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처럼 곁에 있던 브랜드

당연하고 익숙한 브랜드 톺아보기

가족처럼 곁에 있던 브랜드
이미지 출처 : Courtesy of Duke University Libraries Digital Collections

가족을 떠올리게 되는 5월입니다. 늘 곁에 있어 특별히 인식하지 못했던 존재, 익숙한 장소와 장면 속에 있어야만 하는 집단. 가족이란 말은 따뜻한 동시에 때로는 소원했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맘때면 마음을 들추고,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곤 하지요.

주변에도 가족과 같은 물건이 있지 않나요? 매일 손이 가지만 정작 브랜드 이름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런 물건 말입니다. 가족의 이름 대신 ‘엄마’, ‘아빠’, ‘언니’, 심지어는 ‘야’ 하고 부르는 것처럼, 익숙함 때문에 본래 이름 대신 그 용도와 성질로 부르는 물건들이요.

이번 아티클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일상에 자리 잡아버린 브랜드를 다시 한번 들여다봅니다.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기에, 오히려 이름을 잊어버린 브랜드들 말입니다.


가족의 이름을 마지막으로 불러본 때를 떠올려 볼까요? 아, 부모님은 제외입니다. 웬만해서는 이름을 부를 일이 없으니까요. 가족은 특별하기보다 늘 함께이기에, 자주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됩니다. 가족처럼 늘 우리 곁을 지켜온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반찬통, 칫솔, 프라이팬 같... 매일 마주하지만 어느 브랜드인지, 언제부터 함께했는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우리 곁에 머물렀기에 기억이 희미해진 브랜드들. 특출난 마케팅이나 트렌디한 이미지 없이도 깊숙이 일상에 들어온 브랜드를 통해, 익숙함의 가치와 신뢰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게 됩니다. 이름보다 기능이 먼저 떠오르고, 경험이 더 생생한 브랜드를 소개합니다.

주방의 국민템 – 락앤락(Lock&Lock)

이미지 출처 : 락앤락(Lock&Lock)

한국인의 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반찬통. 급히 밥을 차려야 할 때 ‘딸깍’ 하고 뚜껑을 열어 식탁 위에 올려놓은 적 있으신가요? 밀폐용기에서 나는 그 ‘딸깍’ 소리는 안전하게 음식이 보관되었다는 신호처럼 들리기도 하지요. 흔히 반찬통이라 부르는 4면 결착 형태의 플라스틱 밀폐 용기는 ‘락앤락’에서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락앤락은 1978년 '국진화공'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국내 브랜드입니다. 주방용품 개발에 꾸준히 힘써온 국진유통은 1994년 ‘하나코비’로 사명을 바꾸었고, 1998년에 지금의 플라스틱 밀폐용기를 출시하며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이 용기의 이름이 바로 락앤락(Lock&Lock)이었습니다. 네 방향에서 단단히 잠기고, 음식 냄새가 새지 않도록 설계된 락앤락은 곧 세계 여러 나라에서 특허를 받고, 큰 인기를 끌게 되죠.

이미지 출처 : 락앤락 창업주 김준일 회장, 락앤락(Lock&Lock)

이렇듯, 본래 락앤락은 하나코비가 개발한 제품명이었는데요. 2003년 하나코비는 사명을 락앤락으로 변경해 제품과 브랜드, 회사 이름을 통합했습니다. 제품이 브랜드가 되고, 브랜드가 회사를 이끌게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이후 락앤락은 중국, 베트남, 유럽에 이어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면서 글로벌 주방 브랜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락앤락은 도시락통, 냉장고 정리용기, 캠핑 용품, 텀블러 등 다양한 제품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딸깍’ 소리와 함께 신뢰와 안정감을 제공하면서, 오늘도 조용히 제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습관을 바꾼 혁신 – 오랄비

이미지 출처 : 1964년 오랄비(Oral B)의 컬러 칫솔 지면 광고, Period Paper Historic Art LLC

양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반복하지만, 사용하는 칫솔의 브랜드를 떠올리는 일은 드뭅니다. 욕실에 늘 있어야 하는 물건이기 때문이죠. 필자는 칫솔모가 망가져 편의점에 가면, 필자는 자연스럽게 ‘오랄비’를 집게 됩니다. 특별히 오랄비를 선호하는 건 아니고, 이름이 익숙해서요.

