없는 쓰기』의 본문 중에서)
세 권의 책을 따라오다 보면, 시를 쓰는 마음은 결국 특별한 사람만의 재능이 아니라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 줄의 일기, 마음속에서 계속 맴도는 문장, 설명되지 않는 감정의 조각들, 그 작고 사소한 것들이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시가 되는 출발점이죠.
아주 작은 것으로 시작해 보세요. 오늘 본 풍경 하나, 포기한 일 하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 한 줄.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시가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기만 한다면, 이미 당신 안에서도 시가 조금씩 태어나고 있을지 모릅니다.
부록
시인들의 마음보다, 시인들의 시를 먼저 만나보고 싶다면 각 시인의 다음 시집들을 추천해 드립니다.
- 김복희 시인, 『희망은 사랑을 한다』
- 진은영 시인,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이수명 시인,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