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을 함께할 음악 영상 3선
올여름 한국을 찾은 아티스트의 장면들

음악은 그 자체로 무궁무진한 확장 가능성을 품고 있죠. 최근 2~3년간 유독 영화관에 콘서트 실황이나, 작업 비하인드를 담은 음악 관련 영화를 많이 본 기억이 납니다. 적어도 MTV와 뮤직비디오의 시대를 지나,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 고도로 활성화된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음악과 영상은 떼어놓을 수 없는 듯하죠. 오늘날 인터넷에서는 다종다양한 음악 관련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대표적인 뮤직비디오, 라이브 연주, 다큐멘터리부터 보다 밀접하게 작업기를 담아낸 비하인드 영상,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르는 커버 영상, 뮤지션과 댄서가 협업한 퍼포먼스 영상 등 여러 볼거리가 즐비해 있죠. 무엇보다 음악과 영상의 비중이나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도 여럿 돋보이는데요. 멋진 자연 풍광을 배경으로 삼은 라이브 연주나, 프로듀서가 자신이 만든 곡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설명해 주는 강의 형식의 영상 등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을 뛰게 합니다.
올해 본 음악 영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연초 전 세계를 휩쓴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서 출발합니다. 물론 슈퍼볼 공연 그 자체도 아주 매력적이지만, 이벤트 후 약 한 달이 지난 시점 NFL 공식 채널에 올라온 비하인드 영상은 본 공연이 남긴 여운을 증폭했죠. 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라고 불리는 NFL 슈퍼볼의 하프타임 쇼는 말 그대로 경기 중간 쉬는 시간, 약 15분가량의 짧은 틈새를 활용하는 이벤트인데요. NFL이 공개한 30분 분량의 비하인드 영상에는 하프타임 쇼를 기획하고, 준비하며, 당일에 이르러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스태프들의 노고가 온전히 담겨 있죠. 켄드릭 라마가 공연에서 남긴 흥미롭고 논쟁적인 메시지 이면에는, 그 공연을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 이들의 헌신이 있음을 이 영상을 통해 상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늘날의 음악은 그 작품과 작가뿐 아니라, 그 맥락과 표면 아래에 놓인 다양한 이야기를 영상을 통해 풀어내곤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다채로운 영상을 통해 음악의 채도를 강화하는 해외 아티스트의 사례를 살펴봅니다.
자연과 재즈의 호흡, 화합 : Yussef Dayes In Japan (Film) 富士山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재즈를 잘 모릅니다. 그 기원과 형성 과정, 족히 100년을 훌쩍 넘은 현대 대중음악의 뿌리와도 같은 재즈는 파고들수록 복잡하고, 또 이해하려는 노력보다 온전히 음악을 즐길 때 더 재밌어지는 장르이기도 하죠. 하지만 저 같은 문외한에게도,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이름이 들려오는 아티스트가 몇 있습니다. 그중 단연 압도적인 인상을 준 아티스트는 유세프 다예스Yussef Dayes입니다. 유세프 다예스는 1993년생으로 영국 출생의 드러머이자, 전 세계 재즈 씬에서 촉망받는 아티스트죠. 그는 드러머로서 자신의 팀을 이끌며, 부모로부터 전수받은 재즈, 레게, 컨트리, 록 음악의 자산과 자신의 세대가 사랑하던 레이브, 전자음악, 힙합과 그라임의 형태를 조화롭게 녹여냅니다. 나아가 유세프 다예스는 지난 5월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통해 처음으로 내한하기도 했고요.
