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은 정말 선택이었을까
배움이라는 이름 아래 굳어버린 의존의 조건
모든 의존은 과연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선택하지 않으면 다음 배움의 기회나 생계의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독립과 자립을 미덕으로 삼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삶은 쉽게 무능함이나 의지 부족으로 환원되기도 하죠. 그러나 모든 의존이 개인의 성향이나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지가 충분하지 않을 때 의존은 취향이 아닌 생존의 조건에 가까워지기 때문이죠. 문제는 의존 그 자체가 아닌, 그 의존을 거절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 글은 스트릿댄스 씬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스승-제자 관계를 출발점으로, 여러 업계 전반에 걸쳐 유지되어온 도제문화의 구조를 살펴봅니다. 교육과 전승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된 관계들이, 어떻게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절하기 어려운 의존을 만들어왔을까요? 그리고 그 의존이 언제부터 관계가 아닌 조건이 되었는지를 질문하고자 합니다.
조건이 된 배움
스트릿댄스씬에서 스승과 제자는 오랫동안 배움의 핵심적인 경로로 작동해왔습니다. 기술, 감각, 태도는 관계속에서 전승되었고, 이는 씬의 지속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이 글이 모든 스트릿댄스 씬이 동일하게 작동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지역과 환경, 개인의 경험에 따라 분명 다른 양상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일부 씬에서는 사제 관계가 배움의 한 방식이 아니라, 씬에 남기 위한 전제 조건처럼 기능하는 관행이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짚고자 합니다.
‘배워야 한다’, ‘인정받아야 한다’, ‘작품을 받아 전문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말들은 교육의 언어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고액의 작품비, 무기한의 헌신, 질문조차 조심해야 하는 분위기 등 명백한 의존을 요구하는 구조가 함께 작동합니다. 형식상 선택은 존재하지만, 그 선택을 거부하는 순간 이후의 배움과 기회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 있다는 사실을 씬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죠. 이 지점에서 의존은 개인의 성향이나 관계의 친밀함을 넘어, 씬에 남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처럼 작동하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가 스승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씬 안에서는 처음 만난 동료들 사이에서도 ‘어디 학원 출신인지’, ‘누구 제자인지’, ‘누구에게 작품을 받았는지’를 묻는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갑니다. 단순한 정보 교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급을 나누는 기준으로 기능하기도 합니다. 작품을 받는 경험이나 특정 스승과의 연결은 일종의 자격처럼 작동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설명 이전에 평가받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구조는 위에서 강제될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부터도 반복적으로 재생산됩니다.
물론 작품 자체가 문제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작품을 통해 실력이 성장하고 방향을 찾았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선택이 아닌 강제에 가까워질 때입니다. 작품을 받지 않으면 스승의 부재로 간주되거나, 학원 이동과 배움의 경로가 제한되는 상황이 반복될 때, 작품은 배움의 도구가 아니라 소속과 생존을 증명하는 조건이 됩니다. 배움을 위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의존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이 순간 의존은 더이상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스트릿댄스 씬에서의 도제 구조는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되기보다, 스승과 제자, 학원과 지역, 그리고 동료 집단의 인식이 맞물리며 형성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는 누군가를 지목해 비판하는 것으로 해결되기보다, 우리가 얼마나 쉽게 이 구조에 익숙해져 왔는지를 함께 돌아보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질문은 이후 요리 업계와 대학원이라는 다른 장면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칼을 잡기까지 걸린 시간

2025년 큰 화제를 모은 프로그램 <흑백요리사2>에서 등장한 후덕죽과 천상현의 사제 관계는 많은 이들에게 이상적인 도제 문화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상호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노력과 성장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서사는 대중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겼죠. 그러나 이러한 장면이 요리 업계 전반의 도제 문화를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이는 극히 예외적인 사례에 가깝습니다.
현실의 요리 업계에서 도제 문화는 흔히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작동합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2년 이상의 시간 동안 제자들은 요리 실력의 향상과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업무를 주로 맡습니다. 음식물 처리, 설거지, 매장 정리와 같은 일들은 인내와 성실함을 증명하는 과정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물론 배움의 과정에서 이러한 노동이 일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일정 시간이 지나도 조리 과정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
이 지점에서 노동은 배움의 일부라기보다 배움을 미루는 조건으로 기능합니다. 기술을 익히기 위해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배울 수 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붙잡기 위해 현재의 노동과 불안정한 위치를 감내해야하는 구조입니다. 형식상으로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택지가 제한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존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요리 업계의 도제 구조는 스트릿댄스 씬에서 목격되는 스승-제자 관계와도 닮아 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특정 관계에 기대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는 점, 그 의존이 개인의 열정과 노력이라는 언어로 포장된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도제 문화는 이처럼 미화된 예외적인 서사를 통해 유지되고, 그 이면의 구조적 문제는 쉽게 가려집니다.
관계를 끊는 순간 길이 사라졌다
이러한 구조는 스트릿댄스 씬이나 요리 업계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대학원과 교수-학생 관계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됩니다. 연구 주제의 승인, 논문 통과 여부, 추천서 작성, 이후 학계나 업계로의 진입까지 많은 과정이 특정 교수와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선택 가능한 관계처럼 보이지만,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순간 경로 자체가 사라지기도 합니다. 학생은 연구자가 되기 위해, 혹은 업계에 남기 위해 의존을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놓입니다. 이는 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다른 선택지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존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구조를 많은 이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음에도, 쉽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비주류 문화와 예술계는 외부의 시선에 취약한 영역이었고,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는 일은 종종 공동체에 대한 배신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여기는 원래 그렇다’, ‘나도 그 과정을 거쳤다’, ‘그래야 실력이 향상된다’와 같은 말들은 경험의 공유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의존을 정당화하고 반복시키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고통은 다음 세대의 통과 의례가 되고, 구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때 문제는 개인의 태도가 아닌, 의존을 거절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누군가의 스승을 고발하거나 문화를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감내해온 의존이 정말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선택처럼 보이도록 굳어진 구조였는지를 묻고자 합니다. 의존은 그 자체로의 문제는 아니죠. 다만 거절할 수 없을 때, 관계는 배움이 아닌 조건이 됩니다. 우리가 의존을 다시 말하는 이유는 관계를 끊기 위함보다 조건으로 굳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