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했던 세계가 사라질 때

우리가 머물던 자리를 그린 영화 3편

당연했던 세계가 사라질 때
이미지 출처: Dupe

'의존'은 사실 우리의 일상을 축약한 단어일지도 모릅니다. 가족, 일, 집, 반복해 오던 삶의 방식.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에 기대어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익숙함은 일상이 되고, 일상은 우리의 세계를 이룹니다.

하지만 균열은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의 세계를 조각냅니다. 우리 원하든 원치 않든 다른 세계로 이동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될까요? 나를 지탱하던 것이 사라진 이후의 이야기를 3편의 영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여름,
<여름이 지나가면>

이미지 출처 :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포스터

기준은 농어촌 전형 준비를 위해 엄마의 손에 이끌려 지방으로 내려온 첫날, 기준은 운동화까지 잃어버립니다. 엄마는 기준을 달래며 이게 다 널 위한 것이라 다시 속삭입니다. 이처럼 기준의 세상은 부모의 재력과 통제라는 구조 안에서 결핍을 느낄 틈도 없이 짜여져 있습니다.

또 다른 아이들, 영문과 영준은 서로에게 의존해 살아갑니다. 결손가정, 가난, 문제아. 두 아이를 설명하는 단어들은 어떤 보호도 없는 구조 밖에 처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르바이트와 도둑질, 폭력 모두 형제의 삶의 방식입니다. 하지만 기준은 형제들에게서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기준은 형제에게 게임기를 빌려주고, 형제들은 기준을 대신해 싸워주기도 하며 비밀스러운 우정을 쌓아갑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컷

하지만 세 아이의 우정은 높은 벽을 넘지 못합니다. 기준이 빌려준 게임기가 망가졌을 때 형제들은 고군분투해야 게임기를 사줄 수 있지만, 기준과 기준의 부모에게 게임기는 하나의 소모품일 뿐입니다. 절도, 폭력에 같이 휘말리지만 "우리 기준이는 그 애들과 다르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기준과 형제들의 세상을 가르는 선이 됩니다.

기준은 다시 서울이라는 안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잃어버린 운동화를 끝내 찾지 못한 것처럼 기준은 그 여름을 잊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안온한 일상이 형제와 기준은 다르다고 외친 부모의 낙인과 배제 속에서 만들어진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당연하게 누려오던 무구한 삶이 이면을 들여다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다른 존재로 다시 자라게 됩니다.

마지막 복숭아를 수확하는 계절,
<알카라스의 여름>

이미지 출처 :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포스터

스페인의 작은 마을인 알카라스. 햇빛이 내리쬐는 과수원은 솔레 가족의 삶의 터전이자 전부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뛰어놀던 과수원에 거대한 기중기가 들이닥치며 예고없던 균열이 일어납니다. 땅의 주인인 피뇰 가문의 상속자가 과거 할아버지가 구두 계약으로 약속받았던 땅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상속자는 복숭아나무를 베어낸 후 그 자리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평생 복숭아 농사를 지어온 맏아들 키멧에게 이는 삶을 뿌리 뽑히는 충격입니다. 신사업에 동참하자는 형제들과 크게 다투면서도 매일 아침 과수원에 나가 복숭아를 가꾸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키멧에게 복숭아 농사는 단순한 일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이자 가족의 삶, 삶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알카라스의 여름> 스틸컷

우리는 자신을 '무언가'로 소개하곤 합니다. 직업, 직장 등. 나를 이야기 하는 수많은 이름과 일상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 우리는 무엇이 될까요? 마지막 복숭아를 수확하는 가족의 모습, 중장비가 푸른 나무를 베어내는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는 솔레 가족의 모습이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주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기대온 이름을 잃은 뒤의 우리는 무엇이 될까요? 솔레 가족이 언젠가 새로운 복숭아나무를 만나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이름에 뿌리내릴 것을 믿습니다.

다른 세계로 떠나는 순간,
<셰이프 오브 워터>

이미지 출처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포스터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의 청소부 엘라이자의 일상은 단순하게 흘러갑니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시간에 출근해 똑같은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엘라이자의 일상은 안정적입니다. 그런 엘라이자의 하루를 뒤흔든 건 연구소에 갇힌 괴생명체입니다. 연구소에서 괴생명체는 '물건', '괴물'로 취급당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고 가족이 없던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에게 동질감을 느낍니다.

엘라이자는 괴생명체와 달걀을 먹고, 음악을 들으며 교감합니다. 감정도 지능도 없는 괴물이라 생각했던 괴생명체가 인간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연구소의 보안실장 리차드 스트릭랜드는 괴생명체를 해부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엘라이자는 그를 구출하기로 합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스틸컷

엘라이자의 탈출 계획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합니다. 엘라이자는 자신의 일상, 직장은 물론 목숨까지 버릴 용기를 가지고 괴생명체를 탈출시키던 중, 총에 맞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의존하던 안정적인 세계에서 유리된 엘라이자는 물 속에서 새로운 숨을 틔우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믿고 의존하던 세계가 전부라 믿게 됩니다. 익숙한 것과 작별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이유도 이 때문일지 모릅니다. 인간이라면 살 수 없는 물속에서, 엘라이자의 상처는 아가미로 변해 새로운 숨을 터트리는 매개가 된 것처럼, 우리가 믿고 있던 세계가 전부는 아닐지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것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때로는 우리가 의존하던 것을 예고없이 잃어버리고, 나를 증명해주던 이름까지 상실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딛고 선 세계가 이토록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상처 입기도 합니다. 하지만 엘라이자의 목에 남은 상처가 아가미가 된 것처럼, 그 이후의 이야기는 지나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계절이 지나가면 다음 계절이 오는 것처럼, 익숙한 세계가 닫힐 때 또 다른 세계의 문이 열리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