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인간과 동물 사이, 의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
“아직 자립을 이루지 못한 2030 세대가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것을 반대한다.”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의 발언입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반려동물이란 가족과도 같은 존재이기에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이들을 돌보며 에너지를 쏟는다면, 커리어에 방해가 될 수 있다며 경고했죠. 두 마리 턱시도 고양이의 집사이자 유기 동물 보호소 봉사자로서, 완전히 틀린 말인 것 같진 않아요. 확실히 동물은 인간에게 돌봄을 요구하고, 의존이 필요한 존재로 보입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조금만 돌려보면, 강아지는 약 3만 년 전부터 가축화된 파트너였고, 고양이는 쥐로부터 인간의 곡식 창고를 지키는 파수꾼이었습니다. 인간과 동물은 일방적인 의존과 돌봄이 아닌, 생존을 위한 상호 계약 관계였던 셈이죠. 그렇다면 과연 이 관계는 현대에 이르러 파기되었을까요? 과거에는 단순히 생존을 도왔다면, 오늘날 동물들은 더욱 복잡하고 다정한 방식으로 우리를 구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는 파트너
동물은 인간에게 보살핌을 받기만 하는 존재 같지만, 인간은 동물의 압도적인 감각에 의존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시각장애인 안내견과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이 있습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사용자의 눈이 되어 안전한 생활을 돕습니다. 그들의 핵심 능력은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않는 ‘지적 불복종(Intelligent Disobedience)’입니다. 사용자가 위험한 명령을 내린다면, 이를 거부하고 멈춰 서서 사용자를 보호하는 고차원적 지성을 발휘해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주는 것이죠.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사용자의 귀가 되어, 청각을 촉각으로 변환시켜 줍니다. 초인종 소리 등 일상 소리를 들으면 짖는 대신, 사용자의 몸을 터치하면서 신호를 보냅니다. 화재 경보와 같은 위험 신호는 일상 소리와 구분하여 즉각적으로 알리되, 위험 현장에는 가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신호를 보내기도 하는데요. 이들은 단순히 눈과 귀가 되어 임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 방식에도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후각적인 영역에서는 인간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능력을 자랑합니다. 인간보다 최대 3만 배나 뛰어난 후각을 가진 마약 탐지견은 공항 등에서 불법 약물을 찾아내고, 인명구조견은 붕괴된 건물 잔해 속에서도 살아있는 사람의 미세한 체취만을 감지해 냅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구조견들이 계속해서 시신만 발견하게 되자 우울증 증세를 보여, 살아있는 사람이 숨어 찾게 만들며 구조견을 위로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이는 그들이 단순히 신체적 능력만을 활용하는 기계적인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구하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일상의 파트너
직업적인 특수 훈련을 받지 않아도, 일상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가는 동물들도 있습니다. 바로 ‘반려견 순찰대’와 ‘녹지재생견’이죠.

먼저, 반려견 순찰대는 평범한 반려견과 반려인이 동네를 산책하며 위험 요소를 살피는 활동입니다. 동네의 지리를 가장 잘 아는 존재들이 우리 동네 보안관이 되어,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거나 고장 난 가로등을 신고하며 안전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일조합니다.

자연재해로 불타버린 숲을 되살리기 위해 산을 타는 강아지들도 있습니다. 바로 녹지재생견, ‘산타독’입니다. 이들은 구멍이 뚫린 가방에 씨앗을 담아 폐허가 된 산불 피해 지역을 신나게 뛰어다니고, 사람이 닿기 힘든 곳까지 씨앗을 뿌리며 숲의 재생을 돕습니다. 지난 2022년 강원도 고성 산불 현장에도 산타독들이 출동하여, 파괴된 자연을 우리에게 돌려주는 데 기여한 바 있습니다.
신묘한 에너지로 우리를 위로하는 파트너
물리적인 결핍과 재난뿐만 아니라, 의학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마음의 빈곤까지 채워주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심리적 안정과 정서적 치유를 얻는 동물 매개 치료의 영역입니다.
그중에서도 홀스테라피(Horse Therapy)는 단순히 말을 타는 행위를 넘어, 말과 나란히 발을 맞춰 걷는 ‘그라운드 워크(Ground Work)’에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말의 심장은 인간보다 5배가 크고 강력한 저주파 전자기장을 형성하는데, 이 저주파는 인간의 불안이나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말의 곁에 서면, 우리는 이 거대한 에너지장 안에 온전히 둘러싸이게 됩니다. 또한 말의 차분하고 일정한 심장 박동 리듬은 인간의 불안정한 심박수와 공명하여 안정을 찾아줍니다. 말 위에 올라탈 때보다, 말의 어깨 옆에서 눈높이를 맞추고 걸을 때 치유의 에너지가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것이죠.
고양이의 골골송에도 비슷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25Hz~150Hz의 진동은 의학적으로 뼈의 재생과 근육 이완을 돕는 치유 주파수와 일치합니다. 학술적인 근거를 차치하더라도, 이미 고양이는 존재만으로 공허함을 채워주기에 충분합니다. 그 귀여운 생김새로 인간을 정복한 지 오래이니까요.

침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자리를 차지한 두 마리의 고양이를 피해 테트리스 하듯 몸을 구겨 넣고, 봉사활동을 위해 주말 약속을 반납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볼 때면, 김승호 회장의 말처럼 “이 작은 생명들에 너무 얽매여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절반만 맞고 절반은 틀렸습니다. 종종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필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이 작은 생명들이었으니까요. 그들에 대한 책임감은 커리어를 방해하는 족쇄가 아닌, 삶을 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였습니다.
우리는 동물에게 돌봄을 제공하며 그들의 의존을 감당하는 것 같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우리는 그들이 건네는 무해하고 무한한 사랑에 의존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닻이 되어 아름다운 구속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죠.

P.S. 필자의 삶에 가장 매서운 바람이 불던 시절, 새하얀 눈처럼 소복이 내려와 곁을 포근히 채워준 백설이에게 이 아티클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