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시작하는 예술과 투쟁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의 가장 정치적인 발화

침대에서 시작하는 예술과 투쟁
트레이시 에민 (1998), 나의 침대

이 이야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공간에서 시작한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몸을 누이는 곳, 은밀한 대화를 이불 밑에 감출 수 있는 곳, 가장 가깝고 친밀한 사람만 초대하고 싶은 곳, 가지각색의 꿈을 조용히 받아주는 곳. 나의 침대. 하루 종일 아무 일 없던 듯 괜찮은 시간을 보내다가도, 마침내 침대에 누웠을 때 잊고 싶었던 기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온 경험이 있는가. 침대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고 느낀 적이 있는가. 침대는 타인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더 큰 세계와의 관계를 거울처럼 비추는 투명한 공간이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페미니즘의 오래된 슬로건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우리와 함께 잠을 잔다.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작은 공간에서 가만히 누워 꿈을 꾸는 것 이상으로, 더 멀리 나아간 여성 예술가들이 있다. 침대를 예술의 출발점으로, 정치적 발화의 무대로 만든 작가들이 우리를 기꺼이 그들의 침대로 초대한다.

나와 잤던 모든 사람들에게

트레이시 에민 (1963-1995),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넷플릭스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가 사랑한 모든 남자들에게>가 있기 훨씬 전, 이미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에게는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1963–1995>이 있었다. 흔히 <더 텐트 The Tent>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은 수공예로 제작된 텐트 내부에 작가와 함께 잠을 잔 사람 102명의 이름이 수놓아진 설치 작품이다. 여기서 ‘함께 잤다’는 말은 단순히 성관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잔 사람들, 어린 시절 친구들, 가족, 연인 등 다양한 관계의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잠을 잔다’라는 말이 가진 이중성을 이용한 일종의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트레이시 에민 (1963-1995),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성적 관계를 엿보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텐트 안을 들여다본다. 당시 에민의 연인이자 그 역시 예술가였던 빌리 차일디시의 이름이 정면으로 크게 보인다. 그 주위로 에민의 할머니와 친구들의 이름 그리고 번호가 매겨진 태아 두 명의 이름 역시 수놓아져 있다. 인터뷰에서 에민은 이 작품이 “낙태, 강간, 십 대의 성관계, 학대, 그리고 빈곤”에 관한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나열된 이름들 사이에서 관객은 에민의 삶에 수놓인 친밀함, 사랑, 폭력, 고통의 흔적을 찾게 된다. 에민의 의도처럼 관객은 텐트 밖을 나오며 자기 자신을 비추는 거울 앞에 서게 된다. 나와 잠자리를 했던 사람들, 나와 한 침대에서 지극히 친밀했던 상대들, 나란히 누워 함께 라디오를 듣다 잠들던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내게 상처를 입히고 폭력을 가한 이들. 

무엇보다 에민의 텐트의 가장 바닥에 새겨진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With myself, always myself, never forgetting" (나 자신과, 언제나 나 자신과, 결코 잊지 않고). 나와 평생 함께 잠을 자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트레이시 에민 (1998), 나의 침대

사적인 경험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에민의 작업은 1998년 터너상 후보에 올랐던 작품 <내 침대 My Bed>로 이어진다. 얼룩진 침대 시트, 콘돔, 스타킹, 생리혈이 묻은 속옷, 낡은 슬리퍼, 구겨진 담뱃갑, 술병 등 잡동사니로 어지럽혀진 침대가 그대로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이다. 관계 문제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던 에민이 침대에서 보냈던 시간을 그대로 재현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장 감추고 싶었던 순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관람객은 전시장 한가운데 놓인 침대를 보며 자연스럽게 자신의 가장 깊숙한 치부, 어지럽혀진 침대를 떠올리게 된다. 지극히 내밀한 개인의 흔적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에민의 작업은 ‘수치’, ‘치부’, ‘고통’의 의미를 다시 전유한다. 감추고 싶은 모습마저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에민은 침대 위에 그대로 올려둔다. 발버둥 치며 보낸 침대 위의 시간도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나의 고된 삶을 정면으로 맞서는 예술을 하겠노라고 말한다.

집인데도 집에 갈 수 없을 때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된 <접속하는 몸 -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 전시에서 소개된 미디어 아티스트 이데미츠 마코의 <가정주부의 어느날>(1977)은 한 가정주부의 평범한 일상을 담은 작품이다. 영상 속에서 주부는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며 집안일을 한다.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전화 통화를 하고, 잠시 침대에 누워 쉬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어디를 가든 TV 화면 속 눈이 따라다니며 그녀를 감시한다. 집 안 어디에도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이데미츠 마코 (1977), 가정주부의 어느날

이데미츠 마코는 집과 침대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노동과 감시의 시간을 포착한다. 결혼 후 미국에서 가정주부로 살던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니터 속 ‘또 다른 눈’을 통해 자기 삶을 바라보고 은폐된 가사 노동을 고발하는 장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은 가정주부에게 노동이 끊이지 않는 가장 공적인 장소가 된다. 심지어 침대에 누워 쉬는 순간에도 감시는 멈추지 않는다. 자신에게 단 한 칸의 내밀한 공간도 허락되지 않을 때, 여성에게 찾아오는 좌절과 절망이 영상 전체에 흐르는 섬뜩한 분위기 속에 배어 있다.

