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CHUNMAN ART for YOUNG>

천만아트포영

<2025 CHUNMAN ART for YOUNG>
<2025 CHUNMAN ART for YOUNG>, 노들갤러리 2관, 2025.05.20 - 06.06 | 이미지_양승규

CHUNMAN
ART FOR
YOUNG
2025
천만아트 포
영 2025

노들갤러리
2관
2025.
5.20.-6.6.

정지원, 밤의 사파리, 2024, 면에 잉크, 아크릴, 유채, 112x167cm | 이미지_양승규

구명선

씨줄은 뜨거우면서도 찼다. 혼란스러운 바람이 부는 통에 며칠을 다사다난하게 보냈다. 깊은 호흡, 번뜩이는 안광. 사사로움을 업신여기는 존재가 보편에 호소한 까닭은 중앙이 빈 호수를 역설(力說)한다. 그것이 뭐라고, 달뜬 강조에 서툰 억심이 든다. 들고 나지 못했던 처지가 인공의 것으로 소유를 이전할 때(존재가 객체로 전이될 때) 대략적인 짐승은 도표에 취합되어 울음을 상향하고, 여태 가누지 못한 목으로 볕 내어 꾀인 타지를 청산한다.
종일 엄습하는 허기를 긁어 궁핍을 멀리한 사람의 팔은 웬만한 이들보다 길고, 이를 제외한 부분은 속되게 평범한 축에 속해 사실과 현상에 대한 곡해도 마다하지 않았다. 신체의 일부가 경험한 생각, 그럼으로써 띠게 된 관념의 색채는 어디 고정됨은 없다는 듯 이동을 강행하며 미처 익지 못한 낯에 깍지를 끼웠다. 돌고 돌아 깨금발. 섬을 상관하는 이유는 부디 밑진 장사를 드러내지 않길. 마시기 께름칙한 물에 녹조의 생태가 끼었다. 그것은 기호를 넘어 불온하다고까지 여겨진다.

떠돌이가 올 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적당한 때였다. 외벽 구실을 하는 대자보를 한 번 흘겨본 후 간헐적으로 치민 억하심정을 잠재웠다. 이곳의 사람들은 낮은 바닥을 삼키려 드는 수면이 언제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무엇도 하지 않았다. 마치 행위의 남용이라는 듯. 해결에 대한 관심은 과로를 염려한 이의 생활이었으니, 그는 손뿐만 아니라 온몸이 희었다.
정처 없는 이의 정체가 이리도 분명하다면 그를 가둔 윤곽을 조금 덜어 여러 사물에 건네줌 직하다. 그의 표정은 존재 일반에 근접했다. 터무니없이 정직한 일이었다고, 가던 낮을 잡아채 말한다. 서슴없이, 한편으론 무량하게.
“고동으로 이루지 못한 잠이나 꼭 그만큼 맞이한 밤이나 하는 게 얼마간 나에게 있었지만, 도리어 없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좌우로 현실을 굽어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생경한 감각은 알 수 없는 말로 시위를 당기죠.”

정수현, 27.3, 2025, 가변 캔버스에 유채, 41x139.5cm

신비로운 조형과 함께 등장한 슬기는 누구나 퍽 눈독 들일 입장이었다. 간밤에 의식을 수놓았던 소낙비는 응달로 달아났으며 그곳에서 짙은 그림자를 양산하였다. 빛 가리개로 우수한 형질은 그렇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갈수록 선각을 잃곤 하는 내게 외지라는 개념이 외피를 뚫고 손바닥 안쪽으로 들어와 은근한 동통을 야기하였다. 통각 언저리가 빈 골목을 연상할 때 이는 머지않아 실체가 될 것이다.
타인의 숨죽임이 웃음거리가 되는 일이 발생해도 평소처럼 허리춤을 점검하고 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매무새에 만족했다. 온전한 날이 절로 비일상을 상상하는바 의표엔 서정성이 감돈다. 저 끝부터 이 끝까지 두루 통용되는 발화를 한 김 식혀 두세 입으로 나누어 삼키고, 외형의 인식에 대한 서두를 방만한 사상 위로 올려 두었다. 제멋대로인 사유의 체계가 어째 붉은 타원에 갇힌 꼴이다. 운 좋게 모서리를 피한 사람의 중앙은 어느 변방보다 외지기에 그는 턱이 낮은 문지방을 넘기보단 오르는 식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다. 서른 남짓한 수가 바지런히 떨었다.

뭉뚱그려 생각하는 날이 연속돼도 눈앞은 여전히 희멀겋다. 앞뒤 분간은 결국 좌우 대칭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단지 정합 유지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도 이 묘사에 섞인 쏠림은 반듯하며 때에 따라 대수롭지 않고.
백주에 얽힌 참회가 긴 밤을 일컬어 낮은 장대라고 칭했다. 그것은 가상 속에서 휘두르기에 적절한 대상이 되었으며 시간을 베어 무는 쓰임으로써 귀한 대접을 받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용도 그 자체에 선한 귀결을 맞았다. 이 말에 의도는 가득해도 조금의 어폐도 없었다.
선험을 고르며 보낸 한평생이 지붕 위에 올라 필사적으로 평평한 부분에 팔목을 대었다. 그 이후의 상황은 떠올릴 때마다 급변하여 다양한 가짓수를 선사했고, 걔 중엔 이상적인 면모를 두른 것도 있었다. 손아귀에 내린 뿌리가 양분 대신 맥을 빨아들일 때 뒷걸음으로 사유 횡단을 반쯤 행한 잔뼈는 굵어진다.
오래된 판단은 값어치를 하였다. 모방된 바람이 불어와 대기를 어지럽히고, 기분을 겉돌 때도. 그동안 집어 먹은 세월만큼 무량한 날이었다.

우수빈, 당신의 첫번째 말, 2024, 철골에 점토, 건 식재료, 59x122x268cm, Aquila of Winter Jungle, 2023, 석고판, 지점토, 색연필, 목판, 파스텔, 45x35cm, Orange Stems of Winter Jungle, 2023, 석고판에 혼합재료, 45x33cm | 이미지_양승

뒤늦은 보수로 뒤숭숭한 때를 보냈다. 한시름 놓는 일인 것만, 편하지 않은 상황은 나를 재단했고 저울질했으며 폐부를 검게 칠하려 들었다. 정시를 넘어선 순간부터 시간이나 숨은 검게 그을렸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까지였는지도 모른 한때를 넣고 튼튼하게 봉한 봉투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갈라졌다. 수가 불어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기꺼운 일이겠지만, 한편으론 그 정도로 고까운 일이기도 하다고 상념이 지껄였다.

감감무소식에 맺힌 멍울은 비약적으로 커졌다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반복했다. 앞선 되풀이에서 거주지를 옮겨 다니는 이의 수고가 엿보인다.
눈을 감아도 또렷한 시야에 사양의 일부가 잡혔다. 섣불리 취할 수 없는 행동을 예견한 날은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전이며 당시의 스산함은 평균을 밑돌았을지 걱정이었다. 몸 누이기만 기다린 초로는 지친 숨으로 대낮을 밝혔다. 이제 막 봇짐을 내려놓은 사역 동물처럼 고되고 짙은 윤곽이 그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