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55 YEARS: A LEGACY OF MODERN & CONTEMPORARY KOREAN ART

유근택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55 YEARS: A LEGACY OF MODERN & CONTEMPORARY KOREAN ART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갤러리 현, 2025.05.22 - 07.06 | 이미지_양승규

《55주년: 한국 현대미술의 서사》

55 YEARS: A LEGACY OF MODERN & CONTEMPORARY KOREAN ART


기록에 치우친 아침은 굉음을 쏟으며 쓰러졌다.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아침나절을 똑똑히 목도해 두었다. 쓸모가 슬슬 무릎 꿇는 때가 되었기 때문도 아니고, 이젠 흔한 마지막을 힘껏 펼치려는 작정 때문도 아니었다. 꼽은 이유 중 단지 눈이 시리다는 게 절박한 몸짓으로 자신의 거처를 올랐다.
"기묘한 날이 기를 쓰고 우겨대는 통에 입안은 싸라기눈으로 가득하다. 양이 서 말쯤 되는 기우를 잰다면 어쩌다 하늘에서 비라도 오겠다."
밥공기의 뚜껑을 여닫으며 머릿속을 조금 멀겋게 하였다. 소음은 소문의 문턱을 넘는 중이었다. 지상에서 갈라져 나온 듯한 방안이 소외로 가득하고, 그 꿈도 없는 잠 속에서 편한 입장을 고수했다. 기호를 밝히며 호오를 분명히 하는 것. 이는 창가에 붙은 기념들을 강조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적합하지 않은 문고리로도 통로의 뚜껑을 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제 막 청년티에서 벗어난 사내가 여전히 두 자릿수 감정을 느낄 때 대부분 일탈은 탈것을 타고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Yoo Geun-Taek, Morning,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160x141cm | 이미지_양승규

눈두덩이가 흡사 불에 달궈진 돌처럼 뜨거웠다. 이 열기로 기억은 지속되는지도 모른다. 열원의 바탕에 무난한 삶이 함께하니, 보통은 힘껏 부루퉁해도 사물 일반을 흐트러뜨리지 못한다.
여태 머리맡에 놓아둔 안부 몇이 부지깽이로 변모하여 손아귀에 들려 하는데, 삭신에 골고루 꽂힌 여러 꼬챙이가 버럭 화를 냈다. 앞선 감정 표현의 표징은 텅 빈 소쿠리의 숱한 이음매였다.
'소낙비에 대한 예보와 불길한 운송 알림이 제멋대로 섞여 드는 것. 종잡은 순간들을 최대한 길게 늘여놓는 일. 편지의 겉봉에 무수한 패턴을 새기는 작업.'
일련의 나열에서 비롯된 외로움은 비열한 사내의 암실을 떠올리게 했다. 어두운 밤을 고스란히 담은 어두운 방. 그곳은 생활의 흔적이 결여되어 있는 것과 동시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모순적인 공간이다.
한 방향으로 회전하는 날벌레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다. 잘못된 번지수를 고치고, 식사를 마쳤다. 이른 저녁이었다.

Yoo Geun-Taek, Fireworks,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141x99.5cm | 이미지_양승규

거대한 못이 자라는 토양은 층위를 헤아린다. 그럴 때마다 지표는 물결치며 세상 이동의 절반을 일으킨다. 기세 좋은 위력 다음에 철저한 속단이 이어진다. 아무래도 그림자는 도료를 가득 뒤집어쓰고 살아가려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선은 도로 작디작은 공간으로 돌아가는데, 이런 일상의 저변을 나는 견딜 수 없다.
흐트러짐 없는 생활 속 높이의 등장을 기다리며 늦장과 늑골의 공존을 내면화하고, 그 과정에서 저릿한 감각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주 내내 오전을 길었다. 순식간에 지나간 오후가 사물에 찍은 방점은 여지없이 흐릿하였다. 오전은 이미 지나간 것이 되어버린 오늘에 끝없이 펼쳐진 잔여물을 보며 오전과 오후의 불균형에 대해 생각한다. 단지 그 둘 사이에 존재론적 균형이 맞지 않은 것.
바깥보다 선명한 창틀이 내게 시사하는 건 무엇일지.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웃음이 굳은 표정 뒤로 물리며 스스럼없이 군다. 잠깐이나마 뾰족한 세상을 보았다.

Yoo Geun-Taek, Sailing Toward a Miracle, Black ink, white powder, tempera and gouache on korean paper, 141x99cm | 이미지_양승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