오랄비(Oral-B)는 1950년대 미국의 치과의사 로버트 허트슨(Robert Hutson)이 개발한 칫솔이었습니다. 당시 칫솔은 거친 동물모를 써서 잇몸 손상이 흔했다고 하는데요. 허트슨은 부드러운 나일론 섬유로 칫솔을 개발했고, 이를 60개의 작은 다발로 묶어 ‘Oral-B 60’이라 이름 붙였죠.

이미지 출처 : 오랄비(Oral B) 공식 홈페이지

나일론 칫솔모는 기존 동물모보다 세균 번식이 적고, 건조도 빨랐습니다. 또한, 오랄비는 칫솔모 끝을 둥글게 처리해 잇몸 자극도 줄였죠. 구강 위생에 큰 혁신이었던 셈입니다. 이 혁신으로 오랄비는 현대 구강 위생의 기준이 되었고, 이후 전동 칫솔과 블루투스, AI 연동 기능 등 혁신 제품을 지속적으로 출시하며 기술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오랄비의 혁신은 “전 세계 치과의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라는 슬로건으로 집약됩니다. 또한, 오랄비는 미국치과협회(ADA)의 전동 칫솔 부문 최초로 승인한 브랜드로, 안전성과 효과를 인정받기 했고요. 이렇듯 오랄비는 무심코 반복되는 습관 속에서 신뢰를 얻는 방식으로,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전 세계 치과의사를 대상으로 한 P&G의 정기적 시장조사 결과.

한 끼를 책임지는 프라이팬 – 테팔

이미지 출처 : 1988년대 테팔(Tefal) 컬러 지면 광고, Vintage Australian Print Ads

필자는 요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요리에 필요한 집기를 구비해야 한다면, 어떤 제품을 써야 할지부터 한창 고민해야 할 텐데요. 프라이팬만큼은 고민 없이 고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로 테팔입니다. 어릴 때부터 빨간 로고가 새겨진 프라이팬을 익숙하게 봐왔으니까요. 독자 여러분들의 주방에도 테팔 프라이팬은 한 번쯤 거쳐갔을 겁니다.

테팔(Tefal)은 1956년 프랑스에서 마크 그레고리(Marc Grégoire)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그는 음식이 눌어붙지 않는 프라이팬을 목표로 세계 최초로 논스틱 코팅 기술을 상용화했습니다. 논스틱 코팅의 핵심은 테플론(PTEF)인데요, 낮은 마찰계수와 뛰어난 내열성을 지닌 소재입니다. 그 덕분에 적은 양의 기름으로도 요리를 할 수 있고, 음식이 늘러 붙는 걸 방지할 수 있지요. 덕분에 보다 쉽고, 건강하게 조리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미지 출처 : 테팔(Tefal) 공식 홈페이지

테팔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기술을 개선해 왔습니다. ‘티타늄 프로’와 ‘인텐시움 3D’ 같은 코팅은 내구성과 열 분산 기능을 높였고, 팬 중앙에 있는 빨간 열센서는 조리 타이밍을 직관적으로 알려줬습니다. 익숙해지면 설명이 필요 없는 요소들로 통해 기술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게 요리의 풍경을 설계한 것이지요.

지금도 테팔은 다양한 소재와 형태의 프라이팬을 만들며 주방의 중심을 지키고 있습니다. 밥솥, 전기 주전자, 그릴, 믹서기 등으로 제품군은 확장되었으나, 그 안에 담긴 철학은 동일합니다. 사용이 편하고, 실패할 확률을 줄이며, 늘 기대에 부응하는 도구여야 한다는 점이죠. 누구의 집에든 한 개쯤 있는 이름, 그래서 더욱 믿음직하고 오래가는 브랜드입니다.


이번에 소개한 세 브랜드의 공통점은 '당연한 존재'로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애정을 쏟는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의 습관과 리듬 속에 조용히 침투해있지요.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 속에도, 오랜 시간 쌓여온 가치와 이야기, 그리고 조용한 유대감이 있습니다.

익숙하다는 건 곧, 긴 시간 곁을 지켜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질리지 않는 디자인, 믿을 수 있는 기능, 불필요한 설명 없이 손이 가는 신뢰감. 이런 것들은 단기간에 쌓을 수 없는 브랜드의 자산입니다. 매일 마주하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이름들. 가끔은 그 곁에 쌓인 시간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만드는 브랜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이 열릴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