유세프 다예스는 동시대 젊은 재즈 아티스트들과 자주 협업하는데요, 키보디스트 카말 윌리엄스Kamaal Williams와 유세프 카말Yussef Kamaal이란 이름으로 음반을 내고,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기타리스트 톰 미쉬Tom Misch와도 공동 음반을 냈죠. 이외에도 자신을 중심으로 한 트리오 활동이나, 또 최근에는 유세프 다예스 익스피리언스라는 밴드로 여러 음반과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젊은 아티스트답게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에서 자신의 활동을 뽐내고 있는데요. 제가 유세프 다예스를 처음 본 것도, 멋진 말리부 해안의 노을 지는 풍광을 배경 삼아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영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난 1월 더욱 멋진 영상을 한 편 공개했는데요. 이번에는 일본의 후지산을 배경으로, 자신의 밴드와 함께 음악을 펼쳐냈습니다. 이는 일본의 유서 깊은 오디오 브랜드 오디오 테크니카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는데요. 유세프 다예스와 그 밴드가 일본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도시를 여행하는 시퀀스를 삽입하며 단순히 멋진 자연을 배경 삼은 연주가 아닌, 타국의 문화와 자연이 재즈에 녹아드는 경험을 선사하죠. 무엇보다 일본의 전통 악기 연주자 미나미 키즈키와 함께 선보인 ‘Fuji Yama’에서는 보다 다채로운 장르의 총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유세프 다예스는 라이브 연주가 자신의 삶과 같다고 말할 만큼 연주를 통해 다층적인 감정을 청자에게 제시하는데요, 말리부, 후지산처럼 압도적인 자연의 형태에 눌리지 않고 그와 어우러지는 재즈의 선율은 그의 깊은 연주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창의성이 촉발하는 현장을 지켜보는 재미 : <2024>

프레드 어게인Fred again..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2022년 그가 출연한 보일러 룸 영상 때문이었습니다. 훌륭한 라이브 연주와 디제잉도 눈이 돌아갈 만큼 좋았지만, 공연 중 사소한 문제가 생길 때에도 웃어넘기며 베뉴의 분위기를 풀어나가는 그의 모습에 금세 매력을 느꼈죠. 그리고 프레드 어게인은 이듬해 공석이 생긴 코첼라의 헤드라이너 자리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십수 년 전에도, 지금도 최고의 일렉트로닉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스크릴렉스Skrillex, 포 텟Four Tet과 구성한 트리오로 세계 최고의 페스티벌에 선 것이죠.
많은 이들이 언급하듯, 프레드 어게인의 음악이나 공연 실황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피상적 개념의 ‘천재’에 가깝다고 느끼곤 합니다. 물론 천재라는 단어에는 다양한 뜻이 있겠지만, 그가 순간순간 뛰어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순식간에 분위기를 압도하는 창의성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때로 경외심을 느끼게 되죠. 그리고 그의 유튜브에 올라온 <2024>라는 제목의 영상은, 말 그대로 뛰어난 예술가의 창의성이 터져 나오는 현장을 가까이에서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 프레드 어게인의 집, 스튜디오, 공연장에서 여러 악기를 다채롭게 연주하며 음악을 쌓아가는 모습도 그렇지만, 공연장 대기실,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공간에서 그가 즉각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창작하는 순간에는 예기지 못한 희열이 느껴지기도 하죠.
