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대국 10주년, 바둑판은 미래의 축소판일까

승부에서 공존으로

알파고 대국 10주년, 바둑판은 미래의 축소판일까

2016년 3월. 세계는 가로 세로 19줄의 바둑판 앞에서 숨을 죽였습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인간이 마지막으로 승리를 거둔 그날의 78수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환호했지만, 동시에 알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요.

그로부터 10년이 흘렀습니다. AI는 다시 한번 세상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바둑판이 아니라 우리의 책상 위에서, 회의실에서, 일상 곳곳에서 말입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바둑판에 먼저 찾아온 변화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예고편이었던 걸까요?


알파고 이후 바둑계에 찾아온 변화

장강명 작가의 르포 《먼저 온 미래》에는 알파고 이후 바둑계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이세돌 9단도 최근 자서전 《이세돌, 인생의 수읽기에서 그 변화를 증언했죠. 수천 년간 바둑계를 지배해온 정석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이 자리엔 이렇게 두는 게 당연하다"던 고정관념들이 AI에 의해 부정당했죠.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한 겁니다.

복기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과거엔 기사들이 모여 "이 수는 왜 뒀을까" "여기서 이렇게 둘 수도 있지 않았을까" 토론하고 연구했습니다. 지금은 AI가 제시하는 승률 변화 지점을 찾습니다. 어느새 바둑기사들 사이에선 '싱크로율'이라는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AI가 추천하는 수, 일명 '블루스팟'과 얼마나 유사하게 두느냐를 따르게 된 겁니다.

김효정 3단: "지금은 비틀 수가 없어요. AI가 정해주니까. AI를 사용하면 이길 확률이 바로 뜨니까 '이 수는 아웃' 이렇게 돼요. 전보다 더 견고한 성에 답답하게 갇혀버린 느낌이에요. 바둑이 싫어진 건 아니고, 바둑을 좀 잃어버린 기분이에요.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내가 그릴 수 있는 그림을 뺏겨버린 느낌."

과거 바둑은 정답이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직관과 맥락이 중요했습니다. 기사들은 저마다의 기풍을 가졌고, 한 수 한 수에 개성이 묻어났습니다. 사람들은 바둑을 두며 교감했고, 그 안에서 예술과 철학을 발견했습니다. 승부인 동시에 그 이상의 무언가였습니다.

AI 이후 바둑은 정답이 있는 영역이 됐습니다. 확률과 데이터가 주류가 됐습니다. AI의 수를 학습하고, 패턴은 정형화되고, 승률이 판단을 대신합니다. 승부는 더 치열해졌지만, 예술보다는 문제 해결에 더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이하진 4단: "제가 어려서 바둑을 배울 때 바둑은 평생 공부를 해도 끝에 다다를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프로기사 수준이 되면 누군가에게 배운다기보다는 스스로 갈고 닦고 혼자 수련하는 거죠. 그래서 아무도 답을 모르는 것을 내가 공부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그런게 없어졌어요. 답을 모르는 상태에서 스스로 연구하던 것과 AI가 정답을 알려주는 상태에서 연구하는 건 다르죠."

기술이 보편화되면, 인간다움은 승부수가 된다

바둑판에서 일어난 일은 곧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장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바둑계가 먼저 겪은 변화 속에서 힌트를 찾아봅니다.

영화 <승부>, 어린 이창호(김강훈 역)와 대국을 두는 조훈현 9단(이병헌 역)

인격: 그 사람만이 전달할 수 있는 것

바둑계가 그리워하는 건 승부의 완벽함이 아니라, 기사들의 개성과 기풍이었습니다. '이세돌류', '이창호류'로 불리던 그 사람만의 스타일 말이죠. 이세돌 9단은 공격적이고 창의적인 수로, 이창호 9단은 수비적이지만 견고한 바둑으로 유명했습니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가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졌죠.

