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관념을 비트는 소설 3선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출처: 픽사베이

인터넷 검색창에 ‘어린이’를 검색하고 이미지를 눌러보세요. 대부분의 사진 속에서 아이들은 환하게 웃음 짓고 있습니다. 또, 노란 옷을 입은 친구들과 넓은 들판을 달려가요. 사진들을 보면 명랑하다, 순수하다, 깨끗하다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명랑하고 순수해야만 어린이다운 걸까요? 글쎄요, 필자는 어린이에게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독 약자는 특정 모습으로만 묘사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린이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일관된 이미지들처럼,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있고 노인은 인자하게 웃습니다. 혹은 지팡이를 짚고 노을을 향해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이지요. 인터넷 검색창을 넘어 우리들 머릿속에서 약자는 단면적으로 비치곤 합니다. 이러한 이미지에 갇히면 약자를 한 가지 모습으로만 보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면 약자의 삶은 납작해져 버려요. 이번 아티클에서는 약자의 고정관념을 비트는 작품을 다루며 지워진 삶의 형태에 주목해 보려 합니다.


 

명랑해야만 ‘아이’인가요?

은희경, 새의 선물

출처: 예스24

『새의 선물』의 주인공 진희는 열두 살입니다. 그러나 열두 살 진희는 여느 성장소설의 어린이와는 달라요. 프롤로그의 제목마저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책의 목차만 살펴봐도 범상치 않지요. 진희는 그저 웃고 그저 울며 감정에 솔직한 아이가 아닙니다. 세상의 이치를 다 아는 듯 굴며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상하관계, 감정의 흐름을 기막히게 짚어내요.

때로는 감정의 흐름을 이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며 발칙하게 굴기도 합니다. 주변 인물을 관찰 대상이자 실험 대상으로 본달까요. 이렇듯 보통의 어린이 이미지와는 다른 진희를 따라가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소설 속 어른들이 모르는 진희의 발칙함을 독자로서 은밀히 누리는 재미가 있어요. 1960년대에 대한 묘사도 일품이라 금방 책장을 덮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답니다.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이 내면 묘사가 열두 살 아이의 것이라면 믿어지시나요. 세상에 대해 냉소적인 시선을 가진 아이를 상상하는 일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방학을 누리고 있을 아이 중에도 애늙은이 소리를 제법 들어본 아이가 있을 겁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읽는다면 한층 더 재밌게 느껴질 거예요. 건널목을 건너는 아이 중 진희가 있진 않을지 궁금해하며 내 주변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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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욕망과 거리가 멀까요?

구병모, 파과

출처: 예스24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노인은 대부분 욕망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인자한 시골 할머니, 통달한 현자, 단단한 내면을 가진 전통주의자 혹은 꼬장꼬장한 어르신 정도로 그려지죠. 그러나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감정이 무뎌지고 욕망이 사라질까요? 필자가 조부모님께 여쭤본 결과, 마음은 늙지 않고 그대로라고 하네요. 비단 필자의 조부모님에 한정될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여기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게 비트는 소설이 있습니다.

소설 『파과』는 베를린영화제 공식 초청 영화 <파과>의 원작 소설로, 주인공 조각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을 듯한 단어의 조합으로 설명됩니다. 여성 노인 킬러. 40여 년간 청부 살인을 해온 조각은 늙은 신체로도 민첩한 움직임을 구사하죠. 엑스트라로 지나치기 쉬운 니트 모자를 쓰고 패딩 조끼를 입은 늙은 몸을 가진 여성의 모습을 월등한 신체 능력으로 역전합니다. 개인적으로 더 시선이 갔던 설정은 조각이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던 부분이었어요.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는 신조로 살아왔던 킬러 조각이 늙은 개를 집에 들이고, 치료해 준 의사에게 강렬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를 관찰하며 삶의 희로애락을 마주해요. 그리고 사람과 삶을 욕망합니다. 그 욕망에 휘둘리는 조각이 소설의 주요 내용입니다. 다면의 감정을 느끼는 조각으로 하여금 보통의 ‘할머니’ 이미지를 비틀어요. 할머니가 청부 살인을 하고 감정의 폭풍에 휩쓸립니다. 이 문장에서 일말의 신기함이 느껴지는 걸 보면 필자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소설 속 문장을 읽으며 다음 소설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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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가지면 사랑할 수 없나요?

서혜듬, 온 마음을 모아

출처: 예스24

『온 마음을 모아』는 틱이 있는 수의사 모아가 주인공인 로맨스 판타지 소설입니다. 장르가 장르인 만큼 앞선 두 소설에 비해 가볍게 쓱쓱 읽히는 문장이 특징이에요. 주인공 모아는 고객들의 불평, 병원의 거부로 도시에서 수의사로 정착하지 못하고 고향집에 찾아옵니다. 평온하게 살고 싶었던 모아 앞에 벌컥 부엌 찬장이 열리더니 이상한 생김새의 동물이 나타나요. 그리고 뒤이어 동물을 데리러 온 문지기가 찬장에서 떨어집니다. 다른 세계의 문이 부엌 창문에 연결되어 열렸다나요.

모아는 문지기와 세계와 세계의 균열을 막기 위해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인간 세계로 넘어온 낯선 동물을 쫓아다니는 모아는 더 이상 동정과 의문의 대상이 아니었어요. 상황을 판단하고 대처하며 사랑하는 주체가 됩니다. 한 에피소드에서 고등학생 은주가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말하자, 동경의 순간이 올지 몰랐다며 시큰해하는 모아의 모습에서는 그동안 받아온 배제의 시선이 어땠는지 알 수 있죠. 모아는 별다락에 대해 아래처럼 말했어요.

모두가 나와 같아지길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세상에 유별난 것들이 더 넘쳐나기를 바랐다. 더 희한하고 더 독특한 것들로 채워져서, 이상한 것이 이상하지 않고 이상하지 않은 것이 이상해지는, 그래서 모두가 이상하고 누구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 되면 사는 게 한결 편해질 것 같았다. 더는 내가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르게 이상한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까.

모아에게 현실 세계와 별다락은 크게 다를 바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남들의 시선으로 인해 배제 받고 숨겨져 온 자신처럼, 별다락 생물들도 인간 세계를 피해 그곳에 모이게 되었으니까요. 모아와 문지기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상한 것이 더 이상 이상하지 않은 세상의 모습을 꿈꿔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모두가 한계 없이 감정과 행동의 주체가 되는 세상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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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진희와 조각, 모아는 홀로서기에는 모자란 존재, 곁에 누군가 있어야 유지되는 존재로 인식되곤 합니다. 효율을 위해 일관된 이미지에 해당하지 않는 모습은 쉽게 지워지고, 약자의 삶은 납작해지죠. 그러나 앞서 살펴본 작품들처럼 모두의 삶은 평면 도형보다는 입체 도형에 가깝습니다. 나이가 적든 많든, 성별과 외모가 어떻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독자적인 존재이죠.

주체보다 객체로 취급되면서 자연스레 외면되는 삶의 뒷면이 많다고 느낍니다. 입체 도형을 앞에서만 바라보면 평면 도형으로 보이기 마련이니까요. 몇 걸음 돌아 걸어 타인의 뒷모습까지 바라보려 노력한다면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 몇 걸음만 돌아 걷는 잠깐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분명하게 존재하는 진희, 조각, 모아가 온전한 나로 받아들여지도록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