무엇보다, 그의 유튜브 채널에 여럿 공개되었듯, 프레드 어게인은 기존 페스티벌과 클럽, 공연장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간에서 자신의 창의성을 뽐냅니다. 그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멕시코의 스케이트보드 공원, 아테네의 호숫가 등 예상치 못한 공간을 선택해 자신의 음악의 배경으로 삼습니다. LA에 위치한 메모리얼 콜로세움에서는 자신의 초기 커리어를 함께한 팬들을 모아 사소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게릴라 공연을 열기도 했죠. 이런 영상 속 프레드 어게인의 모습을 보다 보면, 그는 그저 스스로에 도취해 창작으로 폭주하는 천재가 아닌, 그저 음악을 사랑하고 창작을 즐기며, 그 행복을 타인과 나눌 줄 아는 훌륭한 아티스트처럼 보입니다. <2024>속 다채로운 창작의 형태를 담아낸 프레드 어게인은 오는 7월 첫 내한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 그의 창의성을 엿보고 싶다면 공연을 찾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빛나는 무대와 그늘진 일상의 조화 : <On Stage Off Stage>

여전히 힙합에는 여러 선입견이 존재합니다. 장르가 태동한 미국 바깥의 힙합은 많은 사람의 레이더에서 벗어나 있고, 마초적인 장르 특성상 여성 래퍼를 향한 편견 또한 남아있죠. 하지만 지난 몇 년간 제가 가장 많은 애정을 표한 래퍼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영국의 여성 래퍼 리틀 심즈Little Simz입니다. 2019년 발매한 정규 3집 ‘Grey Area’로 전 세계 힙합 마니아에 이름을 알린 그녀는 2021년과 2022년 연이어 ‘Sometimes I Might Be Introvert’와 ‘NO THANK YOU’를 공개하며 위치를 공고히 다졌죠. 지난해에는 RM의 솔로 앨범 중 ‘Domodachi’ 트랙에 피처링으로 참여하며 국내 대중음악 씬에도 이름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리틀 심즈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녀의 실력 자체에 있습니다. 정통적인 붐뱁 비트와 재즈 힙합 위에서는 신들린 듯 유려한 랩을 얹고, 때로는 오케스트라를 활용하거나 오페라에 가까운 구성 위에서 다양한 분위기를 만들어내죠. 하지만 그녀의 진가는 랩 스킬에 국한되지 않고, 음악을 가득 채운 노랫말에서도 돋보이죠. 영국의 거리가 온전히 그려지는 풍경화 같은 가사부터, 여성, 흑인, 사회와 문화를 아우르는 넓은 시야가 리틀 심즈의 여러 노래에 다채로운 모습으로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2022년 발매한 정규 4집 이후, 그녀의 투어 공연과 일상, 작업 현장을 조화롭게 다룬 다큐멘터리 <On Stage Off Stage>가 유튜브에 공개되었습니다.
40분의 긴 영상에서 리틀 심즈는 화려한 조명을 받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일상, 무대 뒤편 대기실에서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어둠이 깔린 무대 아래라고 해서 그녀는 깊은 생각에 침잠하거나 무력에 빠지지 않죠. 무대 위에서보다 차분한 인상이지만, 그녀는 잔잔히 자신의 생각들을 말로 펼치거나 스태프, 동료들과 어울리며, 테니스를 치고 음악 작업을 하는 등 평온한 일상을 이어가죠. 분명 무대 안팎에서 느끼는 간극은 아티스트가 아닌 이상 알 수 없겠지만, 리틀 심즈는 빛나는 순간의 그녀와 평범한 순간 속 그녀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듯 행동합니다. 그리고 이건 리틀 심즈의 음악에 녹아든 자신감과 깊은 통찰, 그리고 훌륭한 메시지가 형성되는 원동력이겠죠. 리틀 심즈 역시 오는 8월,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칠 예정입니다.
본문을 정리하다 보니, 세 아티스트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모두 영국 출신의 1990년대생 아티스트이고, 올해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선보인, 또는 진행할 예정인 아티스트입니다. 이들처럼 최근 들어 젊은 음악가들은 영상이라는 매체를 기반으로 자신의 음악을 다양하게 선보일 방법을 고민하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 형식을 재조합하거나, 보다 밀접한 거리에서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자연스럽게 표출하죠. 영상 매체가 보편 형식이 된 오늘, 라이브 연주와 공연 또한 단지 기록될 뿐 아니라, 영상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다채로운 방향으로 뻗어나가고 있습니다. 자고로 음악 산업에서 여름은 후끈한 페스티벌의 열기로 가득한 대목이지만, 실상 뜨거운 한국의 여름을 견디는 것조차 힘들 때가 많죠. 그럴 때는 다채로운 볼거리로 가득한 음악가들의 공연, 연주 영상을 보거나, 또는 다큐멘터리, 공연과 작업 비하인드에 담긴 아티스트의 다양한 모습과 서사를 시원한 실내에서 즐기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이번 여름을 뜨거운 음악의 열기로 채우고 싶다면, 오늘 소개한 아티스트가 한국에서 선보이는 첫 공연을 함께 해도 좋겠네요.