인공지능이 도입된 이후 바둑은 '최선의 수'가 공유되면서, 초반 20~30수까지는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 선수와 저 선수의 차이를 알기 어려워진 것입니다. AI는 완벽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 안에 '이 사람다움'을 담아낼 순 없습니다. 연결감, 신뢰, 진정성. 캐릭터성, 오리지널리티, 서사.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만의 독특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맥락: 논리와 확률을 넘어 이야기로 연결하다

프로기사들은 바둑을 스토리로 기억합니다. "여기서 상대방이 당황했던 것 같아요", "이 수로 흐름을 가져왔죠", "여기서 기세를 잡았어요"와 같이 복기해요. 두 사람의 심리전과 판의 흐름은 하나의 이야기가 됩니다. 반면 인공지능이 둔 바둑은 기보에서 맥락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보면 뚝뚝 끊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AI가 읽는 맥락과 인간이 읽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AI가 읽는 맥락은 제한적입니다. 텍스트, 숫자, 데이터. 명확하게 코드화된 정보들이죠. 하지만 인간은 다릅니다. 현장의 분위기, 몸의 컨디션, 상대방의 성향. 바둑판 안을 벗어나 더 넓은 맥락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승률의 관점에서는 오히려 잡음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이죠.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소통해야 하는 우리의 삶에서는 다릅니다. 상대의 표정, 목소리의 떨림, 말하지 않은 것들. 이 모든 비언어적 신호를 읽고 반응하는 능력은 관계의 영역에서 여전히 중요합니다.

미적 감수성: 아름다움을 느낀다

바둑에는 '기세'와 '형세'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단순히 승률이 높은 것만이 아니라, 보기에 아름다운 바둑을 뜻하죠. 관전자들은 프로기사의 바둑을 보며 "이 수는 예술이다", "형세가 아름답다"고 말합니다. 승패와 별개로, 대상 그 자체에서 미적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AI도 인간처럼 미적 대상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만드는 것은 아니죠. AI는 만들거나 설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느낌에서 출발한 주관적 해석과 직관적 판단은 인공지능과 구별되는 인간의 역량입니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전인적이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설득해야 할 대상은 AI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리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전인적이어야 하죠. 사람의 마음은 논리와 효율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미용실에 왔다고 생각해 볼까요? 우리는 단순히 가격과 커트 실력만 고려하지 않습니다. 공간의 쾌적함, 환영받는 느낌, 헤어 디자이너와 나누는 대화와 정서적 유대감. 기다리는 동안 내어주는 음료, 쿠션의 부드러움, 조명의 따뜻함, 흘러나오는 음악. 이 모든 것이 종합되어 "다음에 또 오고 싶다"는 감정을 만듭니다.

이건 우리가 몸의 감각을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타인을 상상하며 소통하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매 순간이 이런 전인적 경험과 판단을 요구합니다. 정답, 데이터, 논리만으로는 유기체인 우리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AI와 함께 달리는 시대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말과 경주하면 반드시 인간이 진다. 말과 직접 경주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올라타야 이기는 것이다."라는 이어령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말이 인간보다 빠르게 뛴다고 인간이 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말에 올라탔으니까요.

지금은 AI라는 말에 어떻게 올라탈지, 어떤 마음으로 올라타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AI시대의 무게중심은 이동하고 있습니다. 논리와 정보의 영역에서 AI는 이미 인간을 압도했습니다. 감정과 공감의 영역에서는 AI가 생산하고 인간이 편집하고 수용하는 새로운 공존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죠.

그렇다면 온전히 우리에게 남은 건 무엇일까요. 신뢰와 관계, 그리고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불완전함 속에 깃든 '인간적인 매력'과 '취향'이 결정적인 승부수가 될 것입니다.

바둑판은 19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AI는 완벽에 가까운 답을 찾아냈죠. 하지만 우리의 삶은 다릅니다. 줄이라는 규칙도, 정답도 없습니다. 누구도 밟아보지 않은 길을 걸어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정답이 없는 한, 우리 삶은 바둑판보다 넓습니다.

그러니 먼저 온 미래를 겪은 바둑계의 이야기가 우리 삶에 건네는 지혜는 이런 게 아닐까요. AI를 거부하거나 두려워할 게 아니라, 서로가 잘하는 영역을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 AI가 정답과 효율을, 인간이 서사와 관계를 담당하며 이 무한한 판을 함께 그려나가는 것. 알파고 대국 10주년, 이제 우리는 AI와 함께 승부가 아닌 공존의 대국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