이데미츠 마코 (1977), 가정주부의 어느날

일본에서 태어난 이데미츠 마코는 대기업 이데미츠 코산의 창립자인 아버지의 엄격한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1965년 화가 샘 프랜시스와 결혼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한다. 가부장적인 집안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 그녀가 맞닥뜨린 것은 백인 중심의 보수적인 중산층 사회였다. 가정주부가 된 마코는 끝이 없는 집안일 속에서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가정주부의 어느 날>은 작가의 실제 경험에서 출발한 작품으로, 가정주부가 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의 존재를 상상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으로 살며 고립감을 느끼는 와중에 이데미츠는 유명한 작가 남편 대신 홀로 아이와 집안을 돌보았다. 그런 그녀의 침대 위로 삶을 흔드는 질문이 기어 올라온다. “나는 누구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은 결국 그녀를 다시 예술로 이끌었다. 이에 이데미츠 마코는 8mm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 독학으로 비디오 아트를 만들기 시작한다. 답답한 일상에 좌절하던 여성이미디어 아티스트로 도약하게 되는 순간이다. 여기 고된 가사 노동을 마치고 잠깐 침대에 누워 자기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 여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카메라로 포착해 자기 자신을 또 한 번 바라보는 작가 이데미츠 마코가 있다. 이데미츠는 바로 그 반복적이고 지루했던 가사 노동의 시간, 여성의 삶 자체를 작업의 중심 주제로 삼기 시작하며, 침대와 집보다 더 큰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데미츠 마코 (1972), 여성의 집

1972년 이데미츠는 여성들이 모여 페미니즘 문헌을 읽고 여성 해방을 논의하는 의식 고취 그룹(consciousness-raising group)에 참여하게 되고, 이 경험은 그녀의 작업 세계를 더욱 확장시킨다. 같은 해 그녀는 영상 작품 <여성의 집 Woman’s House>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당시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주디 시카고와 미리암 사피로가 학생들과 함께 기획한 페미니스트 전시 <우먼하우스 Womanhouse>의 내부를 기록한 영상이다.

한때 자신을 가두는 공간처럼 느껴졌던 ‘집’은, 이 작업에서 여성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새로운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실험적 공간으로 다시 등장한다. 가사 노동과 고립의 장소였던 집이 여성들의 집단적 상상력과 연대를 통해 예술과 정치의 장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낸 골딘 (1985), 성적 의존의 발라드

낸 골딘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마약, 퀴어 커뮤니티, 성노동, 폭력, 질병, 죽음 등 사회의 가장 취약한 현실을 정면으로 기록해 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다. 특히 대표작 <성적 의존의 발라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는 1970~80년대 뉴욕의 삶을 담은 슬라이드쇼 형식의 사진 작업으로, 약물 중독과 에이즈로 질병과 죽음이 뒤섞여 있던 공동체의 사랑과 상실로 가득한 순간들을 포착한다. 이 작업에는 작가 자신의 삶도 예외 없이 포함된다. 연인에게 폭력을 당해 멍든 얼굴을 촬영한 사진, 친구들과 침대에 누워 있는 장면, 밤의 파티와 중독의 순간들까지 골딘의 카메라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가장 취약한 순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골딘의 사진 속 침대는 친밀함과 폭력, 사랑과 파괴가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이다. 연인들이 서로를 껴안고 잠드는 장소이자, 관계의 균열과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 침대 위에서 기록된 개인의 삶은 곧 한 시대의 사회적 기록이 된다.

로라 포이트러스 (2022),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

그리고 이 개인적인 기록은 결국 정치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2022년 다큐멘터리 <낸 골딘,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는 그녀가 오피오이드 중독 사태를 일으킨 제약회사 사클러 가문에 맞서 벌인 투쟁을 기록한다. 골딘은 미술관에서 시위를 조직하며, 제약회사 후원을 받는 미술 기관에 책임을 묻는다.

낸 골딘의 작업은 자신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는 일이 어떻게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침대 위에서 시작된 개인의 고통이 결국 거대한 권력 구조에 맞서는 정치적 목소리로 확장되는 것이다.


“So I start a revolution from my bed”
(나는 침대에서 혁명을 시작했지)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의 가사다. 고통, 폭력, 좌절과 함께 잠을 자던 여성 예술가들은 바로 그 침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침대는 안락한 도피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직면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트레이시 에민, 이데미츠 마코, 낸 골딘의 침대는 이 여성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예술로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내밀한 삶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듯이, 우리의 눈물과 분노, 치부와 비밀이 묻어 있는 이불을 걷어내는 일 역시 하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어쩌면 혁명은 언제나 거창한 광장이 아니라, 가장 작은 침대 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디스모피아, 아시아 여성 퍼포먼스·비디오에 드러난 젠더 정치학, 2024 ACC 아카이브 연구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